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dol is a wonderful Korean invention that literally means "warm rocks." It is a horizontal, floor-based heating system said to be about 2,000 years old. If this is true, then it is on-e of the oldest forms of central heating in the world. It is perfectly efficient, and even today, is a standard feature of any Korean home. You will also find it in many restaurants, tea houses, yogwan's (Korean inns) and other public establishments where people like to gather, sit on the floor and have a good time. More than just a nifty technology, on-dol is a total way of life.
2년동안 난 한국에서 지냈다. 서울 도심의 종로에 있는 3군데 여관을 거처로 삼았다. 처음 일년 남짓 되는 기간동안, 나는 옛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성두 여관이라는 곳에서 묵었다. 그곳에서 자연스례 김씨라는 작달막한 남자분을 알게 되었는데, 사근사근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자기 나이를 30~40대 정도라고 했어도 난 아마 믿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처음 맞는 겨울이 다가오면서, 이를 지켜보는 한편으로 내 마음속의 공포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살인적이라 할만큼 극단을 달린다는 이쪽 지방 날씨의 악명은 이미 속속들이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2월 초에 접어들면서 벌써부터 내가 뱉은 침방울이 길바닥에서 튕겨나가고 있을 정도였다( **역자주: 침방울이 얼어버려 길바닥에서 튕길정도로 춥다는 뜻)그렇지만 김씨 아저씨 덕분에 이렇게 살벌한 날씨가 지속되는 내내 내방에 있는 온돌-그리고 나의 '요'( 한국식 담요의 일종)-은 늘 아늑하고 따스했다. 별 달리 히터나 거추장스러운 외부 장치 같은 것이 없었다.--그런 것들은 전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어떨 때는 땀에 젖은 채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그 다음은 문이나 창문을 쾅하고 열어젖히고는 온도를 조절해야만 하는 것이다. 또 언젠가는 중앙 보일러 실 배꼽으로 내려가는 김씨 아저씨 때문에 꿈자리에서 깬 적도 있는데, 아저씨는 아궁이에 석탄(연탄)을 채워놓고 계셨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아저씨는 방이 춥기 때문에 손님을 잃을 걱정은 조금도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In the two years I have been in Korea, I have lived in three different yogwans in the Chongno area of downtown Seoul. For the first year or so, I made my home in the traditional-style Sungdo Yogwan ("the Flourishing Level Inn"), run by a smallish, amiable family man named, inevitably, Mr. Kim (if he had told me he was anywhere between thirty and fifty years old, I would have believed him). As my first Korean winter approached, I anticipated it with mounting terror, for I had heard all the horror stories about the punishing extremes of the local climate. Come early December, my spit was already bouncing off the pavement, but Mr. Kim kept my on-dol floor -- and my yo (sort of a thin Korean futon) -- toasty warm all through the killing season. I had no additional space heaters or any such external contrivances -- they would have been completely unnecessary. Sometimes I would wake in the early hours of the morning in a slight sweat, and have to crack open my door or window to adjust the temperature. At other odd hours, my dreams were gently rocked by the sound of Mr. Kim descending into the bowels of the central boiler room, feeding the furnace with more coal bricks. nulle thing's for sure -- he was in no danger of losing guests because the rooms weren't warm enough.
그 후 나는 잠시 일본에 가있었다. 그리고 돌아오고 난 뒤, 나는 김씨 아저씨가 내줄 수 있는 방보다 훨씬 큰 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난 넓직하면서 요즘 분위기가 나는 영남장 여관("영남 디럭스 여관", 영남은 한국의 남동부 지방을 일컫으며, -장은 접미사로 여기서는 '디럭스'를 뜻한다.) 으로 옮겼다. 그곳은 교보문고 근처 좁다란 골목에 있었다. 난 이 여관이 맘에 들었다. 멋들어졌다는 것(내 방은 은은한 아르데코로 꾸며져 있었고, 전화기가 어우러지면서 마무리되어 있었다.)도 그렇고, 시내 한복판에 있다는 것과 정말 죽여주는 하드 보일드한 분위기가 있다는 점이 나를 끌었다. "노씨 아저씨"는 늘 프론트 데스크에서 일하던 총각의 이름이었는데, 어쩐지 너무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After that, I went to Japan for a while, and when I came back, I decided I needed a much bigger room than what Mr. Kim could offer. So I moved into the spacious, modern Youngnam-jang Yogwan ("the Youngnam Deluxe Inn"; Youngnam refers to the Southeast region of Korea, and -jang is a suffix meaning in this case "deluxe"), off on a little alleyway near Kyobo Bookstore. I liked it because it was stylish (my room had a low-key art-deco theme, complete with matching telephone), centrally located, and had a really cool hard-boiled vibe. "Mr. Noh" was the name of the young guy who always worked the front desk, and somehow that seemed entirely appropriate.
