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29일 목요일

Frienger/フレンジャー-Otsuka Ai

 

Frienger/フレンジャー-Otsuka Ai

 

ミルクパンをほおばりつつ チョコパイにも手を伸ばす
미루쿠빵오호오빠리츠츠 쵸코파이니모테오노바스
밀크빵을 한입 가득 넣으며
쵸코파이에도 손을 뻗어요

もう1つ食べたいわ もう1つ食べたいわ
모-히토츠다베타이와 모-히토츠타베타이와
하나 더 먹고싶어요 하나 더 먹고싶어요

心を解き放って おしゃべりを?しみましょ
코코로오토키하낫테오샤베리오타노시미마쇼
마음을 풀어 헤치고 수다를 즐겨요

もう1杯?みたいわ もう1杯?みたいなぁ…。
모-입빠이노미타이와 모-입빠이노미타이나아-
한잔 더 마시고싶어요 한잔 더 마시고싶어요

桃色の?に?んだ後 またチュ?したくなる
모모이로노코이니나얀다아토 마타츄-시타쿠나루
복숭아빛 사랑에 고민한 다음은 또 뽀뽀 하고싶어져

仕事疲れを癒すブル?スカイ ?日が dance & fight!!
시고토즈카레오이야스부루
스카이 마이니치가 dance & fight!!
일에지친 피로를 풀어주는 Blue sky
매일매일이 dance & fight!!

何かイヤになったら できる限りで 
いつだって そこにかけつけてあげる
나니카이야니낫타라 데키루카가리데
이츠닷테소코니 카케츠케테아게루
뭔가 하기싫어졌다면 할수있는 만큼만
언제나 그곳에 달려가 줄께요

何もいらないさ 好きにすればいい 
いつだって そこにいてあげるんだ!
나니모이라나이사 스키니스레바이이
이츠닷테소코니 이테아게룬다
아무것도 필요없어요 맘대로 해도 좋아요
언제나 그곳에 있어줄꺼야

手作りのおむすびランチ 
中身はきっと ロシアンル?レット
테츠쿠리노오무스비란치
나카미와킷토로시안루-렛토
점심은 손수만든 주먹밥 속은 러시안 룰렛

もう1つ食べたいわ もう1つ食べたいわ
모-히토츠다베타이와 모-히토츠타베타이와
하나 더 먹고싶어요 하나 더 먹고싶어요

女は優しく?くよ 乾杯に花?かせましょ
온나와야사시쿠츠요쿠 칸판니하나사카세마쇼-
여자는 상냥하면서 강하죠 건배로 꽃을 피워봐요

もう1杯?みたいわ もう1杯?みたいなぁ…。
모-입빠이노미타이와 모-입빠이노미타이나-
한잔 더 마시고싶어요 한잔 더 마시고싶어요

いろいろとエネルギ?が必要 ?で補給して
이로이로토에네루기-가히츠요- 미도리데호쿄-시테
여러가지 에너지가 필요해요 초록색으로 보강해서

幸せ?色の絆は ありがとう と ごめんなさ?い!
시아와세키이로노키즈나 아리가토-토고멘나사이
행복의 노란색인연은 고마워요 와 미안해요

何かに迷ったら 思うようにして 
いつだって 君の味方でいるよ
나니카니마욧타라 오모우요-니시테
이츠닷테키미노미카타데이루요
무언가가 헷갈린다면 생각나는대로 해요
언제나 그대 편에 있어요

どんなスト?リ?も ありえる世界で 
いつだって君を受け止めてあげる
돈나스토-리-모 아리에루세카이데
이츠닷테키미오우케토메테아게루
어떤 일도 일어날수있는 세상에서
언제나 그대를 받아 들여줄께요

生きるからこそもっと燃える それは赤いハ?ト
이키루카라코소못토모에루 소레와아카이하-토
살아가기 때문에 더 불타오르는 그것은 빨간 하트

1人はとてめんどうだから 
?日が フレンジャ?で fight!!
히토리와토테멘도-다카라
마이니치가 후렌쟈-데 fight!!
혼자서는 귀찮으니까 매일매일이
Frienger로 fight!!

何かイヤになったら できる限りで 
いつだって そこにかけつけてあげる
나니카이야니낫타라 데키루카가리데
이츠닷테소코니 카케츠케테아게루
뭔가 하기싫어졌다면 할수있는 만큼만
언제나 그곳에 달려가 줄께요

何もいらないさ 好きにすればいい 
いつだって そこにいてあげるんだ!
나니모이라나이사 스키니스레바이이
이츠닷테소코니 이테아게룬다
아무것도 필요없어요 맘대로 해도 좋아요
언제나 그곳에 있어줄꺼야

 

 

 




< 출처 : 이고네 >

 
 
 


 

[펌]말많은 스위스전 패러디 모음!






공짜는 아니지만....

내 생에 처음으로 사설? 보험 하나 들었다.

 

지난 겨울 입원했었을때 보험하나 들어 두었으면 했던 생각에 저렴한 종신보험 하나 들었다.

 

그리고 관리차원에서 설계사가 준 5만원짜리 문화상품권~~^------^

 

웬지 공 돈 생긴것 같아 기분이 매우 좋다.

 

영화보러가야쥐~~

 

룰룰루~~~

 

 

 

근데 왜 보험들은 내가 죽은 뒤에야 돈을 더 주는 걸까......

 

2006년 6월 25일 일요일

[펌]스위스쏭 ! 유행시켜주세요

--이뿌닝BB님--

제가오늘집청소를하면서

하나지어봤습니다

 

 

원곡 :

화창한 봄날에

코끼리아저씨가

가랑잎타고 태평양 건너갈때에

고래 아가씨

코끼리 아저씨보고

한눈에 반해

스리슬쩍 윙크했데요

 

나는 육지멋쟁이

당신은 바다 이쁜이

천생연분 결혼합시다

이야이야이야이야

 

예식장은 용궁 예식장

주례는 문어 아저씨

피아노는 오징어

예물은 조개껍데기

 

 

 

 

개사 :

화창한 봄날에

블래터 회장님이

비행기타고 스위스 건너갈 적에

블래터 회장님

엘리손도 심판님보고

한눈에 반해

스리슬쩍 윙크했데요

 

나는 돈많은회장

너는 돈없는심판

스위스전 잘좀해줘

얼마얼마얼마얼마

 

엘리손도 엄청받았네

회장님 적금깨졌네

스위스는 돈많아

희생양은 대한민국

 

 

2006년 6월 24일 토요일

[펌]늦게 핀 꽃 '최진철', 감동 동영상





우리 국가대표 축구팀 수비의 중심인 최진철 선수에 관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남다른 관심을 얻고 있다. 연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비교적 관심이 적었던 최진철 선수에 대한 네티즌들의 애정이 이 동영상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한국시간 지난 13일 토고전과 19일 프랑스전을 지나치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은 선수들은 단연 골을 성공시킨 이천수, 안정환, 박지성 세 선수다. 경기가 끝난 후 국내를 비롯한 세계의 여러 사이트 게시판에는 이들 선수의 이름이 오랫동안 오르내렸으며, 그들의 경기를 넘어선 생활까지 다른 이들의 관심이 미치지 않은 부분이 없을 정도다.

 

이런 가운데 수비수인 최진철 선수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뒤에서 묵묵히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있던 최진철 선수에 대한 새로운 조명인 동시에 뒤늦게 핀 꽃에 대한 찬사인 동영상에 네티즌들의 감동이 이어지고 있다.

 

동영상에는 31살, 축구 선수 나이로 치면 불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이에 월드컵 엔트리에 처음 오른 최진철의 모습이 보인다. 처음 뛴 월드컵에서 첫승을 거쳐 16강에 진출해 뛰게 된 최진철, 그러나 이탈리아전 전반 18분 전담 마크 실패로 인해 실점하게 되는 상황이 영상 속에서 이어진다.

중간에 삽입된 인터뷰 영상에는 다른 선수들에게 미안했고, 그 미안함을 빨리 잊어버릴 수 있었던 건 해낼 거라는 다른 선수들의 믿음이었다고 말하는 최진철 선수가 보인다. 그의 믿음대로 설기현의 동점골에 이어 안정환의 골든골로 우리나라는 4강 신화까지 이루게 된다.

 

이어지는 최진철 선수의 멋진 활약 장면과 함께 이번 월드컵에도 역시 출전하게 된 최진철 선수의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면서 후배들을 독려해 나갈 것"이라는 말이 텍스트로 흘러간다. '늦게핀 꽃, 하지만 아직은 질 때가 아닙니다'라는 마지막 문구에는 많은 네티즌이 "감동적이다"라는 찬사를 전하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만 해도 육상 선수였던 최진철이 지난 1993년과 1997년에 두 차례 국가대표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경기장에서 뛴 시간은 두 경기 합계 고작 3분에 불과했다. 거기다 미국 월드컵을 앞둔 1993년에는 훈련 중 발목이 돌아가 아예 뛸 수 조차 없었던 상황이었고 프랑스 월드컵을 앞둔 1997년에는 브라질과의 평가전 경기 종료 3분전에 교체 투입된 후 속절 없이 태극 마크를 반납 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최진철은 지난 2002년 월드컵에 이어 이번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전문가 네티즌 평점에서 높은 성적을 차지하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최진철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과 사랑 역시 이 동영상을 보듯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6년 6월 23일 금요일

[펌]재밌는 표정의 강아지





 
 
 
 

계란빵으로 둔갑?한 식빵

오후2시...

 

갑자기 빵이 먹고 싶어졌다.

 

길건너 파*바겟또엘 갔다올까....

 

오늘 낮 최고기온이

 

29도랬지...?

 

.....

 

그냥 물이나마시고 있자니

 

빵이 너무 먹고프다.

 

그래서 궁여지책!!!

 

계란빵!!!!!

 

 

준비물: 식빵8장/계란4개/우유머그컵으로한잔/설탕기호에따라 맘대로ㅡ,.ㅡ

1. 계란 + 우유 + 설탕 섞는다.

2. 식빵 8장을 주방가위로 조각낸다.

3. 팬에 식빵을 깔고 1.을 골고루 뿌려준다음 지긋이 눌러준다.

4. 오븐에 200도 온도에서 5~8분정도 굽는다.


 

 

 
솔직히 어떤맛이 나도 먹을만은 하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의외로 맛있다.
 
요즘 찾아보기 힘든 계란빵 맛이랑 똑같다.
 
으히히히
 
나도 맛을 그리는 능력이.....^0^
 
 
 
 
 

2006년 6월 22일 목요일

[펌]태극전사 4음절 시

지도로 보는 월드컵 명소 ① 시청

지도로 보는 월드컵 명소 ① 시청

한 장 들고 나가면 모두 해결된다!
editor 전필호, 이미란, 김지덕 illustrator 김소영

무작정 태극기 들고 서울광장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 다음엔? 어디서 먹을지, 마실지, 씻을지에 대한 고민을 완전히 해소해줄 월드컵 명소 스폿이 여기 있다.

