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C 시대’를 강타한 <거침없이 하이킥>의 성공전략
당신은 MBC <거침없이 하이킥>을 TV로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조금이라도 드라마에 관심이 있다면 당신은 <거침없이 하이킥>을 절대로 피할 수 없다. 어딜 가도 서민정이 넘어지고 구르고 다치는 영상들을 모아놓은 ‘몸 개그 작렬 동영상’이나 술만 취하면 순식간에 먹는 것을 밝히는 괴물이 되는 정준하와 그를 컨트롤하는 박해미의 영상을 편집한 ‘괴물준하와 사육해미’를 볼 수 있다. 또 ‘훈훈한’ 청년으로 심신의 평화를 찾고 싶다면 윤호 역할로 출연 중인 정일우의 사진을 보면 된다.
10분? 흥! 나는 10초면 당신을 웃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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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민정? 윤호♡민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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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준하와 사육해미 | |
이런 것쯤은 이미 다 봤다고? <거침없이 하이킥>을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의 준말)한다고?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거침없이 하이킥>을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쳐봐야 한다. 요즘 한창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는 민용-민정-윤호의 미묘한 삼각관계만 편집한 영상을 찾아 ‘복습’도 해야 하고, 본방에서는 매일 감질나게만 봐야 했던 김범의 활약상을 한 번에 모아 보기도 해야 하니까. 복습 뒤에는 당신이 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에 가서 당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에 대해, 혹은 지지하는 ‘라인’에 대한 주장을 펼치는 일이 남아 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한 드라마 수용의 변화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침없이 하이킥>은 ‘김병욱표 일일 시트콤’이다. 그것은 곧 기존의 드라마가 인터넷과 만나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기존 드라마의 팬들이 그 드라마의 재미를 설명하려면 아무리 짧아도 몇 분에 이르는 영상을 편집해서 선보이고, 거기에 줄거리 설명까지 덧붙여야 했다. 그러나 <거침없이 하이킥>은 서민정의 ‘몸 개그’나 정준하와 박해미의 해프닝만 보여줘도 충분히 웃길 수 있다. 물론 MBC <환상의 커플>도 주인공 안나(한예슬)가 벌이는 해프닝을 중심으로 한 짧은 영상물이 돌아다니면서 인터넷상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미니시리즈가 주인공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는 데 반해 김병욱 감독의 일일 시트콤은 모든 인물이 주인공이다. 좋아하는 캐릭터의 이야기만 좇아도 시트콤을 즐기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또 그의 작품은 일일드라마처럼 매 회 스토리가 이어지지도 않는다. 방영분의 상당수는 그 회에 끝나는 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거침없이 하이킥>은 UCC가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환경의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지금 가장 쉽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 중 하나다. 서민정이 신지에게 달려가다가 넘어져 구르는 시간은 슬로우 모션으로 돌려도 10초가 채 되지 않는다. 마음만 먹는다면, <거침없이 하이킥>은 불과 그 시간 동안 사람을 웃길 수 있는 재료가 된다. 그래서 <거침없이 하이킥>은 작품의 팬은 물론, 세계 최대의 UCC 서비스 업체 유튜브의 동영상 플레이 제한시간 10분마저도 길게 느끼며 쉴 새 없이 짧고 재미있는 즐길거리를 찾아다니는 네티즌들를 끌어들인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처럼, 본방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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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im&S’ 시리즈 (DC 거침없이 하이킥 갤) | |
<거침없이 하이킥>의 팬들이 모이는 디씨인사이드의 <거침없이 하이킥> 갤러리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재편집본과 ‘짤방’(관련 이미지를 올리지 않으면 게시물이 잘리는 디씨 인사이드의 게시판 규칙 때문에 올리게 되는 ‘잘림 방지용’ 사진)이 올라오고, 에피소드에 관련된 온갖 편집본들이 돌아다닌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본방은 TV지만, 네티즌이 <거침없이 하이킥>을 본격적으로 즐기는 것은 본방 뒤 인터넷을 통해서다. 물론 이런 인터넷을 통한 드라마 홍보는 저작권 문제는 물론, 실질적으로 시청률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던 것이 사실이다. MBC <주몽>이 지배하고 있는 월화 미니시리즈 시간대가 증명하듯, 40%대의 시청률이 나오는 드라마는 어떤 작품을 붙여도 상승세는커녕 10%를 넘기기조차 쉽지 않다. <주몽>을 예로 들지 않아도 인터넷의 반응과 달리 저조한 시청률로 조용히 사라지거나 조기종영당한 드라마는 셀 수 없이 많다. 특히 KBS <열아홉 순정>처럼 무려 6개월 이상, 그것도 한 번 보는 드라마는 꾸준히 보는 성향이 강한 중년 시청자들이 주로 TV를 보는 일일 드라마시간대에서 유의미한 반전을 이뤄낸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거침없이 하이킥>에 대한 시청 패턴은 기존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거침없이 하이킥>은 어느 순간부터 재방 시청률이 본방 시청률보다 높게 나왔고, 다시 본방 시청률이 서서히 오르더니 2일 수도권 시청률로는 자체 최고인 14.5%를 기록했다(TNS미디어코리아 기준). 본방이 재방송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이 당연한 다른 드라마들과 달리 <거침없이 하이킥>의 시청자들은 주말시간 재방으로 <거침없이 하이킥>을 먼저 접한 뒤 본방을 보는 셈이다. 그리고 그들이 재방으로 <거침없이 하이킥>의 지난 방영분을 보게 되는 창구는 인터넷이다. <거침없이 하이킥>을 몰라도 인터넷을 하는 사람이라면 ‘야동순재’의 해프닝을 그린 동영상을 보면서 관심을 갖게 되고, 그 관심이 지나간 방송을 보게 만들며, 어느새 ‘닥본사’의 길로 안내하는 것이다.
경직된 드라마계에 날리는 회심의 하이킥
기존의 인기 드라마가 TV에서 반응을 얻은 뒤 인터넷에서 세가 확산되는 식이었다면, <거침없이 하이킥>은 인터넷이 오히려 TV에서 하는 본방을 살렸다. 물론 <거침없이 하이킥>과 인터넷의 선순환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고, 모든 드라마가 <거침없이 하이킥>의 구성을 따를 이유는 없다. 그러나 시청자가 또 다른 제작자가 돼 드라마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그것이 드라마의 새로운 홍보방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거침없이 하이킥>의 성공은 내실 있는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편성에 의해, 혹은 작은 규모로 인해 소리소문 없이 묻혀질 수 있는 드라마에 새로운 홍보 모델을 보여준다. 매스미디어인 TV의 ‘마이너’였던 작품들이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방영 전, 김병욱 감독은 <매거진t>와의 인터뷰에서 “드라마 자체가 거대화되고 산업화된다. 그런 것들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게 있다. 드라마가 순했을 때는 우리의 풍자 정신도 순했는데. 거대화, 산업화되면서 우리도 그만큼 더 비뚤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이미 드라마 산업에 회심의 하이킥을 한 방 날린 것 같다.
(글) 강명석 ( <매거진t>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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