제일 좋았던 건 바닥에 온돌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이건 진짜 중요했다. 왜냐하면 이 집에 들어왔을 땐 1월--분명히 가장 혹독한 달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한국에서는--이었기 때문이었다. 참 운도 없지, 그때가 또 하필이면 97년 imf사태 직후였다. 최악의 순간에 기름값이 두배로 뛰었다. 오랜 고민 끝에 주인 내외는 2월이 되자 더 이상은 3층으로 된 온돌 마루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같은 장기투숙객들은 전기 담요를 받았는데, 그래봤자 이건 보잘것 없는, 정상과는 거리가 있는 대용품이었다. 노씨 아저씨가 프론트 데스크에서 손님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안되겠습니다' 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방에 온돌이 되는지 손님들이 물어본 것이다. 아저씨의 말을 듣자마자 이들은 역시 "그럼 안되겠네요" 라고 응수하고는 바로 나가버리는 것이다. 2월 말까지 영남장에 머물려는 사람은 거의 한명도 없었고, 금방 파산이라도 할 듯 비틀 비틀 하고 있었다. 3월 초에 결국은 빌딩을 팔아버리기로 결정을 내리고 영남장은 문을 닫았다. 온돌이 없음으로 인해 파국을 맞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 가슴아픈 보기다.
Best of all, it was equipped with on-dol floors, which was crucial, because when I moved in it was January -- surely the cruelest month, at least in Korea. Unfortunately, it was also right after the great financial crash of '97, and fuel prices had suddenly doubled at the worst possible moment. After much worrying, the owners decided in February that they could no longer afford to maintain three stories of on-dol floors. Long-term residents like myself were given electric heating pads, which was a poor, unhealthy substitute at best. I started hearing Mr. Noh saying "no" to potential guests at the front desk, when asked if the rooms had on-dol heating. Upon hearing this, these individuals would in turn say "no" to Mr. Noh, and immediately march out. By the end of February, hardly anyone wanted to stay at the Youngnam, and it was teetering at the edge of bankruptcy. In early March, the final decision was made to sell the building and shut down: a tragic example of death by lack of on-dol.
그래서 난 다시 짐을 꾸려 현대장 여관으로 몸을 옮겼다. ("the Modern Age Deluxe Inn")이 곳은 캐나다에서 온 괘짜 예술가 친구가 예전에 추천했던 곳으로 조계사 바로 밑자락에 있었다. 조계사는 한국에서 제일 규모가 큰 불교 종파의 본부다. 밖에서 보면 볼품이 없어 보였지만--회색 타일과 평범한 콘크리트로 된 땅딸막한 4층 건물--보존 상태가 좋은 옛날식 방이( 비죽 나온 서양식 침대가 있는 방도 몇개 있었다)여럿 있어서 골라잡을 수 있었다. 내 방에는 욕실이 따로 있었을 뿐만 아니라 거울이 잘 어울리는, 자개(진주와는 성분이 다르지만 진주의 일종으로 분류됨)가 박힌 옷장, 그리고 이렇게 빼어나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한 몫하고 있는 붉은 벽 등(lamp)이 두개 있었다. 그렇지만 내 맘에 제일 든 건 바닥이다. 커스터드 빛깔이 나는 노란색 유지(기름 종이)가 뒤덮고 있었다(예전에 묵었던 방들엔 리놀리움이 깔려있었다. 싸구려긴 하지만 전통적인 종이 바닥재의 대체제로 요즘 인기가 많다); 보호를 위해 옻칠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햇빛이 비치면 호박색 벌꿀마냥 윤이 났다. 다른 방들은 반들반들한, 연분홍빛이 나는 붉은 색 벽지로 도배되어 있었고, 옅은 초콜렛 갈색으로 된 방도 몇 군데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12월 말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 이말은 해야 겠다. 온돌 보일러가 돌아가는 동안 난 정말 행복하다.--하루종일 바닥에 축 늘어져 뒹굴 수도 있다. 친구들이 오면 하나같이 신발은 현관에 던져버리고 요로 직행한다. 언제나처럼 그걸 들어올리고는 다리를 베베꼬아 집어넣는 것이다. 밖이 제 아무리 개념없이 춥다할지라도 몇 분이면 알맞게 익어버린다.
