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17일 토요일

[펌]차붐"프랑스도 안다, 우리가 얼마나 독한지 …"

차붐@월드컵 6 "프랑스도 안다, 우리가 얼마나 독한지 …"

 

[중앙일보 2006-06-16 10:17]

 

독일 월드컵에서 일본이 호주에 역전패하고, 우리는 프랑크푸르트의 찜통 슈타디온에서 토고에 역전승을 거뒀다. 일본이 보여준 화려한 경기는 안정되고 보기에 좋았다. 그러나 우리 팀의 전반적인 경기 내용은 그와 반대였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 있다. '축구는 피겨스케이트가 아니다'라고. 경기가 끝난 뒤 경기 내용을 종합해 점수를 매기는 게 아니라 공을 골대 안으로 넣는 팀이 이기는 거다. 목표는 골이다. 일본과 한국은 다르다. 흐르는 피가 다르고 먹는 음식이 다르다. 그들의 힘이 서로 돕고 함께하는 거라면, 우리의 장점은 웬만해선 머리 숙이지 않고 겁 없이 돌진하는 것이다. 골은 아무나 넣는 게 아니다. 내가 무엇을 해결하겠다는 성향을 가진 자라야 골게터로서의 자질이 있다. 그래서 '감독하고 골키퍼, 그리고 오른쪽 윙은 미친×들이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있다. 독하고 강하고 고집스럽기까지 한.

 

1979년 독일에 처음 왔을 때, 일본 상표가 화려하게 프린트된 분데스리가 선수들의 유니폼을 보는 것은 부러움이었다. 나의 분데스리가 첫 유니폼도 미놀타라는 일본 카메라 회사의 광고가 새겨진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일본 사람이기를 기대하고 물었다가 "한국인"이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 순식간에 시선을 앞으로 향하고 입을 닫아버리는 독일 사람을 보는 것은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경험이었다.

 

어느 날, 레버쿠젠 운동장에 'GOLD STAR' 광고판이 떴다. 나는 그날 두 골을 넣었다. 그 광고판이 달린 전차를 보려고 아이들을 데리고 뒤셀도르프까지 간 일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먼 옛날 얘기다. '한국 기업이 없다면 독일의 광고회사들은 뭘 먹고 살까'하는 건방진 생각이 들 정도다. 남을 칭찬하는 것은 여유다. 나는 일본의 경기를 보면서 그들을 칭찬하지 못할 아무런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적어도 내가 몸 담고 있는 축구는 그들을 격려할 만큼 자신 있다.

 

요즘 나와 같이 방송 해설을 하고 있는 아들 두리가 '삼성'이 새겨진 휴대전화를 선물하면 연봉이 수십억원인 독일 선수들도 신기해 쳐다본다. 이때 우리 아들놈이 꼭 한마디 덧붙인다.

"이거 독일에는 아직 없는 거야. 한국에서 우리 아버지가 가지고 오신 거야!"

 

그 말이야말로 지난날 우리가 듣고 기죽어 하던 소리다.

'이거 한국에는 없는 거야!'

 

진짜 월드컵은 지금부터다.

새로운 팀과 새로운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경기에 꼬투리는 잡지 말자. 이긴 건 이긴 거다. 승점 3이 어디냐. 토고의 3패와 프랑스의 3승을 바탕으로 한국과 스위스가 16강 진출국을 가를 것이라는 게 우리의 대체적인 예상이었다. 그런데 스위스가 프랑스를 상대로 승점을 챙겼다. 그러면 우리도 챙겨야 한다. 바로 이럴 때 우리들만의 기질이 변수가 된다. 프랑스도 알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독한지.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 중앙일보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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