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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2일 화요일

한국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국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살률 증가가 단순히 개인책임이 아니라, 정권의 불합리한 예산배분, 집행 때문이라는 자료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먼저, 자살률과 정부의 공공사회지출의 상관관계를 밝힌 논문이 최근에 발표되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2009년 3월 예방의학회지를 통해 서울대학교 박유진외 3인이 연구발표한, "공공사회지출이 자살률에 미치는 영향: OECD 국가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1) OECD 주요국가들의 자살률은 최근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반하여,
2) 한국의 자살률은 유독 계속 늘어나고 있고,
3) 그 원인에는 턱없이 낮은 국가,정부의 공공사회지출(Public Social Expenditure)이 자리잡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자들은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이러한 낮은 공공사회지출 비율(%)은 국가가 사회 위기나 전환기에 처했을 때, 자살률을 높이는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연구논문 보기)

실제로 연구자들이 결론적으로 제시한 아래의 도표를 보면,

 

자살률과 공공사회지출의 역의 상관관계

 

1) OECD 국가들의 평균 공공사회지출 비율은 19.5% 이상에 달하는데 반하여, 한국은 5% 선에 머무르고 있으며,
2) 공공사회지출이 높은 국가일수록 자살률 증가율이 낮아지는 역상관관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3) OECD 국가들 중에 굳이 우리보다 인당 GDP규모가 월등하지 않더라도 20% 이상의 공공사회지출을 유지하고 있는 마당에,
   오직 한국만이 5% 선의 야만적이고 황무지와 같은 공공사회지출 비율(%)로,
   무려 6%대에 달하는 자살증가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OECD 최고의 충격적 여성자살률

 

이러한 흐름은 2009년 봄 OECD가 발간한 '2009 OECD Factbook'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2009 OECD Factbook 보기)

기획재정부가 위의 OECD 자료를 인용하여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수, 이하 2007년 기준)은 18.7명으로 OECD 평균(11.88명)을 크게 앞지르고 있으며,
이는 헝가리, 일본에 이어 세계 3위라고 합니다.
특히 여성의 자살률은 11.11명으로 OECD 평균(5.4명)의 두 배를 넘어서며 OECD 최고 수준을 보였습니다.
 28.1명인 남자는 4위를 기록했습니다. (
관련자료 보기)

특히, 공공사회지출을 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6.9%에 불과하여, OECD 국가 중에 최하위이며, 평균치 약 20%에 택없이 모자르고 있습니다. (
OECD public social expenditure, 공공사회지출 보기)

 

OECD 최저의 충격적 공공사회지출 비율 (%)

 

위의 '연구자료'와 '2009 OECD Factbook'을 보면 한국의 높은 자살률과 자살률 증가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대학생들이 '등록금'으로 고통받는 것이나, 가임인구가 '출산률'을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과 유사합니다.

한마디로 살기 '뻑뻑하다', '힘들다',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GDP에서 차지하는 공공사회지출 비율(%)을 과감하게 높여서, 실질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켜 나가야 합니다.
(출처: http://assetguide.tistory.com/606)

2008년 11월 24일 월요일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




◆이 책에서 말하는 근현대사와 인물들에 대한 평가◆ _출처 다음카페


<동학혁명>

하층농민들이 경제안정을 만들기 위해 보수적인 왕권옹호적인 농민봉기


<명성황후>

외세에 의존한 수구적 인물, 명칭은 민황후


<김옥균>

일본의 힘을 빌려 근대화를 추구한 선각자


<고종과 대한제국>

국민이 정치참여를 부정한 전제국가의 주역


<유관순>

체제를 부정한 불순분자


<김좌진>

체제를 부정한 악질테러분자


<일제시대의 종군위안부>

자발적인 경제단체, 성매매업자


<임시정부와 백범김구>

남한의 단독선거를 반대한 대한민국의 건국공헌이 전혀없는 빈라덴같은 인물


<안중근>

테러리스트,김구의 하수인


<일제시대>

근대국민국가 수립능력이 축적된 민족근대화에 크게 기여


<민족분단의 책임,6.25전쟁>

스탈린이 독재국가 수립지시에 따른 결과


<해방후 반민특위>

주사파 빨갱이들의 사주에 따른 음모를 펼치기 위한 조직


<제주 4.3사건>

좌파정치세력이 대한민국의 성립에 저항한 반란


<여순사건>

군내부 빨갱이들의 반란사건


<이승만>

자유민주주의,반공주의,반일주의,북진정책,

자유시장 경제체계를 확립한 영웅이자 건국의 아버지


<5.16쿠데타>

유능한 엘리트장교집단들이 지배세력을 교체한 근대화 혁명의 출발점, 5.16혁명으로 표기


<4.19혁명>

4.19학생의거로 표기.