And so I packed by bags on-ce again and moved to the Hyundae-jang Yogwan ("the Modern Age Deluxe Inn"), which had been recommended some time back by a nutty Canadian artist I know. It's right at the foot of Chogye Temple, headquarters for the largest Buddhist sect in Korea, and though not much to look at from the outside -- just four blocky stories of gray tiles and plain concrete -- it has a fine selection of well-kept traditional-style rooms (and a few with raised Western beds as well). Mine has a private bath, a mother-of-pearl-inlaid dresser with matching mirror, and two red wall lamps to help create that extra special mood. But what I like most is the floor, which is covered with custard-yellow oiled paper (my other rooms had linoleum, a tacky but popular modern substitute for traditional paper flooring); it's been lacquered over for protection, and when the sunlight hits, it glows like amber honey. Other rooms have creamy, pinkish-red papering, and a few come in light-chocolate brown. As I write, it's late December, and I'll tell you right now, I just love it when the on-dol heating really gets going -- I could lounge and roll all over it day and night. When friends come over, they ditch their shoes by the door and head straight for the yo, which they invariably lift and wriggle their legs under. No matter how insanely cold it is outside, within minutes they're baked to perfection.
옛날 한국의 가정은 거의 너나 할 것 없이 크고 돌로 덮힌 화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음식을 만들 때나 물을 끓을 때, 그 외 다른 용도로도 쓰였다. 속이 텅 빈 이 토루에 중추 역할을 하는 관이 연결되어 있고, 이 관은 다시 흙마루 밑을 지나는 다른 여러 관들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렇게 해서, 화덕에서 나온 열은 이 시스템을 통해 효율적으로 힘을 받아 퍼져나간다. 집의 반대쪽 끝에 있는 굴뚝이나 환기구는 이를 돕는다.( 불필요한 연기가 자유롭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한다.) 또한, 밑에 크고 납작한 돌 여럿이 내장되어 있는 큰 방이 늘상 적어도 하나는 있었는데, 이는 불이 꺼진 후에도 그 돌 위를 지나갔던 열을 잘 잡아두고 전도시키기 위함이다: 따라서 '온돌' 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현대식 주택과 아파트는 지을 때 이 시스템을 알맞게 변형시켜 사용하고 있는데, 대게는 시멘트 마루에 동 파이프가 깔려있고, 중앙 보일러에서 데워진 물이 이 마루를 따뜻하게 하는 식이다. 사실 온돌이 지금의 현대적인 주거로 급작스럽게 변하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국 전통 건축의 한 요소인지 아닌지는 다툼의 소지가 많다.
Back in the old days, most Korean homes had a large, stone-covered fire pit, which was used for cooking, boiling water and so forth. To this hollow, sealed-off mound was attached a central flue, which was in turn connected to more flues running beneath the mud floors of the house. In this way, heat generated from the fire pit was efficiently forced and channeled throughout the system, helped along by a chimney or vent at the opposite end of the house (which also allowed any unwanted smoke to escape freely). In addition, there was always at least on-e main room under which several large, flat stones were placed, in order to better retain and conduct the heat that had flowed over them after the fire went down: hence the origin of the name "on-dol." Today, modern Korean houses and apartments are built using an adapted form of this system, usually copper pipes laid in cement floors, which are warmed up by water that's been heated in a central boiler. In fact, it can easily be argued that on-dol heating is the on-ly element of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which has survived the abrupt transition to present-day, modern housing.