Bar & Hof
비어호프 시청역 근처에 위치해 있어 응원전을 마치고 맥주 한 잔 마시기에 좋다. 홀도 넓어서 단체로 찾아도 좋다. 
▒ Infomation
02-713-6966  |  16:00~01:00  |  안주류 1만원대
둘둘치킨호프 양파, 마늘, 한약재 등 14가지 재료로 만든 양념을 발라 튀겨낸 바삭한 치킨과 시원한 생맥주가 있는 곳.
▒ Infomation
02-752-9537  |  12:00~02:00  |  치킨, 골뱅이 1만원대
오키도키 시청 주변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 편안한 분위기의 호프집. 가격대도 부담 없는 편이어서 주머니 걱정 없이 찾을 수 있다.
▒ Infomation
02-754-3944  |  12:00~02:00  |  안주류 1만원대
뢰벤호프 가게 곳곳에 텔레비전을 놓아서 손님들이 편안하게 경기를 시청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 Infomation
02-752-0762  |  18:00~03:00  |  안주류 1만2000원부터


Sauna & Spa
북창탕 서울광장과 가장 가까이 위치한 사우나. 남녀 모두 이용할 수 있다. 
▒ Infomation
02-755-9888  |  05:00~20:00  |  4000원
종로온천사우나 황토찜질방 시설이 잘되어 있는 남녀 사우나. 
▒ Infomation
02-720-6366  |  24시간  |  5000원


Hotel
웨스틴조선 서울 ‘어게인 2002’ 패키지 상품을 판매한다. 월드컵 경기 당일과 월드컵 기간 주말에 이용 가능.
▒ Infomation
02-317-0404  |  24만원
서울프라자호텔 ‘저스트 어나더 월드컵’과 ‘월드컵 싱글’ 패키지를 판매한다.
▒ Infomation
02-771-2200  |  월드컵 싱글 15만원


Restaurant
소문난 김치찌개 시원하고 개운하면서 깔끔한 맛의 김치찌개집.
▒ Infomation
02-752-1927 08:00~21:00 김치찌개 (2인분) 1만2000원
부추밭 부추비빔밥도 맛있지만 함께 나오는 해물된장찌개 맛도 예술이다.
▒ Infomation
02-755-9460  |  10:00~22:00  |  부추비빔밥 5500원
현대칼국수 멸치, 북어 머리, 새우, 바지락 등 7가지 재료로 고아낸 뽀얀 국물이 맛있는 칼국수집.
▒ Infomation
02-752-9504  |  09:00~21:00  |  칼국수 4000원, 물만두 2500원
아바이순대 대창 안에 돼지 피와 나물, 파를 넣고 찐 진짜 순대로 구수한 순댓국을 끓여낸다.
▒ Infomation
02-752-7982  |  10:00~22:00  |  순댓국 5000원, 순대 1만4000원
전주유할머니집 얼큰하고 개운한 전주식 콩나물국밥과 비빔밥이 맛있는 집.
▒ Infomation
02-752-9282  |  07:00~22:00  |  콩나물국밥 5000원
전주중앙회관 콩나물국밥과 20가지 채소를 얹은 곱돌비빔밥으로 유명한 곳.
▒ Infomation
02-776-3400 08:30~22:30 전주곱돌비빔밥 8500원, 콩나물국밥 5500원
잼배옥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뽀얀 설렁탕으로 3대째 사랑받는 곳. 
▒ Infomation
02-755-8106  |  07:00~22:00  |  설렁탕 5000원


 

지도로 보는 월드컵 명소 ② 광화문

지도로 보는 월드컵 명소 ② 광화문

한 장 들고 나가면 모두 해결된다!
editor 전필호, 이미란, 김지덕 illustrator 김소영

무작정 태극기 들고 서울광장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 다음엔? 어디서 먹을지, 마실지, 씻을지에 대한 고민을 완전히 해소해줄 월드컵 명소 스폿이 여기 있다.

Bar & Hof
벅 멀리건스 서울에서 제대로 된 기네스 맥주를 맛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일랜드풍 맥줏집. 경기 결과에 따라 마른안주와 생맥주를 무료 제공한다.
▒ Infomation
02-3783-0004  |  12:00~24:30 (14:30~18:00 브레이크 타임)  |  수입 생맥주 6000~8500원, 안주 1만원대
쌍쌍호프 종로에서 가장 오래된 호프집. 500명 이상 수용할 수 있어 단체 응원 시 이용하기 좋다.
▒ Infomation
02-774-0804  |  24시간(응원전 당일)  |  병맥주 3500원부터, 생맥주 (2000cc) 9000원부터
아사히 오리엔 걸쭉하면서도 생크림처럼 부드러운 거품 맛이 특징인 아사히 생맥주를 맛볼 수 있는 유일한 곳.
▒ Infomation
02-776-8986  |  11:30~24:00  |  아사히 5800원, 카스 2500원  |  무교동 코오롱빌딩 2층
옥토버페스트 한국인 최초의 브루마스터 방호권 씨가 운영하는 정통 독일 맥줏집. 브로이 맥주를 마시고 싶은 사람에게 안성맞춤인 곳이다.
▒ Infomation
02-738-8881  |  11:30~24:00  |  생맥주 5000원, 안주 1만5000원부터
JS텍사스바 120여 종의 세계 맥주와 다양한 안주로 인기를 끄는 곳.
▒ Infomation
02-774-0804  |  24시간(응원전 당일)  |  병맥주 3500원부터, 안주 1만5000원부터
다동치킨골뱅이 저녁이 되면 야외에 테이블이 설치돼 생맥주를 마시며 시원하게 응원할 수 있다.
▒ Infomation
02-778-2935  |  16:00 ~01:30  |  병맥주 3500원, 골뱅이 1만4000원


Sauna & Spa
대청사우나 남성 전용 24시간 사우나. 찜찔방과 수면실도 있다.
▒ Infomation
02-739-4456  |  24시간  |  6000원  
코리아나호텔 휘트니스 사우나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남성 전용 사우나. 헬스와 사우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 Infomation
02-738-0066  |  24시간  |  1만8700원


Restaurant
깡장집 된장비빔밥이 맛있는 집.
▒ Infomation
02-720-6152  |  07:30~22:00  |  깡장 4500원
경원집 피맛골에서 가장 오래된 족발집.
▒ Infomation
02-734-7024  |  09:00~24:00  |  족발 (대) 2만5000원
대림식당 피맛골에서 생선구이로 40년을 지켜온 곳.
▒ Infomation
02-739-1665  |  09:00~ 24:00   |  삼치구이  5000원
공을기객잔 청계천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중식 레스토랑.
▒ Infomation
02-318-6700  |  11:30 ~23:00  |  식사 5000원부터, 요리 1만7000원부터
청류관 샤부샤부를 주문하면 육수와 고기, 상추쌈이 함께 나온다.
▒ Infomation
02-733-1907  |  11:00 ~22:00  |  상추알쌈샤부샤부 (1인분) 7000원, 국수사리 2000원
서린낙지 40년 넘게 낙지볶음으로 명성을 날리는 곳.
▒ Infomation
02-735-0670  |  11:30~ 23:00  |  낙지볶음 1만3000원


 

[펌]남자에게 할말이 없습니다.- 개념탑재목적글

사회가 그 구성원들의 행동을 규율하는 방식에는 오직 법적 제재만 있는 게 아닙니다. 남자들은 그런 경험이 없습니까? 사회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혼인적령기가 됐는 데도 남편감으로 찍어둔 남자도 없고 별로 결혼할 생각도 없어 보이는 미혼여성들에게는 가족에서부터 일가친척, 지인들과 직장선배, 상사 할 것 없이 심심할때마다 시집 언제 가느냐는 질문이 다그치듯 쏟아집니다. 결혼하기 싫은데요, 라는 대답이 들려오면 아직 뭘 몰라서 그렇다는 둥, 인연을 못만난 거라는 둥, 혼인의 자유 중에는 혼인을 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무시됩니다. 남자들은 그런 끔찍하고 지겨운 경험을 보고 들은 적이 없나요? 아니면 그런 경험을 하기가 싫어서 하루빨리 인연을 만나 결혼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집니까? 아니면 스트레스가 쌓여도 꾹꾹 눌러참고 말아버리나요.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고 단 둘이서만 사는 부부도 꽤 이상한 눈초리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늙으면 자식 밖에 없다느니, 물려줄 자식이 없으면 억만금이 있어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둥 하는 이야기가 해파리처럼 주변에서 둥둥 떠다닙니다. 부인이 직장을 가지고 있어도 마찬가지예요. 부인이나 남편 중 한 사람에게 무슨 신체적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요상한 뒷공론도 돌아요.



여자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운이 좋아 여자의 선택을 전적으로 지지해주는 부모님과 남편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주변에서 끊임없이 이상한 눈길을 보내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외적인 체면이랄까, 평탄을 엄청나게 의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출산과 양육은 개인의 자유이고 그건 법적으로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으니 그게 무슨 부담이고 의무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에게 묻겠습니다. 본인의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시절을 떠올려보세요. 선생님이 학생에게 행사하는 권력 내지 영향력은 어느 정도 법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학생에게는 선생님, 혹은 교수님의 지시를 따라야 할 어느 정도의 의무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학교선배가 후배에게 미치는 영향력에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됩니다. 후배에게는 선배의 명령에 따라할 의무가 없습니다. 하지만 학창시절때 선배들이 은근히 강요했던 이런 저런 일들 앞에서 당당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었던 분들, 계십니까? 너무나 당연하게 '하기 싫으니까 안하는 데요.'라고 말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출산과 양육이 정말로 권리이고 병역과 같은 의무가 아니라면 권리자인 여성들은 '나는 내가 결혼하고 싶을 때 결혼하고 애낳고 싶을 때 애낳겠다'라고 그 누구 앞에서라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어머니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며느리를 상상하실 수 있으십니까? '전 남편을 매우 사랑하지만 제 일도 중요하기 때문에 제 일에 방해가 되는 아이는 낳지 않을 생각이에요. 그로 인해 O씨 집안의 핏줄이 끊어지는 것은 유감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당장 싸가지없는 년으로 찍혀서 두고두고 동네방네 회자될 겁니다. 선택의 자유라는 것은 어느쪽 선택을 해도 그로 인해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이 비슷비슷한 경우에나 적용되는 말이죠.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미혼/기혼여성들은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출산율이 낮죠. 모두가 임산부를 축복하고 아이가 태어난 것을 기뻐한다고요? 그런데 왜 직장에서는 여직원이 임신을 하는 것을 싫어합니까? 출산휴가는 당연한 것인데도 그걸 얻어쓰려면 남자동료들의 눈치가 이만저만 보이는 게 아니라서 그 마음고생때문에 법적으로 정해진 휴가를 다 못쓰고 대충 몸을 추슬러 직장으로 돌아간다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 데 그 사람들은 여기 대한민국이 아니라 어디 4차원에 사는 사람들인가요?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임신하는 것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는 그 철옹성같은 믿음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겁니까? 군대생활 힘들고 무섭다고 말씀하실 때 그게 엄살이 아니라 진짜라는 거 믿습니다. 얼마나 괴로울지는 제가 직접 겪어보지 않아서 안다고 말씀드리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 싫은 마음이 이기심이 아니라 진짜 한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는 거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대한민국 땅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거 결코 쉬운 일 아니라고, 여기서 더 많은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사회적 자살이나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할 때 좀 생각해보는 척이라도 해보세요. 우리나라 맞벌이 부부 중에 정말로 공평하게 육아를 비롯하여 가사일을 정확하게 1대1 비율로 나누고 사는 사람 얼마 안됩니다. 대개의 경우 여자가 더 꼼꼼하고 세심하다는 이유로 조금이라도 더 일을 하고 아이들을 보육원에 보내는 문제나, 교육에 관련해서도 여자가 더 고민을 많이 합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어쩔 수 없이 여자가 더 빨리 피곤해집니다. 저는 지금 이 나이까지 살면서 구속당하고 얽매이기 싫으니까 앞으로 어지간하면 결혼하지 않을 거고 자식도 안낳을 거라고 말하는 여자들은 많이 봤지만 자기 커리어에 방해가 되니까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가지지 않겠다고 말하는 남자들은 본 역사가 없습니다. 정말로 이런 현상이 여자들이 이기적이기 때문입니까? 결혼을 해서 2세를 가진다는 사실은 남자의 사회적 경력에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자에겐 방해가 됩니다. 아무리 가사분담에 철저한 남편을 두었다한들 뭔가 일이 터졌을 때, 아이가 아프다던가 사고가 났다던가 하면 결국엔 그 모든 것은 여자의 책임이 됩니다. 둘이 똑같이 직장생활을 하는, 근무시간도, 작업의 난이도도 비슷한 두 부부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병원에서, 혹은 학교에서 직장으로 전화가 걸려왔을 때 직장상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찍 조퇴하고 싶다고 말하기 편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마 어지간한 상사를 만나지 않고서야 여자의 경우 '남편이 어디서 뭘 하길래 자네가 달려가?'라는 말을 들을 일은 없을 겁니다. 이건 결국, 똑같이 밖에서 일해도 '아이'에 관련된 문제는 종국에는 여자가 짊어져야 할 책무가 되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감수하고서라도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을 자신의 기쁨이자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분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세요. 모성신화로 포장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자식인데 당연히 몸에 좋다는 모유수유도 하고 싶고 알러지나 피부질환에 걸리지 않게끔 천기저귀도 채우고 싶고 나중에 크면 유기농 이유식도 직접 만들어 먹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입고 다니는 다림질 열심히 하며 기쁨을 느끼는 여자들이 없는 거 아닙니다. 그런 것에서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게 당연한 의무처럼 여기지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데 오직 나 혼자만 아둥바둥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아무리 좋은 일도 싫은 것으로 변해버립니다. 두번째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는 말이 왜 나오겠습니까. 아무리 좋아하던 것도 일로 변해버리면 싫어집니다.



