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나라당이 법사위에 한 대못질, 알고 있다
[기자수첩] ‘이념정당’ 한나라당과 ‘민생정당’ 민주노동당
입력 :2008-12-11 15:37:00
[데일리서프 하승주 기자] 시간을 잠시 2004년 세밑으로 돌려 보자. 당시의 여의도는 일촉즉발 전장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국회 법사위원장실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점거하고 있었으며, 잠긴 문 사이로는 국회의원들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 때마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법사위원장실로 금지된 음식물이 드나들고, 가끔 소주도 반입될 뻔 했다가 발각되는 코믹(?)한 장면이 가끔 나오기도 했지만, 분위기는 비장 그 자체였다.
이처럼 한나라당 의원들이 초강경 모드로 들어간 것은 바로 ‘국가보안법 폐지’사안 때문이었다. 전국민의 70%가 국보법 폐지에 찬성하고 있었지만, 한나라당은 ‘이념을 포기할 수 없다’는 비장함 그 자체였다. 냉전시대의 낡아 빠진 악법 ‘국보법’을 지켜야 한다는 이념의 전사들은 그렇게 비장하게 2004년 연말을 전투적으로 끌고 나가고 있었다. 당시 법사위는 성추행 파문으로 유명해진 최연희 한나라당 의원이 법사위원장직을 맡고 있었으며, 그는 끝까지 국보법 상정을 반대했다. 위원장의 공정한 회의진행 따위는 ‘이념’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그때 그시절이다.
다시 2008년의 오늘로 돌아오자. 5명 의석의 미니정당 민주노동당은 숫적 열세에도 불구, 강기갑 의원을 선두로 법사위원장을 점거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파괴한다’느니, ‘이래서 민노당은 안된다느니’ 등의 온갖 악담을 다 듣고 있지만, 그들은 요지부동이다. “부자감세 법안은 안된다”는 원칙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결국 83석의 민주당이 하지 못한 ‘대여강경투쟁’을 이끌고 있다. 그들은 ‘부자감세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 질 것이다’라는 명분 때문이다. 철저하게 ‘민생’ 때문이다. 그들로 인해 국회는 공전되고 있지만, 법사위 점거의 단골손님들은 이를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과거의 야당 한나라당이 ‘이념’을 무기로 법사위에 못질을 하고 소주까지 반입시도하면서 법사위를 점거하던 2004년 당시와 지금은 얼핏 똑같은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르다.
모든 정책에 대해 ‘민생’을 이유로 어깃장을 놓으며 반대하던 한나라당은 정작 ‘이념’ 문제만 나오면 철두철미한 전사로 변신해 비타협적으로 단호한 투쟁을 전개해 왔다. 모든 정책에 ‘이념적’이라는 딱지를 받아야만 하는 민주노동당은 정작 ‘민생’문제가 터지자, 단호하게 싸우고 있다. 실상은 전혀 다른 것이다.
‘국회가 싸움만 한다’느니, ‘선진국 의회는 이러지 않는다’ 따위의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한나라당’만은 할 수 없는 말이다. 낡은 이념의 굴레에 갖혀, 국회의 의사진행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면서 어떤 타협의 여지도 남기지 않았던 한나라당만큼은 민주노동당을 비난할 수 없다. ‘이제는 우리가 여당이지 않은가?’라는 상황논리로 자신의 변신을 합리화하기에는 그 모습이 너무나 비루하다.
최악으로 치닫는 경제위기 속에 서민의 ‘민생’은 벼랑 끝에 몰려 있다. 부자들의 세금을 깍아 주고, 그 모자란 돈은 전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분담시키면서 서민들을 도울 재원은 팍팍 줄여가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는 모습은 ‘민생정당’의 모습이다.
법사위 점거의 선배격인 한나라당은 후배 민주노동당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지난 5년 내내 입으로만 말해왔던 ‘민생’을 실천할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정부의 황당무계한 예산안을 국회가 제대로 고치는 것이야말로 ‘의회주의의 복원’이며, ‘민생정당의 본모습’일 것이다.
‘국회 점거로 싸움만 한다’라는 류의 비난은 이미 몇십년동안 해 오던 말이다. 이제는 제발 ‘왜 저렇게 싸우는가’에 집중할 때다.
하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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