<박정희>

시대의 영웅, 경제성장의 영웅,

비타협적 권위주의가 경제성장의 잠재력을 이끈 영웅==>현 정권이 추가하는 바와 동일


<한일국교정상화>

국민저항을 돌파해 한국경제 고도성장의 초석을 낳은 사건


<유신체제>

권위주의 통치시기이자 고도성장기,

혁명적 사회변화의 시기


<민청학련사건>

희대의 간첩사건


<12.12사태>
구국의 결단, 박정희 혁명과업의 완전성취를 위한 재도약/불가피한 선택


<5.18광주민주화운동>

지역주의에 편협된 불순분자가 주동한 항쟁,

5.18광주항쟁으로 명기


<김일성>

북한의 인권과 경제상황을 세RP에서 제일 낙후한 국가로 만든 인물


<전두환>

구국의 결단을 통해 혁명과업완수


<97년 외환위기(IMF)>

경제성장과정에서 한번쯤 겪는 진통


<참여정부 집값폭등>

노무현 참여정부의 무능


<독도>

지도상 전혀 표기가 안되어 있음.






한국, 자살 1위의 빛나는 위업


초고속 자살 성장 사회  
[칼럼] 한국, 자살 1위 빛나는 위업…이라크 주둔 미군보다 더 높아

영화 <타인의 삶>은 구동독 비밀경찰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비밀경찰, 슈타지의 요원이다. 주인공은 어느 날 연극을 보고 연극 작가의 풍모에서 ‘반역자’의 냄새를 맡는다. 마침, 함께 연극을 관람한 고위층도 그 극작가에게 의심을 품게 된다. 그리하여 주인공에게 그 극작가를 감시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주인공은 도청을 통해 극작가의 삶을 관찰한다. 극작가는 ‘불온한 인사’임이 밝혀진다. 하지만 극작가를 불온한 인사로 모는 것은 동독체제의 경직성이다. 동독사회의 비인간성에 비해 극작가의 삶과 그가 속한 예술가 사회는 따뜻하기 그지없다.

비밀경찰 요원으로서 주인공의 삶은 건조하다. 주인공은 사무적으로 관계하는 창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온기를 느낄 정도로 인간적인 어떤 것을 그리워한다. 이웃 어린 아이에게조차 비밀경찰이라고 경원시당하는 주인공에게 극작가의 세계는 동경의 대상이 된다.

자신도 모르게 극작가와 가까워진 주인공은 점차 자신의 본분을 잊게 된다. 하지만 그는 비밀경찰 요원이다. 동독 사회는 극작가와 주인공을 그냥 두지 않는다. 위험이 조여 온다.

“나는 동독 비밀경찰”

  
  
이 영화를 보고 운 사람도 있다던데, 난 운 정도는 아니고 막판에 눈시울이 조금 뜨거워졌다. 사람을 대놓고 울리는 신파류의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울리는 영화보다 여운은 더 긴, 그런 스타일의 영화다.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태극기 휘날리며>보다 이쪽이 확실히 여운이 더 길고 무겁다. 2007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아직 안 본 분은 한번 보길 권한다. 영화얘기는 여기까지.

이 영화의 한 장면에서 난 한국사회를 떠올렸다. 극 중에서 동독 사회의 폐쇄성에 분노한 극작가는 서독의 <슈피겔>지에 비밀리에 동독을 고발하는 글을 기고한다. 그 글은 자살률에 대한 것이다.


< “한스 바이믈러 가의 국가 통계청에선 모든 것을 통계내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

1년에 구입하는 신발의 수 : 2.3켤레
1년에 읽는 일인당 독서량 : 3.2권 …

하지만 통계 낼 수 있는 한 가지 일이 거기에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아마도 그런 통계는 관료들 자신에게 고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자살률이다. 만약 당신이 바이믈러 가의 사무실에 전화해서 질문한다면, 얼마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엘베강과 오더강 사이에서, 발트해와 오레산맥 사이에서 자살하는지에 대해서, 그럼 우리 통계청께선 침묵하실 거고, 아마도 당신의 이름을 정확히 기록해놓을 것이다. 슈타지를 위해서. 국가의 안보와 행복을 돌본다는 이곳의 잔인한 요원들을 위해.