법으로 정해져있지 않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 어떻게 그리 확신합니까?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법이 정해준 모든 기본권을 마음껏 향유하며 살 수 있는 나라였습니까? 우리나라 법 그 어디에도 동성애자들을 차별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나라가 성적 소수자들에게 관대한 나라입니까? 법보다 더 강력한 것이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이른바 '암묵적인 룰'이라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아무 의식없이, 거의 자동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남편이 가사일을 '도와준다'고요. 육아와 가사는 아직도 '도와주는' 개념입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아니예요. 하지만 이걸 법으로 정하겠습니까? '남편은 정확히 가사일의 절반을 부담해야 한다'라고요? 법적으로만 보면 우리나라는 이미 옛날에 양성평등을 다 이루었습니다. 그럼 매맞는 아내들은 뭐고 강간피해자들은 뭐고 직장일과 집안일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등허리가 휘는 슈퍼맘들은 뭡니까? 이건 다 엄살입니까? 아무리 죽을 만큼 괴로워도 정말로 죽을 리는 없으니 그냥 참아야 하는 문제입니까? 어떻게 이 엄청난 불공정함 앞에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도 군대가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게 정리될 수 있다고 믿는 지 그 두뇌구조가 신기하기 짝이 없습니다.





대체적으로 몇몇 소수의 분들을 제외하고는 대한민국 남성들은 대한민국 여성들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그들이 요구하고 있는 권리를 주장할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여성들이 요구하는 권리 자체가 말도 안되는 부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나요. 제 생각엔 후자쪽이 더 진실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안그래도 부당한 대접과 차별때문에 등허리가 휘고 있는 사람들한테 '권리를 주장하기 이전에 의무부터 이행하라'고 말하는 건 그 권리요구가 얼마나 정당한 것이든지 간에 들어줄 생각이 없다는 거죠. '여자도 군대가라'운운하는 사람들 중에 이렇게까지 체계적으로 사고하는 자들도 없을 겁니다. 제가 보기엔 양성평등이다 뭐다해서 사소한 사항에도 발끈하고 시끄럽게 구니까 단지 귀찮은 마음에 입 좀 닥치라는 말을 '여자도 군대 갔다와'로 대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뭐, 그건 엄밀히 말해 제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전 독심술사는 아니니까요.



모든 국민은 병역의 의무를 부담한다고 헌법에 명시되어있듯이 실제로 여성도 병역의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이 내는 세금이라고 해서 국방부 예산으로 책정되지 않는 건 아니잖아요. 만약 실질적인 노역으로 부담하는 병역의 의무만이 진짜 병역의무라면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의 대다수 국민들은 납세의 의무만 이행하고 있지 병역의 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있는 셈이 되겠죠.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때문에 남녀가 부담하고 있는 납세의 의무는 대체로 동등한데 병역의 의무만이 한쪽으로 기울어져있다는 겁니다. 예, 분명히 병역의 의무에서 대한민국 성인남성은 대한민국 성인여성보다 훨씬 가중한 의무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건 드러난 사실의 한쪽 단면만을 본 결과입니다.



국가라는 유기체는 사람의 몸과 같아서 일단 속이 어찌됐든 간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두가지 요건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면역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죽어가는 세포의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는 생명력이죠. 군대가 없는 나라는 존속이 위태롭고 국민이 없는 나라는 아예 나라가 아닙니다. 물론 군사력이 거의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정치력으로 버티는 나라가 없는 건 아닙니다만 그런 케이스는 여기서는 논외로 하죠. 아무튼 국가를 유지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 두개는 국방과 사회구성원의 재생산입니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기 때문에 그 빈자리를 채워줄 다른 구성원이 나타나지 않으면 공동체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쇠퇴합니다. 하지만 헌법에 명시되어있는 것은 국방에 해당하는 병역의 의무뿐, 너무나 명확하게도 출산의 의무는 규정되어있지 않습니다. 여성의 자궁없이 사회구성원을 재생산해낼 수 있을 만큼 생명공학이 발달했던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왜 이 중요한 사회적 의무를 법제화해두지 않았을까요?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민법은 제 844조 1항에 태어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추정하는 법규를 정해놓았습니다. '처가 혼인 중에 포태한 자는 부의 자로 추정한다' 그런데 왜 어머니를 추정하는 법규는 없을까요? 생물학적으로 너무나 확실하여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장담하건데, 모든 국민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여하는 헌법조항이 법학자들의 머릿속에서 최초로 튀어나왔을 그 시절에 (그 법학자들은 물론, 그들이 만든 헌법을 인준했을 정치가들 역시 모두 남자였고 그 사람들이 모든 인간은 법앞의 평등하고 어쩌고 저쩌고를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 인간들 중 여성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합니다만) 그 사람들이 미래에는 혼인적령기가 넘도록 결혼하지 않고 자유롭게 연애와 섹스를 즐기면서 아이를 낳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의 직업와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는 데 모든 열정을 거는 여성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 감히 상상이라도 했더라면 그들은 '모든 국민은 출산과 양육의 의무를 진다'라는 조항을 명시해 넣었을 겁니다. 수천년, 아니 수만년동안 출산과 육아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여성들만의 영역이었습니다. 여성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의 혈통을 이어나가야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인권의 개념이나 양성평등의 개념이 전혀 없었던 시대이니 그때는 그게 당연했습니다. 인간은 애써 머리를 굴려 생각을 하는 것을 매우 귀찮아하는 종족이라서 자신이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일에는 따로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비록 헌법재판소는 제대군인의 빠른 사회복귀를 돕기 위한 군가산점제도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옳게 내리기는 했습니다만 그 주문에서 헛소리를 좀 하긴 했습니다. '병역법에 따라 군복무를 하는 것은 국민이 마땅히 하여야 할 이른바 신성한 의무를 다 하는 것일 뿐, 국가나 공익목적을 위하여 개인이 특별한 희생을 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므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였다고 하여 이를 특별한 희생으로 보아 일일이 보상하여야 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째서 그게 특별한 희생이 아닙니까?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빛나고 소중한 시기로 여겨지는 청춘의 한 토막을, 그것도 무려 2년 반이나 되는 시간을 불편한 환경과 재수없는 상관, 불합리한 명령, 짜증나는 동기들 틈에서 낭비해야 하는 데요. 강제적인 군복무는 국가가 국민에게 당연하다는 듯 요구할 수 있는 의무가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특정한 상황때문에 초과적으로 부과된 의무이고 그 원인에 어디에 있든 국가는 그 점에 대해서 국민에게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적어도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탈을 쓰고 있는 한, 국가는 국민들의 특별한 희생에 대해 보상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상 그 어떤 국가도, 어떤 통치권력도 그것이 아무리 정당한 의무이고 권리라해도 국민이 요구하지 않았는 데 먼저 나서서 들어준 적은 없습니다. 왜 싸우지 않습니까? 왜 당연한 권리를 쟁취하려 들지 않습니까?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많은 분들 중 특히 남자분들이 제 글을 읽으면서 불쾌감과 불편함을 느끼셨을 겁니다. 여기서 확실히 해두지요. 그 사람들은 그런 불쾌감과 불편함을 느껴 마땅합니다. 그들이 이기적이고 몰염치하다고 말하는 우리 젊은 여성들은 지금까지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 그 할머니의 어머니가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몸과 편안함을 돌보지 않고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해온 모습을 지켜봐왔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대체 뭘 얻었습니까? 훌륭한 어머니, 희생적인 어머니, 위대한 어머니, 진짜 여자의 삶엔 한줌 쓸모도 없는 겉만 번지르르한 모성신화 뿐입니다. 운이 좋아 아내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남편들을 만나 어머니를 공경할 줄 아는 자식들을 낳고 사신 분들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언제나 좋게만 돌아간다면 법은 왜 필요하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제도들은 왜 필요합니까? 여성은 자신이 낳은 아이에 대한 권리조차 가질 수 없었습니다. 부친과의 관계와 별도로 아이에 대한 모친의 친권행사가 법적으로 인정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TV에서 많은 여성운동가들이 피켓을 들고서 이혼한 여성에게 그 아이와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달라고 시위를 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바깥일을 해서 따로 재산을 모아두지 않았더니 이혼을 당하고 난 뒤에는 먹고 살 길이 막막합니다. 자식들의 얼굴조차 보지 못합니다. 어떻게든 취직을 해보려고 해도 젊지도 않고 근무경력도 없고 심지어 예쁘지도 않은 아줌마를 고용해줄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회는 손가락질을 하고 등 뒤에서 수군거립니다. 그러니까 이혼은 왜 했냐고, 네가 진작 남편에게 더 잘했더라면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분명 부부간의 정조의 의무는 쌍방이 동등하게 부담하는 것일텐데 남자의 불륜은 한때의 바람이고 여자의 불륜은 절대로 지우지 못할 스티그마였습니다.



그랬던 사회를 지금 이만큼이나 바꿔 놓은 것은 모두 우리 여성들의 노력입니다. 국가는 어떤 것도 우리에게 먼저 베풀어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요구하고 소리치고 온갖 굴욕과 비웃음에도 굴하지 않고 싸우고 또 싸워서 이룩해낸 것입니다. 여성채용목표제, 모성보호법, 성폭력특별법,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 중 일정 비율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해야만 하는 정당법 중 그 어느 것 하나 국가에서 우리에게 먼저 베풀어준 것은 없습니다. 운동가들은 끊임없이 일반국민들의 의식개혁을 위해 노력했고 실질적인 불평등을 개선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제도와 법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고 유권자들은 친여성적인 정책을 공약으로 건 후보자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여학생들 앞에서 성적 농담을 던져서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끼게 하고서도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르는 교수들의 머릿통에 개념을 탑재해준 것도, 성범죄가 일어날때마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수치스러워하는 현실 앞에서 언제나 피해자을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것도 모두 우리 여성들이었습니다. 좀 배웠다는 사람이든, 진보적인 사람이든 우리가 먼저 일어나서 불평하고 항의하기 전에는 스스로에 대해 아무것도 바꾸려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도와주고 지지해주는 남자분들도 우리가 그렇게 해달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면 깨닫지 못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분들도 결국엔 남자이고 여자로서 겪는 고통과 서러움을 직접적으로 느끼지는 못하니까요. 헌데 우리가 그렇게 싸우고 있는 동안 남자들은 뭘 했습니까? 제가 하는 말이 아무리 아니꼽고 부당하게 들려도 이것만은 인정하셔야 할 겁니다. 우리 여성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서, 남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보다 훨씬 열심히 싸웁니다. 왜 남자들, 아니 병역의무자들은 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싸우는 장애인들만큼도 싸우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은 당신들보다 훨씬 불편한 몸과 훨씬 부족한 재산과 사회로부터 훨씬 가혹한 취급을 받고 있는 데도 싸우는 데 왜 당신들은 국가를 상대로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에 앞서 우리의 입을 막으려고 듭니까?



서양, 동양할 것 없이, 유럽이든 미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우리나라이든 그 어떤 나라의 그 어떤 문명권도 여성의 인권을 부당하게 착취해왔다는 죄목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종교, 이념, 풍습, 윤리, 그 외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속좁고 째째하고 재수없는 늙은이들은 여성을 비하하고 하나의 독립된 인격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남자의, 혹은 가족이나 국가의 종속물로 만들어왔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여성들이 그들의 논리에 동조했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봅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정당하게 경쟁하지 않고 여자임을 이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챙기려 하거나, 남성중심적인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나머지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이 거의 없어 되려 같은 여자들을 가혹하게 핍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강간피해자에게 그러길래 왜 옷을 그렇게 야하게 입고 다니며, 왜 밤늦게 조심성없이 돌아다니냐고 오히려 야단을 치는 사람들은 남자들보다 여자들 중에 더 많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도 싸워 왔습니다. 그 머리에 개녑을 탑재해주려고 노력하거나 그게 효과가 없으면 어서 빨리 뒈져 사라져주기를 기원했습니다. 남자들이 이제는 조금씩 여자의 고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요? 여자가 짊어져왔던 부담한 짐들을 나눠지려고 노력한다고요? 예, 그건 사실일 겁니다. 세상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하지만 정말로 '시작한' 것에 불과합니다. 온 사방에서 느낍니다. 아직도 양성평등이란, 정치적 공정성이란 이 나라에선 소수자들만의 성전으로 취급받고 있다는 것을. 성추행당한 여성에게 그날 무슨 옷 입고 갔냐고 물어보는 데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토록 열심히 싸워왔지만, 그토록 혁혁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는 양성평등이라는 목표 앞에서는 어린아이 걸음마하는 수준입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선진국의 여성들이 200년동안 싸워서 얻어낸 결과를 우리가 무슨 수로 50년만에 이룩해내겠습니까.