문명과 불만(1930)을 보면 아주 흥미로운 각주가 몇몇 눈에 띈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문명이 하나의 실존으로 크게 뜀박질 한 것은, 우리 조상들이 허리를 펴고 똑바로 섰을 때부터 였다고 말한다. 여러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그의 뒤를 이어 계속해서 이 생각을 추종하고 발전시켰으며, 최근에는 예술사가 Rosalind Krauss 가 1993년 저서 '시각적 무의식'을 통해 그 뒤를 따랐다. 프로이드가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인간이 아직 4발로 기어다니고 있을 무렵 그는 주로 냄새 지향적이었다. 이는 그 자신이 땅과 자신의 생식기,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뾰족한 엉덩이에 가까이 있었던 탓이다.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동물과 다름없는 상태에서 그와 자연과의 관계는 원초적이고 직접적이었으며,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 매개된 것이 아니었다. 허리를 편 자세로 바뀌게 되면서 덩달아 시각이 관심을 유발하는 우선 동기가 되었는데, 그는 이제 등이 곧추선 상태였고, 밑에 있는 땅으로 부터는 더 멀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때 인간은 이전의 순진무구한 자연 상태로부터 고립된 것이다: 갑자기, 동료의 성기가 그의 눈에 들어왔고, 수치라는 감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새로이 거리를 두고 중립이 된 그의 시각에서, 세상에 있는 사물은 그 많은 것들이 하나같이 직관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것 이라기보다는, 곰곰이 생각하고 몸에 익혀야 할 개별적인 것들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런 존재적 충돌의 직접적인 결과로 억압 본능이 자라나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문화와 문명은 처음으로 시험적이고 의기양양한 걸음마를 뗐다.
There is a very interesting pair of footnotes in 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 (1930), in which Freud suggests that human culture made its first great leap into being when our ancestors assumed an upright, standing posture. This idea has subsequently been pursued and developed by various gestalt psychologists and, more recently, by art historian Rosalind Krauss in her 1993 book The Optical Unconscious. In Freud's understanding, when man still traveled on all fours, he was oriented mainly by a sense of smell, due to his proximity to the ground, his own genitals and a no doubt pungent posterior. In such a profoundly animalistic state, his relationship with nature was primal and direct, unmediated by external factors. The transition to erect carriage was accompanied by a shift to a primarily visual orientation, for he was now vertical, and much further from the ground below. At that moment, man became alienated from his previously naive, innocent state of nature: suddenly, he could see his mate's exposed genitalia, and a sense of shame began to appear; and from his newly aloof, detached perspective, objects in the world became so many separate things to be contemplated and acquired, rather than intuitively and immediately experienced. And so repression set in, a direct consequence of this existential rift, and at the same time culture and civilization took their first tentative, triumphant baby steps forward.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억압은 땅이고, 모든 문명은 그 위를 “걷는다.”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곧추서는 것 보다는 수평적인 것이 더 자연스럽다. 서양에서 자라는 동안, 나는 한 번도 의자, 소파, 걸상, 벤치의 기능적인 “자연스러움”에 대해선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이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서있는 것과 드러눕는 것이 기분 좋게 타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기 아시아에서 몇 년을 보낸 후, 나는 이들을 소위 “더 우월한” 문명의 더 인공적인 표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결국+(만약 전부가 아니라면) 거의 모든 서구 사회는 스스로를 저 아래의 “더러운” 바닥으로부터 되도록이면 높이 끌어올리기 위해 애써 왔던 것은 아닐까? 벌떡 선 탁자, 서있는 침대, 그리고 정말 예외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갖가지 형태와 종류의 가구들의 모습으로 말이다. “토대가 되는” 1층이 사실은 문명을 만든 억압을 떠올리게 하는, 불쾌하고 기분 나쁜 존재가 아닌 것 같지 않은가? 특히 집안 내부 공간 이라든가, 그 외 인공적인, 사람이 만든 환경을 배경으로 놓고 봤을 때 말이다.
그리고 의자는 또 어떤가. 사람 몸뚱어리를 90도 각도로 꺾인 기괴한 z형(지그재그)로 깎아 만든 것 아닌가. 이제 이 의자들이 우리 몸을 가사상태까지 가도록 얼려버리기 위한 ‘등이 죽 펴진’ 노력으로 보일 지경이다. 서있게 하는 것도, 앉도록 하는 것도 아니다. 상충되고, 어느 쪽도 아니며, 스스로를 자연보다 높은 위치로 끌어올리려는 끊임없는, 무의미한 시도를 물리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는 형이상학적이다.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난 이제 이 의자들을 곤혹스런 연민으로 올려다본다. 특히 온돌 위에서 몸을 지지고 있을 때..
