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트 : 봉준호가 "괴물"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원문: http://agorabbs2.media.daum.net/griffin/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160429>
((이 글에는 스포일러(영화내용이 담겨)가 있으니 영화 안 본 분들은 보지마세요!))
봉준호의 "괴물"은 연일 갱신하는 흥행기록 만큼이나 영화에 대한 평이 분분한 재밌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영화 "괴물"에 대해 가족영화다, 괴수스릴러 영화다, 혹은 장르 짬뽕 영화다 등등 많은 의견들이 있지만,
괴물을 장르영화 틀 속에 집어넣는 것은 봉준호의 지적 수준을 너무 폄하하는 것이다.
봉준호는 익히 알다시피 1980년말 한국의 민주적 격변시기에 연영과가 아닌 사회학과를 나온 사람으로 대중영화감독 중에서는 드물게 영화 속에 사회정치적인 비판과 건강한 희망적 메세지를 잘 담아 넣는 감독이다.
참고로 특히 데뷔작 "플란더스의 개"에 그의 사회정치적 메세지가 탄복할 만한 솜씨로 교묘하고 조화롭게 담겨있다.
꼭 함 보시길...
플란더스의 개를 분석하는 힌트 포인트는...
1. 영화 첫 장면의 푸른 숲
2. 이성재가 숲에 가고 싶다는 그 말의 의미.
3. 마지막에 숲에 온 배두나 손에 든 자동차 빽밀러 상징성,
4. 빽밀러로 햇빛을 반사시켜 관객의 눈을 부시게 하는 이유.
이것들을 올바로 해석한다면 "플란더스의 개" 속의 다른 다양한 의도와 영화적 장치를 알아 차릴 수 있으며 그 후 "살인의 추억"과 "괴물"을 분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런 얘기가 샛길로 샜군요.
다시 괴물로 돌아가서...
영화 괴물이 시작되자마자 처음에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이 있는데, 봉준호가 우리에게 건네는 "둔해 빠진 녀석들!"이란 말이다.
영화 초반에 부도난 중소기업 사장이 한강다리서 자살하며 친구와 직원에게 내뱉는 앞도 뒤도 자른 뜬금없는 마지막 말이다.
도대체 뭐가 둔해 빠졌다는 거야? 우리가 둔해서 놓친, 깨닫지 못한 중요한 게 뭘까?
그 해답은 영화 막바지에 알게 된다.
"둔해 빠진 녀석들" 이라 말하고 바로 영화는 한 눈에 보기에도 둔해빠진 한심하고 바보스런 송강호의 낮잠 장면으로 이어진다. 봉준호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송강호라는 등장인물에게 이입시키는 매끄러운 연결이다.
학교 갔다 돌아 오는 딸 현서를 맞이하러 뛰어가다가도 넘어질 정도로 한심하고 둔해빠진 우리의 주인공 송강호!
그는 딸을 찾으러 다니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현실에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기 일쑤다.
동생 박해일의 말처럼 "참 신기롭지 않냐? 이 상황에서도 잠이 오냐?"
4년제를 나온 운동권 경력의 지식인계층인 동생 박해일의 눈에 보이는 부조리하고 급박한 현실의 모순이 순박한 서민 송강호에겐 인지되지 않는다,
아버지 변희봉이 말했듯이 먹고 살기 바빠서 잘 챙겨주지 못해 머리 속 한군데가 모자라게 자란,
즉 지배권력이 만들어 놓은 생존경쟁사회 속에서 살아남으려 바둥대느라 바빠,
왜곡된 언론과 권력에 의해 정치적 사유가 거세된 소시민, 서민을 송강호로 비유하고 있다.
그래서 봉준호는 자주 잠드는 송강호를 영화 내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타박한다.
마치 이 땅의 소시민들이여 이제 그만 깨어나서 현실을 보라는 듯이...
그 현실이란?