병역의 의무에 있어서 남녀는 분명 평등하지 못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남자들이 그동안 그들을 부당하게 얽어매고 있었던 징병제에서 해당되는 것이겠습니다만 국가예산이니, 외부적 위협이니 어쩌니 하는 핑계를 대며 국가가 그걸 못해주겠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게 핑계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분명 여성들도 병역의 의무를 나눠져야 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 상황에서는 죽어도 그렇게 못합니다. 국민으로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데 어째서 그 위에 의무까지 부담해야 합니까? 비정규직 여성은 같은 비정규직 남성들이 받는 임금의 70%밖에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미혼 남성들 중 80%이상이 맞벌이하는 아내를 얻고 싶다고 하면서도 그 중 50% 이상이 아직도 가사일 분담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사일을 '도와준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을 호의로 거들어줄때나 도와준다는 말을 쓰는 겁니다. 모든 국민은 납세의 의무가 있지만 사회적으로 취약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세금을 아주 적게 내거나 아니면 아예 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정말로 지금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남자와 동등한 수준의 의무를 짊어져도 될만큼 정당하게 대접받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만약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전 그 사람에 대해선 잊겠습니다. 그건 제 알바가 아닙니다. 저는 제 의견을 논리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대서 주장하면 그뿐, 개념 자체가 없는 사람에게 개념을 심어줄 의무는 없습니다. 저는 현실적인 사람이라 곱셈과 나눗셈을 모르는 아이에게 열심히 가르치면 미적분의 개념을 이해시킬 수 있다는 희망따윈 품지 않습니다. 로마인들도 노예를 해방시켜주고 난 다음에야 세금을 걷었습니다. 세금부터 내야 해방노예로 만들어주겠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대영제국이 인도인들에게 세계대전에서 영국군으로서 싸워주면 독립을 인정해주겠다고 말했을 때, 간디는 그들이 약속을 지킬거라 믿었습니다. 돌아온 것은 손바닥을 뒤집듯이 태도를 바꾼 강대국의 몰염치함뿐이었습니다. 권리를 얻고 싶으면 의무부터 이행하라는 말은 함부로 내뱉는 게 아닙니다. 지금껏 이행해온 의무에 걸맞는 대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들고 일어난 사람들을 도와주지는 못할 만큼 돌을 던지지 마십시오. 형제니, 누이이니 하는 겉만 번지르르한 말은 필요없습니다. 제게는 남자형제가 없습니다. 함부로 누이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저는 그 사람들이 우리를 정말 누이로 생각해서 아껴줄거라는 기대따위는 조금도 품지 않습니다. 그들와 우리는 남남입니다. 설령 가족이라 해도 개인의 이익은 충돌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근친에 의해 강간당하고 폭행당하는 지 아십니까? '가족'이니 '조국'이니 하는 것들은 결국 말에 불과합니다. 말에는 실체가 없습니다. 저는 제도를 원하고 법을 원하고 눈에 보이는 변화를 원합니다.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은 제가 가져 마땅한 것이고 그 중 어느 것 하나 양보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는 그 모든 것을 우리나라의 모든 여성들이 가졌을 때, 그때야말로 우리는 병역의 의무에 있어서 양성평등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제 겨우 걷고 있는 사람에게 날으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남 잘되는 꼴 못보는 사악하고 이기적인 심성이야 인간의 본성이니 그렇다치더라도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무지와 알려주는 데도 못알아먹는 아둔함은 경멸당하고 무시받아 마땅합니다.

 

 

 

[펌]동감100%:북한이 미사일을 쏜다?..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란 것이 어느 정도가 될런지는...
미국과 일본이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은?..
북한이 진짜 쏠까봐?..
절대로 NO!!
지들이 더 잘안다..
이것은 대북 압박용도 되지만 한국 압박용이기도 하다..
우리 보수진영이나 순진한 국민들은 북한을 원수처럼 미워하고 분노한다..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진짜 더 위험한 나라는 일본과 중국이다..
단순비교를 해보라..

우리가 북한을 이기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군사력을 제외하면 우리와는 비교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 군사력은?..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 스스로 가능하다..
물론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지만..
그래서 우리도 미국을 어느정도 이용하기 위해서 주한미군을 놔두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이 이것을 절대 반기지를 않는다..
미국은 한국에 계속 주둔하며 중국, 러시아까지 견제를 해야한다.
일본도 이러한 상황을 최대한 자국에 유리하게 이용해야할 처절한 무언가가있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물러나면 일본은 당장 중국, 러시아와 심각한 마찰이생긴다.
특히 영토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일본은 미국이라는 배경을 무기로 중국, 러시아와 힘겨루기를 하고있다.
일본만 홀로남는다면?..
바로 그순간 깨갱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상대로 오만방자함을 극도로 펼치는 것도 미국때문이다..

그럼 일본과 미국은 계속 현재 한반도 상황을 유지시켜야 자국에 이익이다.
그런데 한국과 북한이 화해 모드로 간다..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미국도, 일본도 짜증나고 불안하다..
그러니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만만한 것이 북한이다..
계속 압박하고 물고 늘어진다..
긴장을 고조시켜 국내 보수파들을 자극시킨다..
김정일을 건드려서 무력시위를 하도록 유도한다..
미국이 이라크 침공 명분이 이라크내 민주화와 대량살상무기 아닌가?
대량살상무기는 코메디로 끝났고..
민주화...지구상에 독재나 비 민주화 국가가 한 두군데인가?
중국도, 쿠바도, 아프리카 대륙의 신생 독립국가들..
그런데 왜 하필 이라크인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안다..(우리나라 보수진영 빼고)

북한도 마찬가지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김정일은 절대 남침 못 한다..
자살골을 먹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편먹고 북한을 조종해서 미국, 일본 연합군과 죽기살기로 전쟁을 치룬다는 계획이 있다면 가능하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은 곧 전쟁이라도 날것처럼 난리다..
가증스럽고 한심스럽다..

한미 FTA가 진행 중이다..
한국 준비가 만만치않다..
미국이 최대한 이득을 챙기려면 무언가 무기가 있어야한다..
바로 북한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독도문제, 신사참배, 약사왜곡, 중국과 영토분쟁 등등..
무언가 돌파구가 있어야한다..
무엇보다 한반도가 긴장이 되어야 일본이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마음만 먹으면 우리힘으로 억제가 가능하다..
그런데 늘 군사력등이 북한보다 뒤진다..
미국 때문이다..
자주국방 하는 순간 미국은 집으로 가야한다..
그러니 미사일 개발도, 핵무기 제조도, 핵연구도...
비행기나 무기도 미국것을 사야한다...
군사력 식민지나 마찬가지다..
그러고는 미국아니면 한반도 평화는 깨진다, 북한이 미사일 쏜다, 핵무기 쏜다, 한국은 초토화 된다라는 위기감을 퍼뜨린다...
우리의 참전용사분들, 무슨 동지회, 보수진영들은 미국 가지마라고 아우성이다.
그분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바쳐 희생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소...
우리도 우리 목소리를 내야할 때입니다....

절대 부화뇌동 하지 맙시다..
북한을 무조건 믿자는 얘기가 절대 아닙니다..
아직 위협적인 존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 위협적인 이유는 반드시 북한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미국, 일본은 즐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만 죽어라 이용당하고 알면서도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분명 일본이 북한보다 더 위험한 적입니다..
북한은 자살하는 심정이 아니면 절대 행동으로 못 옮깁니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은 여차하면 가능합니다.
미국이야 두말 할것도 없고 일본도 분위기를 보다가 북한이 위협적으로 나오면 미국에게 양해를 얻어서 바로 치고들어갑니다.
그리고는 한반도는 미국과 일본이 양분합니다.
북한지역은?..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이 중요한데 미국과 맞설지는 의문이죠..

긴장을 풀라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일본, 미국의 쑈에 놀아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북한을 찬양하고 믿고 손을 잡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도둑 잡으려다 희대의 살인마를 집으로 불러들이는 꼴이 생길지도..

이글을 보면 보수주의 분들은 또 엄청 욕을하겠죠..
빨갱이가 어쩌고 하면서...
그 분들은 나중에 한반도가 통일되고 평화가 찾아오면 이땅에 살수가 있을런지..
우리 스스로 힘을 키우고 목소리를 키웁시다...
제발 무조건 미국 시키는대로 하지만 말고...
그리고 3.1절에 미국만세 외치는 우울한 일이 없도록...
유관순 누나가 "내가 그딴 소리를 들으려고 목숨을 바쳤냐?" 하십니다.
우리 힘으로 북한을 누르고, 제압하고 평화를 지키자는 뜻으로 적은 글입니다.
어느 한쪽의 말로 갈팡질팡 하지말자는....

 

 

 

 

 

원문: http://agorabbs1.media.daum.net/griffin/do/debate/read?bbsId=D104&articleId=32251

 

[펌]반쪽짜리 애견인들의 작태

개관련 문제가 이슈화 된게 한 두해 일은 아니지만 얼마전 개들을 분양받아 팔아먹었다는 업자들이 있다는 한 공중파 방송의 뉴스를 보고 답답해서 한 번 써봅니다. 한 애견 까페에서 비슷한 경우를 당한 사람이 있는것도 봐서..겸사겸사...^^

언제나 그렇듯이 개가 학대를 당하는 관련 뉴스에는 댓글들이 홍수를 이룬다.
내용이야 다들 아시다시피 뻔하다.
나도 어느 정도 동감한다. 분명 대신 키우겠다는 이유로 해서 데리고 갔으면서도 팔아먹었으니 업자들에 대해 좋게 말하고 싶지도 않다. (사기인지 아니지는 잘 모르겠다. 법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일단 개를 업자라해도 그 사람에게 넘겼으니 개에 대한 처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

허나, 그 수 많은 댓글들 중에서 간과한(혹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지적하여 내가 못 보고 지나갔을 수도 있는)게 있는데 그 업자들은 개를 훔치거나 길거리에 있는 유기견들을 잡아들인게 아니다.
물론, 업자들이 파는 개 들 중 그런 개가 없다고는 할 수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뉴스에 나온 이유는 분명 "분양받아서"였다. 그러니까 키우던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가족같이 함께 지내던 우리 애기 보낸다."이다라는 식으로 주인에게서 떨어져 나온 개들이다.
또한 일부는 그냥 내다 버릴려니 찝찝하고 마침 대신 길러 주겠다는 생활정보지나 인터넷 게시물을 봐서 이때다 싶어 넘기기도 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업자들을 두둔하자고 하는 게 아니다.(툭하면 자신과 생각이 틀리다는 이유로 개장수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쓴다.) 업자들에게 그런일이 가능하도록 빌미를 제공한 반쪽자리 애견인들을 씹어데고 싶어서다.