Or to put it another way: repression is the ground upon which all civilization "walks." And even more simply: it is more natural to be horizontal that vertical. Growing up in the West, I never thought to question the functional "naturalness" of chairs, sofas, stools and benches, which seem to offer a happy compromise between standing and resting. But after a number of years here in Asia, I've come to see them as far more artificial emblems of so-called "higher" civilization: after all, haven't most, if not all, Western societies sought to elevate themselves as much as possible from the "dirty" ground below, in the form of raised tables, standing beds and indeed furniture of most types and description? Is it not likely that the "base" ground floor is in fact a rather disturbing, unpleasant reminder of civilization's founding repression, particularly in the context of domestic spaces and other artificial, man-made environments? And what about chairs themselves, which sculpt the human body into an awkward zigzag of severe right angles? I almost see them now as stiff-backed attempts to freeze the body in a state of suspended animation, neither standing nor really sitting, conflicted, ambivalent, nearly metaphysical in the way they physically describe man's incessant, futile efforts to raise himself above nature. More than anything else, I look upon them now with a sense of bemused compassion, especially when I am relaxing on a warm on-dol floor.
실은 난 지금 바로 그걸 하고 있다. 지금 머물고 있는 방은 크고 널찍했으며, 안락하다. 그런데 의자나 소파는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그저 완전히 쓸모없는 잡동사니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난 손님맞이를 위해 방석을 잔뜩 마련해놓고 있는데, 꽤 쓸모 있다: 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온돌 바닥(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그 아래를 계속 지나다니는 공기 때문에 시원하다)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해주고, 필요 없을 때는 눈에 띄지 않도록 옷장에 보관할 수도 있다. 이렇게 방석을 깔면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더 친밀해지고, 덜 딱딱해진다. 의자에 앉는 것이 대게는 더 딱딱하고, 분리되며, 제 각각 흩어지는 느낌을 주는 것과는 다르다. 불필요한 것은 죄다 빼버린, 불교의 선을 떠올리게 하는 내 방의 간결함과 지금의 생활방식에 꽤 만족하게 되었다: 여기엔 공간이 있고, 더욱 수평적이며 자연스러운 존재의 방식을 즐길만한 유연함이 있다. 발 뻗고 푹 쉴 자유가 있고, 원하는 건 뭐든 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Which is, in fact, exactly what I am doing right now. The room I currently live in is large, wide-open and comfortable, but there is not a single chair or sofa in it, for they would merely be so much unnecessary clutter. I have plenty of cushions for guests, and they do the job quite well: they allow the sitter to be close to the on-dol floor (which is warm during the winter and cool during the summer, because of the air that continually passes beneath it), and can be stored out of sight in a closet when not in use. Such an arrangement also creates a closer, more casual atmosphere between people, unlike chair-based seating, which is usually more formal, separate and spread out. I have grown quite content with the stripped-down, Zen-like simplicity of my room and present lifestyle: it provides the space and flexibility to enjoy a more horizontal, natural mode of being. I have the freedom to kick back and be all that I can be.
마룻바닥 위주의, 자리에 앉는 생활방식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난방 기술을 그렇게 위화감 없이, 조화로운 방식으로 마룻바닥에 접목시키는 천재성을 보인 곳은 오직 한국 뿐 이었다. 다른 아시아 국가(이를 테면 일본의 코타트, 혹은 밥상 난방기 같은)의 전통 난방 방식과는 다르게, 온돌 시스템에서는 외부로 드러나는 것이 전혀 없다: 이는 오직 한국 건축물과 생활공간만이 갖는 특징이다. 한마디로 너무나 눈부시다. 오랜 기간 동안 따뜻하게 지낼 궁리를 해왔던 인류에 있어 온돌은 너무나 간단하고 실용적인 해법이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열이 올라오면 그 바로 위에 있는 것이 제일 좋은 것 아닌가? 어떤 식으로 들여다보든, 온돌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While a floor-based, sit-down lifestyle is not unique to Korea, on-ly Korea has had the genius to marry the technology of heating to it in such an intimate, harmonious way. Unlike traditional heating methods found in other Asian countries (like the Japanese kotatsu or table heater, for example), there is nothing external about the on-dol system: it is an intrinsic feature of Korean buildings and living spaces. It is so brilliant precisely because it is such a simple, practical solution to humanity's age-old quest to stay warm -- after all, if heat rises, isn't it best to be right above it? No matter how you look at it, on-dol heating truly is out of 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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