미국과 정부와 언론은 허위사실(바이러스 보균설)을 유포하며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겠다는 핑계로 서울의 한강을 군대를 동원해 신속히 강제격리 시킨다.
마치 1980년에 미국의 승인을 얻은 군사정권이 언론의 허위사실(광주사태 빨갱이간첩 사주설)유포와 군대를 동원해 광주의 민주화열기의 전파를 막기위해 남한의 광주도시를 아주 신속하게 강제격리시키듯이...
그리고 비상계엄이 선포된 분위기의 서울 한강에서 박강두(송강호) 가족은 총을 들고 괴물에 대항한 목숨을 건 사투를 시작한다.
괴물(폭력)에 맞서 자구책으로 총을 쥐고 무장한 서민가족.
괴물과 총의 상징성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건 뒤에 더 상세히 설명하겠다.
괴물은 영화 전반부에 보여줬듯이, 미군의 오염물질 방류에 의해 키워진, 한마디로 미국이 키워낸 괴물이다. 그리고 그 괴물은 지금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다. 그리고 박강두네 가족을 해치려한다.
거기에 맞서 일개 무지랭이라 불리는 힘없는 서민 박강두 가족(광주 시민)이 가족과 목숨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맞선다. 미국과 정부와 언론과 군인에 의해 갖힌 고립무원의 공간 한강(전남 광주)에서...
국민들도 바이러스(빨갱이 광주폭동설)를 진짜라 믿고 모두 마스크를 쓰고 바이러스 보균자(광주폭동자) 수배전단이 나돌고, 옆사람이 기침하면 마치 바이러스에 오염된 것 처럼(빨갱이사상에 물든 간첩인 것 처럼) 쳐다 보고 멀리한다.
그때 뉴스를 보던 군중들 속에 기침하던 사람이 뱉은 가래침을 지나가던 트럭이 빗물과 함께 모든 사람에게 끼얹어 주며 봉준호는 언론과 권력에 속는 바보 서민 송강호들에게 정신차리라고 찬물 세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바보서민 송강호는 아버지가 죽고 원효대교 북단의 하수구에 갖힌 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고,
생체실험(봉준호는 생체실험을 지배계급이 반정부 운동권들에 가한 그 고문처럼 고문의 이미지가 묻어나오도록 그리고 있다.)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특히 뇌가 뚫리는 생체실험의 상징적 사건을 통해 지배계급에 의해 거세되고 봉쇄되어 뇌 속 깊이 잠자고 있던 서민계급의 정치적 봉인이 풀리게 된다.
이후 서민박강두는 실험실을 박차고 나와 딸을 찾고(이미 숨을 거두었지만) 괴물을 죽인다.
사람들은 딸 현서가 죽어서 비극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감독의 의도는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
딸 현서가 목숨을 바쳐 구한 꼬마 남자 아이. 송강호는 이름도 모르는 남의 아이를 마치 자기 자식처럼 키운다.
이건 지배계급에 맞선 같은 피해자인 서민들의 연대와 동질의식을 상징한다. 가족과 혈연을 넘어서는 계급적 연대의식.
봉준호는 서민 송강호가 혈연을 넘어서 남의 아이를 보듬는 장면을 통해 자신의 계급적인 정치적 각성을 완전히 이루어 내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장면은 마지막의 송강호의 변한 모습이다.
이제 송강호는 더 이상 바보 송강호가 아니다. 더이상 현실의 억압과 폭력에 눈을 감아버리고 잠만 자는 둔해빠진 서민이 아니다.
송강호는 정치적 각성없이 유행따라 줏대없이 쫓아가던 노랑 염색 머리를 없애고, 그 많던 낮잠과 졸음은 사라지고, 여름에 괴물을 죽였는데도 밤이 유난히 긴 눈 내리는 겨울밤에도 졸지 않고 문 밖 바람소리에 긴장의 끈을 놓치 않고 괴물을 경계하며 이젠 항상 옆에 두는 총을 다시 잡는 송강호!