생명이 다하여 죽는 경우 빼고 개가 주인과 헤어지는 이유는 딱 두가지다. 주인이 의도하지는 않은 부주의로 인해 개를 잃어버리는 경우와
주인이 의도한 의지로 인해 개를 주인과 떨어지게 하는 경우다. 후자의 경우에 또 두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첫번째는 다들 알다시피 작정하고 내다 버리는 경우다. 키우다 보니 귀찮아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 내다 버리던지 당당하게 관공서에 전화해서 개 치워달라는 말을 하는 사람 등등 가지각색이다.
(이런 인간 혹인 집안들에 대해서는 논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어디 저 멀리 이역타국 아프리카 들판에 살고 있는 들개도 아닌 자신들의 품안에 들어온 생명을 귀찮다는 이유로 장난감 버리듯이 버리는 사람들은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장난감 취급받고 귀찮아지면 버림이나 받이보라고 고사지내고 싶을 뿐이다.)
그리도 두 번째, 말했다시피 같잖은 변명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ooo한 사정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저희 가족을 떠나보낸다."라는 경우다. 웃기시게도 평생 책임져 주실 수 있는 분 찾는단다.
애견 까페를 들어가보면 새로 태어난 강아지들 분양하는 글들 사이사이에 심심치 않게 이런 글들이 있다. "아파트로 이사가요." "부모님이 못 키우게 해요." "혼자살다보니 애기가 너무 심심해해서 미안해요." 등등.... 이런 글들을 보면 일단 강아지는 거의 없다. 열에 아홉은 성견들이다. 짧게는 1년 보통은 2-3년 된 성견들을 올려 놓고 새로운 주인을 찾는다.
뭐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써 놓은 조건들을 보면 욕지기가 절로 나온다.
"제가 정말 사랑하는 ooo인데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보내요. 꼭 평생 책임져주실 분이어야 하고요. 혼자 사시는 분 사절이구요.그리고 책임비 어느 정도 받겠습니다. 그냥 데리고 가시면 책임감이 적을 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제가 가끔 볼 수있게 해주셔야 되요." 열이면 열 요런 얘기들이다.
읽어 보면 볼 수록 엿같은 소리다. 자기가 평생 책임지지 못 한 주제에 남한테는 평생 책임지기를 바라는 심뽀는 뭔가.... 그러면서 또 보고 싶을 때는 봐야한단다.
이 따위 글을 올려놓은 인간들이 정말로 그 개를 가족같이 생각이나 한 걸까? 뭔 놈의 사정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라도 가족이라는, 자기 동생이라는, 자기 아기라고 부르던 개를 남에게 주는가. 아니 사정이 있다고 자신의 가족을 남에게 맡기겠다는 말 자체가 웃기는 소리 아닌가. 어려운 사정이 있다고 하면 가족끼리 같이 힘을 모아 견뎌내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원래 가족에게 버림받고 남의 가족에게 들어간 개가 참 잘 살기도 하겠다. 책임비? 가족 떠나 보내면서 돈 받겠다고? 오히려 데리고 가는 집에 양육비라도 대줘야 하는 거아닌가? 아니면 하다 못해 책임비 명목으로 받는 돈을 자긴 돈 들여 유기견들 대량으로 돌보고 있는 분들에게 성금으로 보낸다라기라도 하면 기가 막히지는 않다.
차라리 개를 길에다 내다 버리는 인간들은 애초부터 개를 가족으로 여기지 않았으니 물건 버리듯 버릴 수 있다 치자. 그런 인간들도 물건은 함부로 내다버릴지언정 자기 가족은 내다버리지는 않을거다. 적어도 그들은 가족운운하면서 개를 키우다 남에게 주는 인간들 처럼 이중적이지는 않다.
키우던 개를 내다버리는 인간들과 사정에 의해 남에게 주는 인간들이 틀릴게 뭐있나... 방법의 차이? 자기는 그래도 개가 좋은 곳으로 가게 하려고 노력은 한다고?
그래봤자 결국 둘다 자신들의 필요에의해, 사정에 의해 개를 안키우겠다는 소리지 않은가. 오십보 백보, 도토리 키재기다. 둘 다 개 키울 자격 없다.
아니, 버리는 인간들은 또 내다버리는 일이 귀찮아서라도 개를 안 키우려고 할 테니 자격 운운 할 것도 없다. 헌데 두 번째 부류의 인간들은 사정이 나아지면 또 개 키우려고든다. 자기가 정말 개를 사랑하는 줄 아니까....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라도 개를 딴 집으로 보냈으면 그 순간부터 잊어라. 그 집에서 개를 구워먹던 삶아먹던 마당에서 마구 기르던지 사람이 먹다 남은 밥을 주던지 원래 주인은 뭐라고할 자격이 없다.
한 마디로 말해 그개는 더이상 '당신의 개가 아니다.' 남의 개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은 개를 남한테 넘기는 순간 없는 거다.
"내가 원한건 가족같이 길러 줄 사람을 찾았던 거니 개가 학대 당하는 걸 못 참겠다고? 그러니 간섭을 하겠다? 원래 내가 기르던 개다?"
그렇게 개를 걱정하는 인간들이 어떻게 몇년 동안 기르던 개를 남에게 줄 수있는지 묻고싶다.... 당신들이 사정때문에 남에게 넘겼다면 개를 분양받은 사람들도 그들의 사정때문에 마당에서 기르는 거고 밥찌거기를 먹이는 거며 다시 남에게 줄 수도 있는 거다.
당신들이 사정상 넘겼으니 그쪽이 '저희도 사정상 딴 집으로 넘겼어요.'라고 하면 거기다 데고 화를 내고 윽박지를 텐가? 먼저 자신이 한 행동은 생각지도 않고? 화를 내려면 자기 스스로에게나 내라.
당신들은 업자들 보다 독하다. 자신들과 몇 년 동안 같이 지낸 동물을 남에게 주는 마당에 생판 처음보는 개를 고깃덩어리 취급하는 업자들보다 낫다고 할 수 있나? 분양받아 되팔아먹는 업자들은 그날 처음 보는 개다. 정이들고 자시고 할것도 없이 개를 보자 마자 되팔아버리는 업자들과 가족이라고 사랑한다면서 남에게 넘기는 짓을 하는 당신들 중 어느 쪽이 더 독하다고 해야하나?? 사랑한다는 이유로 행하는 행동은 다 좋은거고 잔인한 행동이 없는 줄 아나?


처음 개를 데리고 왔을 때 분명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데리고 왔을 거다. 그걸 저버렸으면서 개를 사랑한다고 지껄이는 반쪽짜리 애견인들 때문에 견교도라는 말이 널리 쓰이는 거다.
종교의 기본을 잊은 한국의 기독교(물론 다는 아니고 광신도와 일부 목사들)가 개독교라도 놀림을 당하는 거처럼 개를 기르는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한 번 같이 살기로 마음먹은 개는 끝까지 자신과 함께한다.'라는 마음을 잊어버리고 지들 입맛따라 개를 키웠다 말았다하는 인간들은 견교도라는 소리 들어도 싸다. 그런 인간들이또 무슨 일 났다고 하면 난리를 친다. 개독교들 처럼....


조용히 개 기르는 사람들까지 싸잡혀서 욕 먹게 하지 좀 말자....

 

 

원문: http://agorabbs1.media.daum.net/griffin/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51153&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

 

 

 

콜라와 소다 그리고 ...

재입양보낸 마루가 있었다.

내가 한살짜리를 어떤 여자분으로 부터 입양을 했었는데...

나와 맞지않은 성정으로 인해 재입양보냈다.

 

나도 반쪽자리....

 

 

2006년 6월 18일 일요일

태양에서 온 사람

해에서 온 사람
해에서 온 사람
친구들 사이에서 당신은 가장 빛나는 별입니다.

연극같은 삶을 사는 당신은 언제나 주목받는 존재입니다.

당신의 끼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으며 당신이 빠진 파티는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세요!
태양은 고집이 세고 도가 지나친 건방진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훌륭한 지도자이자 좋은 친구입니다. 당신이 최고입니다!

너 어느 별에서 왔니?

 

 

 

 

2006년 6월 17일 토요일

[펌]차붐&quot;프랑스도 안다, 우리가 얼마나 독한지 …&quot;

차붐@월드컵 6 "프랑스도 안다, 우리가 얼마나 독한지 …"

 

[중앙일보 2006-06-16 10:17]

 

독일 월드컵에서 일본이 호주에 역전패하고, 우리는 프랑크푸르트의 찜통 슈타디온에서 토고에 역전승을 거뒀다. 일본이 보여준 화려한 경기는 안정되고 보기에 좋았다. 그러나 우리 팀의 전반적인 경기 내용은 그와 반대였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 있다. '축구는 피겨스케이트가 아니다'라고. 경기가 끝난 뒤 경기 내용을 종합해 점수를 매기는 게 아니라 공을 골대 안으로 넣는 팀이 이기는 거다. 목표는 골이다. 일본과 한국은 다르다. 흐르는 피가 다르고 먹는 음식이 다르다. 그들의 힘이 서로 돕고 함께하는 거라면, 우리의 장점은 웬만해선 머리 숙이지 않고 겁 없이 돌진하는 것이다. 골은 아무나 넣는 게 아니다. 내가 무엇을 해결하겠다는 성향을 가진 자라야 골게터로서의 자질이 있다. 그래서 '감독하고 골키퍼, 그리고 오른쪽 윙은 미친×들이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있다. 독하고 강하고 고집스럽기까지 한.

 

1979년 독일에 처음 왔을 때, 일본 상표가 화려하게 프린트된 분데스리가 선수들의 유니폼을 보는 것은 부러움이었다. 나의 분데스리가 첫 유니폼도 미놀타라는 일본 카메라 회사의 광고가 새겨진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일본 사람이기를 기대하고 물었다가 "한국인"이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 순식간에 시선을 앞으로 향하고 입을 닫아버리는 독일 사람을 보는 것은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경험이었다.

 

어느 날, 레버쿠젠 운동장에 'GOLD STAR' 광고판이 떴다. 나는 그날 두 골을 넣었다. 그 광고판이 달린 전차를 보려고 아이들을 데리고 뒤셀도르프까지 간 일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먼 옛날 얘기다. '한국 기업이 없다면 독일의 광고회사들은 뭘 먹고 살까'하는 건방진 생각이 들 정도다. 남을 칭찬하는 것은 여유다. 나는 일본의 경기를 보면서 그들을 칭찬하지 못할 아무런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적어도 내가 몸 담고 있는 축구는 그들을 격려할 만큼 자신 있다.

 

요즘 나와 같이 방송 해설을 하고 있는 아들 두리가 '삼성'이 새겨진 휴대전화를 선물하면 연봉이 수십억원인 독일 선수들도 신기해 쳐다본다. 이때 우리 아들놈이 꼭 한마디 덧붙인다.

"이거 독일에는 아직 없는 거야. 한국에서 우리 아버지가 가지고 오신 거야!"

 

그 말이야말로 지난날 우리가 듣고 기죽어 하던 소리다.

'이거 한국에는 없는 거야!'

 

진짜 월드컵은 지금부터다.

새로운 팀과 새로운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경기에 꼬투리는 잡지 말자. 이긴 건 이긴 거다. 승점 3이 어디냐. 토고의 3패와 프랑스의 3승을 바탕으로 한국과 스위스가 16강 진출국을 가를 것이라는 게 우리의 대체적인 예상이었다. 그런데 스위스가 프랑스를 상대로 승점을 챙겼다. 그러면 우리도 챙겨야 한다. 바로 이럴 때 우리들만의 기질이 변수가 된다. 프랑스도 알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독한지.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 중앙일보 해설위원

2006년 6월 16일 금요일

인생을 바꿔 사는 51가지 방법中에서

 


1.. 무슨 일부터 먼저 할 것인지를 정하라

아침에 눈을 뜨면,
우선 그날 해야 할 일들을 목록으로 만들어보자.
아이의 학교 준비물부터 직장에서의 회의,
가족 저녁식사 메뉴까지 모두 나열한다.
그 후 그것이 기다려줄 수 있는 일이나
그렇지 못한 일이냐에 따라 A,B,C 서열을 매긴다.
A로 분류된 일만 다 처리해도 그날은 성공적인 날이다.





2.. 옷장을 깨끗이 정리하고, 낡은 휴대폰을 기부하라

만약 2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이 있다면,
이제 그 옷은 버리거나
자선단체에 기부할 때가 된 것이다.
진정으로 아끼는 보물들을 하나씩 줄여나가자.
추억은 추억일뿐.