1977년 우리나라는 자살자 수를 세는 것을 포기했다. ‘스스로를 살해하는 자’ 국가는 그들을 이렇게 칭한다…. 우리가 9년 전에 자살통계를 그만 둘 때, 유럽에는 동독보다 자살자 수가 많은 나라가 단 하나 존재했는데, 헝가리이다.” >


극작가는 이 글로 동독 사회를 고발했다. 동독 당국은 이 글을 자신들의 치부를 들춘 것으로 간주했다. 영화 속에서 동독 당국은 이 글의 작자를 색출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자살자가 많은 것이 단지 동독뿐인가?

지난 1982년 대한민국은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6.8명으로 OECD 국가들 중에 하위권이었다. 이 영화에서 동독보다 더 자살률이 높은 나라로 지목되는 헝가리의 경우는 당시 39.8명이었다.

90년대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시작했다. 남들이 자살자를 줄여갈 때 우린 자살자를 늘여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2005년에 이르러선 OECD 자살률 1위에 등극했다.

자살 최하위권에서 1위로, 20년 만의 빛나는 위업

전통적인 자살강국이라는 헝가리마저 제쳤다. 2005년에 우리나라는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24.7명, 헝가리는 22.6명이다. 우리는 자살성장률에서 초유의 압축성장을 기록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미국 국방부는 2006년 9월, 이라크 주둔 미군이 공포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보고서를 냈다. 2005년 이라크 주둔 미군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9.9명이었다. 우리나라는 아마도 국토 전체가 통째로 전쟁보다 더한 스트레스 상태에 빠져든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미국의 임금소득격차마저 추월해 초유의 양극화 압축성장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국민의 삶을 파탄으로 이끌었다. 직장에서의 안전성도 사라지고, 학력경쟁은 더욱 격심해졌다. 한국인의 삶은 너무나 괴로워졌다.

2008년 한국 정치권에게 주어진 책무는 바로 이런 양극화 압축성장, 자살 압축성장을 되돌리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경제위기를 겪으면 우리는 양극화, 자살 성장에 터보 엔진을 달게 된다. 사회는 궤멸국면에 진입할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우리 정부는 양극화 해소엔 관심이 없고, 친부자 정책으로 일관함으로서 양극화를 오히려 심화시키고 있다. 왜 그럴까?

자살하고 고통받을 사람들은 단지 ‘타인’일 뿐이기 때문일까? 약자는 가난해지고 강자만 부자가 되었는데 여전히 약자를 방치하는 건, 약자를 ‘타인’으로 여겨서일까? 약자의 고통은 단지 ‘타인의 삶’일 뿐인가?

노무현과 이명박, 양극화와 경찰국가

더 황당한 건 우리가 자살률-양극화 부문에서 초유의 압축성장을 달성한 시기에 정권을 담당했던 집단에게서 추호의 반성의 빛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민생파탄은 곧 내수파탄으로 오늘날 경제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당당하다. 그들에게도 약자는 ‘타인’일 뿐인가? 국민이 자살하고 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경제는 좋다’라고 세월 좋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무슨 경제? 누구의 경제? ‘타인’을 제외한 ‘그들’만의 경제?

영화에서 그려지는 암울한 동독처럼 우리의 자살률도 치솟고 있다. 비밀경찰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이 자살한다는 건 그 사회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소리다. 동독과 비견될 정도라면 우린 지금 매우 이상한 길을 가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많은 국민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하지만 친부자 정책과 함께 그저 법질서(경찰력)만 강화된다. 이미 노무현 정부 때부터 공청회에 경찰력이 투입되는 경찰국가의 모습을 보였다. 이명박 정부는 백골단까지 부활시키고 있다. 정말로 동독의 어두운 면과 비슷해지고 있다. 왜 내가 동독을 그린 영화를 보며 한국 사회를 떠올려야 하나?

다가올 경제위기에 약자들은 엄청난 고통을 받을 것이다. 현금을 보유한 사람들은 자산폭락시기에 오히려 더 부자가 된다. 부자들에게 지난 양극화 시기는 축복이었다. 그러나 약자들에게 닥칠 미래는 ‘자살’이거나 ‘노예화’일 뿐이다. 암울하다.


2008년 11월 24일 (월) 09:39:34 하재근(사회문화평론가)        

(출처:레디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