우리는 이쯤에서 봉준호가 말하고자 하는 괴물의 실체를 얘기해 보자.
괴물은 고도의 정치적 상징물이다.
석유(괴물은 석유를 좋아해서 중간에 석유를 받아 마신다)와 세계정치패권장악을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전쟁광 미국과 부패지배계급 정부와 서민의 정치적 각성을 봉인하며 세뇌시키려하는 언론들!
바로 이 괴물들로부터 맞서 싸우기 위해 송강호는 그 긴 겨울밤에도 잠자지 않고, 죽은 아버지가 남긴 총(고립된 광주서 싸운 서민들의 저항의 상징인 총)을 다시 고쳐잡고 괴물이 걸어 올 싸움에 대비해 자신과 아이(우리의 미래)를 지키려 하는 것이다.
여기서 총에 대해 봉준호가 말하는 상징성을 설명하면,
영화 중간에 박해일은 탈출을 도와준 사기꾼들에게서 구입 한 총을 보고 "무슨 예비군 훈련도 아니고 총이 이 모양이야"라고 말하는데,
이건 실제로 광주항쟁당시 군인에 대항하기위해 주변 예비군초소를 털어서 광주시민군이 사용했던 초라한 예비군 총에 대한 연장선상이며,
영화 괴물에서 주인공들이 쓰는 총에 한국의 역사적인 정치적 경험을 연관지으려 감독이 일부러 집어 넣은 박해일의 대사다.
영화 속 이야기가 우리 현실 속의 현재 진행형이라는 힌트는 영화 마지막 장면의 송강호와 아이가 밥 먹을 때 나오는 텔레비젼 뉴스의 첫 번째, 두 번째 뉴스 속에 있다.
첫 뉴스는 정부가 서민들 살기 힘들게 각종 세금과 의료보험수가를 올린다는 실제 현실의 뉴스이고,
두 번째 뉴스는 바이러스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잘못된 정보(이 단어에 주의할 것)'였다는, 결국 언론과 정부와 미국이 거짓말을 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마치 대량살상무기 때문에 이라크를 침공한다고 거짓말하고서 나중에 대량살상무기가 있었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실제로 같은 단어를 사용함)'였다고 미국고위관료가 뉴스에서 똑같이 고백했던 그 장면처럼...
때문에 괴물을 다시 경계하는 영화 마지막 송강호의 장면은 송강호가 덜 떨어진 바보라서거나, 혹은 괴수영화의 속편을 위한 여운 같은 것이 아니다.
억압적 현실이 현재진행형이며 각성한 서민 송강호처럼 정치적 각성을 통해 현실을 분명히 보고 대비하라는 봉준호의 충고인 것이다.
ps : 여담으로...
송강호가 생체실험실에서 탈출 할 때 실험실 앞마당에서 벌어진 미군들의 바베큐 고기 파티 장면을 기억하실 것이다.
송강호가 인질로 잡은 여자는 봉준호의 절친한 영화선배인 박찬욱의 "친절한 금자씨"에서 자기남편과 정을 통한 정부를 죽여서 집 앞마당에서 구워먹다가 감방에 잡혀들어간 마녀라 불리던 여자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는지?
즉 자기집 앞마당에서 사람고기를 구어 먹던 여자가 하필 인질이 되서 실험실 앞마당에서 바베큐파티를 벌이던 장소에 등장하고, 송강호는 발길로 고기 굽는 석쇠를 엎어버린다(그런데 그 석쇠가 친절한 금자씨에서 사람고기 굽던 그 석쇠와 꼭 닮았다).
미군들의 앞마당 고기파티는 인육파티를 상징한다. 석유와 세계패권을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전쟁광 미국을 인육을 먹는 괴물과 동일시하는 고도의 정치적 비유인 것이다.
암튼 봉준호의 비유와 상징의 영화적 센스는 수준급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