 



3.. 직장을 때려치워라, 가끔은 집안일도 하지 마라

아침에 20분 정도 침묵을 지키면서
자신에게 나라는 존재가 정말로 자신이
바라는 그런 사람으로 되고 있는지 진지하게 물어봐라.
만약 엄청난 스트레스와 불안을 느끼거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면 다른 변화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낫다.
또 먼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가끔 한번씩 집안일 하는 것을 그만두어 보자.
내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4.. 새로운 음악을 들어라

자꾸만 들어가는 나이는
최신 음악이 귀찮아지는 정도와 나의 젊을 때
익숙했던 것에 매달리려는 집념을 합친것과 같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있다.
음악적 지평을 넓히는 것은
모든 종류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향해 뇌를 활짝
열어놓는 데 도움이 된다.

 



5.. 책을 더 많이 읽어라

책을 읽되,
그것이 뇌의 활동을 강화해주리라는 생각 따위는 잊자.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조금이라도
더 교양 있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는 생각도 버리자.
훌륭한 책을 읽는 일은 실사를 하듯 나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





6.. 섹스를 더 자주 하라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섹스는 전립선암과 유방암의 위험을 낮출 수 있고,
면역체계를 강화하며, 스트레스를 누그러뜨리고,
30분 가량에 180kcal를 소비한다.
말하자면 섹스는 상당히 괜찮은 운동인 셈.

 



7.. 발에 맞는 신을 신어라

놀랍게도 우리 대부분은
발에 맞지 않는 신을 신고 다닌다.
신이 맞지 않을 경우 엄지발가락 안쪽에
염증이 생길 수도 있고, 나이가 들어서는
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지금 당장 발 크기를 다시 재어보자.
걸음이 즐거워질 것이다.




8.. 비타민을 복용하라

대부분의 사람은 종합비타민의 복용으로도 족하다.
괜히 지나치게 많은 건강보조식품을
먹으면 오히려 몸을 해치고 지갑을 축낼 수 있다.

 



9.. 자신을 존중하라

무엇인가에 탐닉할 때에는 진짜 알맹이를 노려라.
그것이 작은 일에도 자신의 존재를
높이 평가하고 존중하는 길이다.
예를 들어 디저트 하나에도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자.
그래야 만족감이 커질테고,
한 접시 더 먹겠다는 욕심도 사라질 것이다.




10.. 용서하고, 스트레스를 놓아버려라

용서는 묵과하거나 참아주거나
정당화하거나 화해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하기로 작정했다면 먼저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그러고 난 후 상처를 입힌 그 사람과 공감하도록 노력해보자.
또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상처를
세계적인 사건의 맥락에서 바라보자.
그리고 내게 가하던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나를 위해 놓아버리자.
용서는 현재진행형의 과정이다.




<"인생을 바꿔 사는 51가지 방법"중에서>


 

 

성공하려면 말투부터 바꿔라

성공하려면 말투부터 바꿔라
 
모든 사람에게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과 말이다.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듯이,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고, 남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
 
자신이 자주 쓰는 말을 객관적으로 분석해보라. 그러면 자신의 미래를 예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말투부터 다르다. 성공하는 사람은 어떻게 말할까? 그럼 이런 질문으로 시작해보겠다. 이 질문은 당신이 하루에도 수십 번 듣는 말이다.
 
“요즘 어떠십니까?”
 
보통 이런 질문을 받으면 긍정형·평범형·부정형, 세 가지 형태로 답을 한다.
 
첫째, 부정형
이들은 질문을 받으면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한다. “별로예요.” “피곤해요.” “죽을 지경입니다.” “묻지 마세요.” “죽겠습니다.”
 
둘째, 평범형
이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저 그렇지요.” “대충 돌아갑니다.” “먹고는 살지요.” “늘 똑같죠.” “거기서 거깁니다.”
 
셋째, 긍정형
이들이 하는 말에는 열정과 힘이 가득 실려 있다. “죽여줍니다.” “좋습니다.” “대단합니다.” “환상적입니다.” “끝내줍니다.” “아주 잘 돌아갑니다.”
 
이 세 가지 유형 중 당신은 어떤 유형이 맘에 드는가? 아마 긍정형의 말투일 것이다. 성공인 그룹과 실패인 그룹은 말하는 습관부터 다르다고 한다.
 
성공인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지만, 실패인은 자기 이야기만 한다.
성공인은 ‘너도 살고, 나도 살자’고 하지만, 실패인은 ‘너 죽고 나 죽자’고 한다.
성공인은 ‘해보겠다’고 하지만, 실패인은 ‘무조건 안 된다’고 한다.
성공인은 ‘난 꼭 할꺼야’라고 말하지만, 실패인은 ‘난 하고 싶었어’라고 말한다.
성공인은 ‘지금 당장’이라고 하지만, 실패인은 ‘나중에’라고 한다.
성공인은 ‘왜, 무엇’을 묻지만, 실패인은 ‘어떻게, 언제’를 묻는다.
성공인은 ‘지금까지 이만큼 했다’고 하지만, 실패인은 ‘아직 이것밖에 못했다’고 한다.
 
성공인 그룹의 말투를 자세히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취를 다짐한다. 둘째, 작은 성공을 서로 축하해준다. 셋째, 실패를 나무라기보다는 성취를 인정한다. 넷째, 화를 내기보다는 유머를 즐긴다. 다섯째,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탓한다. 여섯째, 상대방의 장점에 초점을 맞춘다. 일곱째, 부정문보다는 긍정문으로 말한다. 여덟째, 상대방을 신나게 호칭한다. 아홉째, 노래방에 가서도 긍정적인 노래를 부른다.
 
서울 충무로에 있는 한 김밥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연히 이 김밥집에서 김밥을 먹다가 이상한 점을 목격했다. 이 김밥집 주변엔 기업체 건물들이 많아, 매장에서의 판매보다는 배달로 매출을 더 올리고 있었다. 그래서 배달하는 아르바이트 학생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그 김밥집 주인은 아르바이트 학생이 배달을 나갈 때나 갔다왔을 때 꼭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쉬었다 하시게나.” “천천히 다녀오시게.” “물 좀 먹고 하시게.” “조심해서 다녀오시게.” 그 주인의 말투엔 정말 기름기가 잘잘 흐를 정도로 정이 넘쳐 있었다. 나는 속으로 ‘별난 분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주인은 우리 나라에서 김밥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김밥의 대가’였다. 즉, 한 분야에서 최고를 달리는 사람들은 말하는 데도 이렇게 신명이 나고, 상대를 배려주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당신도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지금 쓰는 말투부터 바꿔야 한다. 옛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평상시 하는 말이 바로 성공을 암시하는 중요한 씨앗이 된다. 두 명의 농부가 1000평에 달하는 밭을 똑같이 갈고 있었다. 그런데 한 농부는 “아직도 900평이나 남았는데 언제 이 밭을 다 가나?” 하고 푸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농부는 “이제 900평밖에 남지 않았구나.”라고 말했다. 누가 먼저 밭을 다 갈겠는가?
 
예전의 집들은 난방이 잘 되지 않아 윗풍이 심했다. 그래서 애들은 다들 코를 줄줄 흘리고 다녀서 어머니들은 늘 앞치마나 휴지로 코를 풀어주는 게 일이었다. 그런데 이때 어머니들은 코에 손을 대면서 바로 “흥! 흥 해라!”라고 말하곤 했다. 어머니들이 쓰신 ‘흥’이란 말은 바로 한자로 ‘興’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네 어머니들은 심지어 코를 풀 때도 자식이 잘 되라고 “興! 興 해라!”라고 한 것이다. 평소 쓰는 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실패를 하게 되면 열등의식을 갖게 되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잃게 된다.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버의 일화다. 이 사람은 승마를 하다 낙마를 했다. 그래서 온 몸에 주사를 맞을 정도로 심하게 다쳐 병실에 누워 있었다.
 
그는 고민 끝에 어머니에게 “어머니 나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냥 죽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하면서, 산소호흡기를 떼어달라고 부탁했다. 크리스토퍼의 어머니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말했다.
 
이렇게 어머니로부터 승낙을 받은 크리스토퍼는 아내에게 이 제안에 동의해줄 것을 요청하고, “차라리 지금 죽는 게 낫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당신일 뿐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하반신을 못 쓰는 불구자든 아니든 간에 당신은 나의 남편이다’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감명을 받은 크리스토퍼 리버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서 무엇으로 남은 인생을 살 것인가 생각한 뒤, 자신과 같은 척추불구자를 위해 척추재생 연구에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다시 살기로 결심한 후, 그는 모금운동을 벌여 2억 불을 모금했다. 아내가 해준 말 한 마디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이다.
 
기업체에서 강의를 할 때 강조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WOW(와우) + 느낌표(!) 이다. 대화를 할 때 상대에게 바로 이 단어를 담아 전하기 바란다. 상대에게 힘이 되고 감명을 줄 수 있는 말을 하라는 것이다.
 
이런 광고가 있었다. “국물이… 국물이 끝내줘요.” 당신도 누군가가 “요즘 어떠십니까?”라고 물으면 바로 이렇게 답해보라. “끝내줘요!” 당신의 말투가 성공을 부른다. ‘WOW + !’를 생각하라.
http://blog.empas.com/tkfkd4858/
출처 : 성공하려면 말투부터 바꿔라 - 이내화[LSA 대표, 성공학 칼럼니스트]

비 게인 하늘은..



 
눅눅해진 몸을 볕에 말리며 바라본 하늘
 
 
스킨 만들려고 찍다가...
 
...
 
 
괜히 즐거워 지는...
 
 
 
 
 
 
 
 

2006년 6월 11일 일요일

Tokyo通信 -SOUL`d OUT

 

 

Tokyo通信 -SOUL`d OUT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Dtrrrrrrr! つないで TOKYO通信
Dtrrrrrrr! 츠나이데 TOKYO츠-신
Dtrrrrrrr! 연결해줘 TOKYO 통신

This is D I'm a commander of S.Q

α系、people create
α케이、people create
α계、people create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Do you know that

精密過ぎる Machine じゃ不適正 OK?
죠-미츠스기루 Machine 쟈후테키세이 OK?
너무 정밀한 Machine은 부적정해 OK?

Everything is OK Here we go!

移り?なビルの影から影
우츠리기나비르노카게카라카게
변덕스러운 빌딩의 그리자에서 그림자로

Gotta take good aim

人混みをかき分け 踊る?な Chase
히토고미오카키와케 오도루요오나 Chase
인파를 헤집고 춤추는듯한 추적

ほら ここからじゃまだ遠いメッセ?ジ
호라 코코카라쟈마다토오이멧세-지
봐 여기에서는 아직 먼 Message

まるでシャレ?ド 謎めいて
마루데샤레-도 나조메이테
마치 샤레이드처럼 수수께끼같아서

オレ 2の線3の線で忙しくPlay
오레 니노센산노센데이소가시쿠 Play
나는 2의 선 3의 선으로 바쁘게 Play

氷のエ?ジェントとスペ?ドのエ?ス
코오리노에-젠토토스페-도노에-스
얼음의 에이전트와 스페이드의 에이스

?纏ったエトランジェ 君 Great
쿠로마돗타에토란제 키미 Great
어둠을 걸친 에트란제 너는 Great

D-studs に Kiss ?まぐれなアイコニクスでいて
D-studs 니 Kiss 키마구레나아이코닉스데이테
D-studs 에 Kiss 변덕스러운 아이코닉스로 있어줘

ハッとした瞬間 Stop! Stop!
핫토시타?칸 Stop! Stop!
깜짝 놀란 순간 Stop! Stop!

Stop this emotion Stop to call my name

このまま My system's error
코노마마 My system's error
이대로 My system's error

Urbs Communication

レディ?達でさえかかえたジレンマに
레디-타치데사에카카에타지렘마데
숙녀들에게조차 끌어안은 딜레마에

24/7 余裕ぶったりなんかしちゃうワ
24/7 요유-붓타리난카시챠우와
24/7 여유부리는 척을 해버릴거야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け?けてこの時代(とき)の中で
카케누케테코노토키노나카데
달려나가 이 시대속에서

KEEP AN ATTITUDE TO LIVE UP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飛び?んで情報の海を渡れ
토비콘데죠-호-노우미오와타레
날아올라서 정보의 바다를 건너라

KEEP AN ATTITUDE TO LIVE UP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YES そして限界を越えもう一度
YES 소시테겐카이오코에모오이치도
YES 그리고 한계를 넘어 다시 한번

KEEP AN ATTITUDE TO LIVE UP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そう危ないのネ そんな事分かってるってば
소오아브나이노네 손나코토와캇테룻테바
그래 위험한거구나 그런건 알고있다면

giddy up! Now 軌道修正で
giddy up! Now 키도우슈-세이데
giddy up! Now 궤도수정으로

New give up 「LIFE」

分かるか?然るべき?牲?い 
とむらい いまそこに立つ姿は
와카루카? 사루베키기세이하라이
토무라이 이마소코니타츠스가타와
아는가? 그러해야할 희생을 치르고
애도 지금 그곳에 서는 모습은

?く Get a life たまには Crack up
츠요쿠 Get a life 타마니와 Crack up
강하게 Get a life 가끔은 Crack up

時に見せる背中
토키니미세루세나카
때로 보이는 뒷모습

?し出す遠ざかる摩天?ネオン
우츠시다스토오자카루마텐로-네온
비춰내는 멀어져가는 마천루의 네온

I don't give a fuck yeah

コツコツ響く足音向かう
subway station そう
코츠코츠히비쿠아시오토무카우
subway station 소오
뚜벅뚜벅 울리는 발소리가 향하는
지하철 역 그래

Atrophy to evolution行く先は
You know無論Ground O
Atrophy to evolution이쿠사키와
You know무론 Ground O
Atrophy to evolution 갈 길은
You know 물론 Ground O

Check it out YO! Let's go with us

超高速で放つ
쵸-코-소쿠데하나츠
초고속으로 풀어헤친다

Keep it real, Endless,

迷いなんて無く for Your-self
마요이난테나쿠 for Your-self
방황따윈 없이 for Your-self

じきに到着NEOなお前に?いたくて
지키니토-챠쿠NEO나오마에니아이타쿠테
머지않아 도착 NEO한 너를 만나고싶어서

I was waiting for this time 
You spent enough
Long Vacation are you ready to go?
Now You standing starting possiton

Urbs Communication

紳士達でさえかかえた Pressure に
신시타치데사에카카에타 Pressure 니
신사들에게조차 끌어안은 Pressure 에

時折ちょっと開き直ったりもしちゃうゼ
토키오리?토히라키나옷타리모시챠우제
가끔 조금 뻣뻣하게 나오거나도 해버린다고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け?けてこの時代(とき)の中で
카케누케테코노토키노나카데
달려나가 이 시대속에서

KEEP AN ATTITUDE TO LIVE UP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飛び?んで情報の海を渡れ
토비콘데죠-호-노우미오와타레
날아올라서 정보의 바다를 건너라

KEEP AN ATTITUDE TO LIVE UP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YES そして限界を越えもう一度
YES 소시테겐카이오코에모오이치도
YES 그리고 한계를 넘어 다시 한번

KEEP AN ATTITUDE TO LIVE UP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そう危ないのネ そんな事分かってるってば
소오아브나이노네 손나코토와캇테룻테바
그래 위험한거구나 그런건 알고있다면

?けさにただ一人まだ警戒してるんだろ?
시즈케사니타다히토리마다케이카이시테룬다로?
조용함게 단지 홀로 아직 경계하고있는걸까?

そっと?を撫でた冷たい街の夜風
솟토호호오나데타츠메타이마치노요루카제
살며시 뺨을 어루만진 차가운 거리의 밤바람

ささやかな Happiness 今 感じられるのなら
사사야카나 Happiness 이마 칸지라레루노나라
사소한 Happiness 지금 느낄 수 있는거라면

何も言わず夢だけ抱いてゆけ
나니모이와즈유메다케다이테유케
아무것도 말하지않고 꿈만을 끌어안고 가라

Let's stand up, Boys and Girls!

いつも何かに怯えて
이츠모나니카니오비에테
언제나 무언가에 두려워하고

必死で今の自分を守ってるだけじゃね
힛시데이마노지붕오마못테루다케쟈네
필사적으로 지금의 자신을 지키고있을 뿐이잖아

だから Change your whole world!
다카라 Change your whole world!
그러니까 Change your whole world!

震える胸 この扉を開いて新しい世界へ
후루에루무네
코노토비라오히라이테아타라시이세카이에
떨리는 가슴 이 문을 열고 새로운 세계로

So everybody! Get up! Live up!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け?けてこの時代(とき)の中で
카케누케테코노토키노나카데
달려나가 이 시대속에서

KEEP AN ATTITUDE TO LIVE UP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飛び?んで情報の海を渡れ
토비콘데죠-호-노우미오와타레
날아올라서 정보의 바다를 건너라

KEEP AN ATTITUDE TO LIVE UP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YES そして限界を越えもう一度
YES 소시테겐카이오코에모오이치도
YES 그리고 한계를 넘어 다시 한번

KEEP AN ATTITUDE TO LIVE UP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そう危ないのネ そんな事分かってるってば
소오아브나이노네 손나코토와캇테룻테바
그래 위험한거구나 그런건 알고있다면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け?けてこの時代(とき)の中で
카케누케테코노토키노나카데
달려나가 이 시대속에서

KEEP AN ATTITUDE TO LIVE UP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飛び?んで情報の海を渡れ
토비콘데죠-호-노우미오와타레
날아올라서 정보의 바다를 건너라

KEEP AN ATTITUDE TO LIVE UP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YES そして限界を越えもう一度
YES 소시테겐카이오코에모오이치도
YES 그리고 한계를 넘어 다시 한번

KEEP AN ATTITUDE TO LIVE UP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そう危ないのネ そんな事分かってるってば
소오아브나이노네 손나코토와캇테룻테바
그래 위험한거구나 그런건 알고있다면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あっぷあっぷ UP AND DOWN で HOLD OUT
압프압프 UP AND DOWN 데 HOLD OUT
UP UP UP AND DOWN 로 HOLD OUT

 

 




< 출처 : 이고네 >

 


 


 

[펌]온돌에 관한 어느 외국인의 단상

한국의 온돌은 정말 굉장한 발명품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이는 "따뜻한 돌"이라는 뜻이다. 온돌은 마룻바닥을 중심으로 하는 난방 시스템으로, 역사는 2천년 가까이 됐다고 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온돌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중앙 난방 형식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이다. 전혀 흠잡을 데 없이 효율적이다. 아직까지도 온돌은 여느 한국 가정을 가더라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되었다. 식당, 다방, 여관( 한국의 inn이다), 그 외 사람들이 모이는-그리고 마룻바닥에 앉아 함께 시간을 보내는- 열린 공간에서도 온돌은 찾아볼 수 있다. 단순히 머리를 잘 쓴 하나의 기술이라기 보다는, 온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Ondol is a wonderful Korean invention that literally means "warm rocks." It is a horizontal, floor-based heating system said to be about 2,000 years old. If this is true, then it is on-e of the oldest forms of central heating in the world. It is perfectly efficient, and even today, is a standard feature of any Korean home. You will also find it in many restaurants, tea houses, yogwan's (Korean inns) and other public establishments where people like to gather, sit on the floor and have a good time. More than just a nifty technology, on-dol is a total way of life.




2년동안 난 한국에서 지냈다. 서울 도심의 종로에 있는 3군데 여관을 거처로 삼았다. 처음 일년 남짓 되는 기간동안, 나는 옛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성두 여관이라는 곳에서 묵었다. 그곳에서 자연스례 김씨라는 작달막한 남자분을 알게 되었는데, 사근사근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자기 나이를 30~40대 정도라고 했어도 난 아마 믿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처음 맞는 겨울이 다가오면서, 이를 지켜보는 한편으로 내 마음속의 공포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살인적이라 할만큼 극단을 달린다는 이쪽 지방 날씨의 악명은 이미 속속들이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2월 초에 접어들면서 벌써부터 내가 뱉은 침방울이 길바닥에서 튕겨나가고 있을 정도였다( **역자주: 침방울이 얼어버려 길바닥에서 튕길정도로 춥다는 뜻)그렇지만 김씨 아저씨 덕분에 이렇게 살벌한 날씨가 지속되는 내내 내방에 있는 온돌-그리고 나의 '요'( 한국식 담요의 일종)-은 늘 아늑하고 따스했다. 별 달리 히터나 거추장스러운 외부 장치 같은 것이 없었다.--그런 것들은 전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어떨 때는 땀에 젖은 채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그 다음은 문이나 창문을 쾅하고 열어젖히고는 온도를 조절해야만 하는 것이다. 또 언젠가는 중앙 보일러 실 배꼽으로 내려가는 김씨 아저씨 때문에 꿈자리에서 깬 적도 있는데, 아저씨는 아궁이에 석탄(연탄)을 채워놓고 계셨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아저씨는 방이 춥기 때문에 손님을 잃을 걱정은 조금도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In the two years I have been in Korea, I have lived in three different yogwans in the Chongno area of downtown Seoul. For the first year or so, I made my home in the traditional-style Sungdo Yogwan ("the Flourishing Level Inn"), run by a smallish, amiable family man named, inevitably, Mr. Kim (if he had told me he was anywhere between thirty and fifty years old, I would have believed him). As my first Korean winter approached, I anticipated it with mounting terror, for I had heard all the horror stories about the punishing extremes of the local climate. Come early December, my spit was already bouncing off the pavement, but Mr. Kim kept my on-dol floor -- and my yo (sort of a thin Korean futon) -- toasty warm all through the killing season. I had no additional space heaters or any such external contrivances -- they would have been completely unnecessary. Sometimes I would wake in the early hours of the morning in a slight sweat, and have to crack open my door or window to adjust the temperature. At other odd hours, my dreams were gently rocked by the sound of Mr. Kim descending into the bowels of the central boiler room, feeding the furnace with more coal bricks. nulle thing's for sure -- he was in no danger of losing guests because the rooms weren't warm enough.

 

 

그 후 나는 잠시 일본에 가있었다. 그리고 돌아오고 난 뒤, 나는 김씨 아저씨가 내줄 수 있는 방보다 훨씬 큰 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난 넓직하면서 요즘 분위기가 나는 영남장 여관("영남 디럭스 여관", 영남은 한국의 남동부 지방을 일컫으며, -장은 접미사로 여기서는 '디럭스'를 뜻한다.) 으로 옮겼다. 그곳은 교보문고 근처 좁다란 골목에 있었다. 난 이 여관이 맘에 들었다. 멋들어졌다는 것(내 방은 은은한 아르데코로 꾸며져 있었고, 전화기가 어우러지면서 마무리되어 있었다.)도 그렇고, 시내 한복판에 있다는 것과 정말 죽여주는 하드 보일드한 분위기가 있다는 점이 나를 끌었다. "노씨 아저씨"는 늘 프론트 데스크에서 일하던 총각의 이름이었는데, 어쩐지 너무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After that, I went to Japan for a while, and when I came back, I decided I needed a much bigger room than what Mr. Kim could offer. So I moved into the spacious, modern Youngnam-jang Yogwan ("the Youngnam Deluxe Inn"; Youngnam refers to the Southeast region of Korea, and -jang is a suffix meaning in this case "deluxe"), off on a little alleyway near Kyobo Bookstore. I liked it because it was stylish (my room had a low-key art-deco theme, complete with matching telephone), centrally located, and had a really cool hard-boiled vibe. "Mr. Noh" was the name of the young guy who always worked the front desk, and somehow that seemed entirely appropriate.

 

 

 

제일 좋았던 건 바닥에 온돌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이건 진짜 중요했다. 왜냐하면 이 집에 들어왔을 땐 1월--분명히 가장 혹독한 달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한국에서는--이었기 때문이었다. 참 운도 없지, 그때가 또 하필이면 97년 imf사태 직후였다. 최악의 순간에 기름값이 두배로 뛰었다. 오랜 고민 끝에 주인 내외는 2월이 되자 더 이상은 3층으로 된 온돌 마루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같은 장기투숙객들은 전기 담요를 받았는데, 그래봤자 이건 보잘것 없는, 정상과는 거리가 있는 대용품이었다. 노씨 아저씨가 프론트 데스크에서 손님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안되겠습니다' 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방에 온돌이 되는지 손님들이 물어본 것이다. 아저씨의 말을 듣자마자 이들은 역시 "그럼 안되겠네요" 라고 응수하고는 바로 나가버리는 것이다. 2월 말까지 영남장에 머물려는 사람은 거의 한명도 없었고, 금방 파산이라도 할 듯 비틀 비틀 하고 있었다. 3월 초에 결국은 빌딩을 팔아버리기로 결정을 내리고 영남장은 문을 닫았다. 온돌이 없음으로 인해 파국을 맞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 가슴아픈 보기다.

Best of all, it was equipped with on-dol floors, which was crucial, because when I moved in it was January -- surely the cruelest month, at least in Korea. Unfortunately, it was also right after the great financial crash of '97, and fuel prices had suddenly doubled at the worst possible moment. After much worrying, the owners decided in February that they could no longer afford to maintain three stories of on-dol floors. Long-term residents like myself were given electric heating pads, which was a poor, unhealthy substitute at best. I started hearing Mr. Noh saying "no" to potential guests at the front desk, when asked if the rooms had on-dol heating. Upon hearing this, these individuals would in turn say "no" to Mr. Noh, and immediately march out. By the end of February, hardly anyone wanted to stay at the Youngnam, and it was teetering at the edge of bankruptcy. In early March, the final decision was made to sell the building and shut down: a tragic example of death by lack of on-dol.

 

 

 

그래서 난 다시 짐을 꾸려 현대장 여관으로 몸을 옮겼다. ("the Modern Age Deluxe Inn")이 곳은 캐나다에서 온 괘짜 예술가 친구가 예전에 추천했던 곳으로 조계사 바로 밑자락에 있었다. 조계사는 한국에서 제일 규모가 큰 불교 종파의 본부다. 밖에서 보면 볼품이 없어 보였지만--회색 타일과 평범한 콘크리트로 된 땅딸막한 4층 건물--보존 상태가 좋은 옛날식 방이( 비죽 나온 서양식 침대가 있는 방도 몇개 있었다)여럿 있어서 골라잡을 수 있었다. 내 방에는 욕실이 따로 있었을 뿐만 아니라 거울이 잘 어울리는, 자개(진주와는 성분이 다르지만 진주의 일종으로 분류됨)가 박힌 옷장, 그리고 이렇게 빼어나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한 몫하고 있는 붉은 벽 등(lamp)이 두개 있었다. 그렇지만 내 맘에 제일 든 건 바닥이다. 커스터드 빛깔이 나는 노란색 유지(기름 종이)가 뒤덮고 있었다(예전에 묵었던 방들엔 리놀리움이 깔려있었다. 싸구려긴 하지만 전통적인 종이 바닥재의 대체제로 요즘 인기가 많다); 보호를 위해 옻칠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햇빛이 비치면 호박색 벌꿀마냥 윤이 났다. 다른 방들은 반들반들한, 연분홍빛이 나는 붉은 색 벽지로 도배되어 있었고, 옅은 초콜렛 갈색으로 된 방도 몇 군데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12월 말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 이말은 해야 겠다. 온돌 보일러가 돌아가는 동안 난 정말 행복하다.--하루종일 바닥에 축 늘어져 뒹굴 수도 있다. 친구들이 오면 하나같이 신발은 현관에 던져버리고 요로 직행한다. 언제나처럼 그걸 들어올리고는 다리를 베베꼬아 집어넣는 것이다. 밖이 제 아무리 개념없이 춥다할지라도 몇 분이면 알맞게 익어버린다.

 

And so I packed by bags on-ce again and moved to the Hyundae-jang Yogwan ("the Modern Age Deluxe Inn"), which had been recommended some time back by a nutty Canadian artist I know. It's right at the foot of Chogye Temple, headquarters for the largest Buddhist sect in Korea, and though not much to look at from the outside -- just four blocky stories of gray tiles and plain concrete -- it has a fine selection of well-kept traditional-style rooms (and a few with raised Western beds as well). Mine has a private bath, a mother-of-pearl-inlaid dresser with matching mirror, and two red wall lamps to help create that extra special mood. But what I like most is the floor, which is covered with custard-yellow oiled paper (my other rooms had linoleum, a tacky but popular modern substitute for traditional paper flooring); it's been lacquered over for protection, and when the sunlight hits, it glows like amber honey. Other rooms have creamy, pinkish-red papering, and a few come in light-chocolate brown. As I write, it's late December, and I'll tell you right now, I just love it when the on-dol heating really gets going -- I could lounge and roll all over it day and night. When friends come over, they ditch their shoes by the door and head straight for the yo, which they invariably lift and wriggle their legs under. No matter how insanely cold it is outside, within minutes they're baked to perfection.

 

 

 

옛날 한국의 가정은 거의 너나 할 것 없이 크고 돌로 덮힌 화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음식을 만들 때나 물을 끓을 때, 그 외 다른 용도로도 쓰였다. 속이 텅 빈 이 토루에 중추 역할을 하는 관이 연결되어 있고, 이 관은 다시 흙마루 밑을 지나는 다른 여러 관들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렇게 해서, 화덕에서 나온 열은 이 시스템을 통해 효율적으로 힘을 받아 퍼져나간다. 집의 반대쪽 끝에 있는 굴뚝이나 환기구는 이를 돕는다.( 불필요한 연기가 자유롭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한다.) 또한, 밑에 크고 납작한 돌 여럿이 내장되어 있는 큰 방이 늘상 적어도 하나는 있었는데, 이는 불이 꺼진 후에도 그 돌 위를 지나갔던 열을 잘 잡아두고 전도시키기 위함이다: 따라서 '온돌' 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현대식 주택과 아파트는 지을 때 이 시스템을 알맞게 변형시켜 사용하고 있는데, 대게는 시멘트 마루에 동 파이프가 깔려있고, 중앙 보일러에서 데워진 물이 이 마루를 따뜻하게 하는 식이다. 사실 온돌이 지금의 현대적인 주거로 급작스럽게 변하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국 전통 건축의 한 요소인지 아닌지는 다툼의 소지가 많다.

 

Back in the old days, most Korean homes had a large, stone-covered fire pit, which was used for cooking, boiling water and so forth. To this hollow, sealed-off mound was attached a central flue, which was in turn connected to more flues running beneath the mud floors of the house. In this way, heat generated from the fire pit was efficiently forced and channeled throughout the system, helped along by a chimney or vent at the opposite end of the house (which also allowed any unwanted smoke to escape freely). In addition, there was always at least on-e main room under which several large, flat stones were placed, in order to better retain and conduct the heat that had flowed over them after the fire went down: hence the origin of the name "on-dol." Today, modern Korean houses and apartments are built using an adapted form of this system, usually copper pipes laid in cement floors, which are warmed up by water that's been heated in a central boiler. In fact, it can easily be argued that on-dol heating is the on-ly element of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which has survived the abrupt transition to present-day, modern housing.

 

 

 

문명과 불만(1930)을 보면 아주 흥미로운 각주가 몇몇 눈에 띈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문명이 하나의 실존으로 크게 뜀박질 한 것은, 우리 조상들이 허리를 펴고 똑바로 섰을 때부터 였다고 말한다. 여러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그의 뒤를 이어 계속해서 이 생각을 추종하고 발전시켰으며, 최근에는 예술사가 Rosalind Krauss 가 1993년 저서 '시각적 무의식'을 통해 그 뒤를 따랐다. 프로이드가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인간이 아직 4발로 기어다니고 있을 무렵 그는 주로 냄새 지향적이었다. 이는 그 자신이 땅과 자신의 생식기,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뾰족한 엉덩이에 가까이 있었던 탓이다.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동물과 다름없는 상태에서 그와 자연과의 관계는 원초적이고 직접적이었으며,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 매개된 것이 아니었다. 허리를 편 자세로 바뀌게 되면서 덩달아 시각이 관심을 유발하는 우선 동기가 되었는데, 그는 이제 등이 곧추선 상태였고, 밑에 있는 땅으로 부터는 더 멀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때 인간은 이전의 순진무구한 자연 상태로부터 고립된 것이다: 갑자기, 동료의 성기가 그의 눈에 들어왔고, 수치라는 감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새로이 거리를 두고 중립이 된 그의 시각에서, 세상에 있는 사물은 그 많은 것들이 하나같이 직관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것 이라기보다는, 곰곰이 생각하고 몸에 익혀야 할 개별적인 것들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런 존재적 충돌의 직접적인 결과로 억압 본능이 자라나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문화와 문명은 처음으로 시험적이고 의기양양한 걸음마를 뗐다.

There is a very interesting pair of footnotes in 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 (1930), in which Freud suggests that human culture made its first great leap into being when our ancestors assumed an upright, standing posture. This idea has subsequently been pursued and developed by various gestalt psychologists and, more recently, by art historian Rosalind Krauss in her 1993 book The Optical Unconscious. In Freud's understanding, when man still traveled on all fours, he was oriented mainly by a sense of smell, due to his proximity to the ground, his own genitals and a no doubt pungent posterior. In such a profoundly animalistic state, his relationship with nature was primal and direct, unmediated by external factors. The transition to erect carriage was accompanied by a shift to a primarily visual orientation, for he was now vertical, and much further from the ground below. At that moment, man became alienated from his previously naive, innocent state of nature: suddenly, he could see his mate's exposed genitalia, and a sense of shame began to appear; and from his newly aloof, detached perspective, objects in the world became so many separate things to be contemplated and acquired, rather than intuitively and immediately experienced. And so repression set in, a direct consequence of this existential rift, and at the same time culture and civilization took their first tentative, triumphant baby steps forward.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억압은 땅이고, 모든 문명은 그 위를 “걷는다.”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곧추서는 것 보다는 수평적인 것이 더 자연스럽다. 서양에서 자라는 동안, 나는 한 번도 의자, 소파, 걸상, 벤치의 기능적인 “자연스러움”에 대해선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이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서있는 것과 드러눕는 것이 기분 좋게 타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기 아시아에서 몇 년을 보낸 후, 나는 이들을 소위 “더 우월한” 문명의 더 인공적인 표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결국+(만약 전부가 아니라면) 거의 모든 서구 사회는 스스로를 저 아래의 “더러운” 바닥으로부터 되도록이면 높이 끌어올리기 위해 애써 왔던 것은 아닐까? 벌떡 선 탁자, 서있는 침대, 그리고 정말 예외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갖가지 형태와 종류의 가구들의 모습으로 말이다. “토대가 되는” 1층이 사실은 문명을 만든 억압을 떠올리게 하는, 불쾌하고 기분 나쁜 존재가 아닌 것 같지 않은가? 특히 집안 내부 공간 이라든가, 그 외 인공적인, 사람이 만든 환경을 배경으로 놓고 봤을 때 말이다.

그리고 의자는 또 어떤가. 사람 몸뚱어리를 90도 각도로 꺾인 기괴한 z형(지그재그)로 깎아 만든 것 아닌가. 이제 이 의자들이 우리 몸을 가사상태까지 가도록 얼려버리기 위한 ‘등이 죽 펴진’ 노력으로 보일 지경이다. 서있게 하는 것도, 앉도록 하는 것도 아니다. 상충되고, 어느 쪽도 아니며, 스스로를 자연보다 높은 위치로 끌어올리려는 끊임없는, 무의미한 시도를 물리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는 형이상학적이다.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난 이제 이 의자들을 곤혹스런 연민으로 올려다본다. 특히 온돌 위에서 몸을 지지고 있을 때..

 

Or to put it another way: repression is the ground upon which all civilization "walks." And even more simply: it is more natural to be horizontal that vertical. Growing up in the West, I never thought to question the functional "naturalness" of chairs, sofas, stools and benches, which seem to offer a happy compromise between standing and resting. But after a number of years here in Asia, I've come to see them as far more artificial emblems of so-called "higher" civilization: after all, haven't most, if not all, Western societies sought to elevate themselves as much as possible from the "dirty" ground below, in the form of raised tables, standing beds and indeed furniture of most types and description? Is it not likely that the "base" ground floor is in fact a rather disturbing, unpleasant reminder of civilization's founding repression, particularly in the context of domestic spaces and other artificial, man-made environments? And what about chairs themselves, which sculpt the human body into an awkward zigzag of severe right angles? I almost see them now as stiff-backed attempts to freeze the body in a state of suspended animation, neither standing nor really sitting, conflicted, ambivalent, nearly metaphysical in the way they physically describe man's incessant, futile efforts to raise himself above nature. More than anything else, I look upon them now with a sense of bemused compassion, especially when I am relaxing on a warm on-dol floor.

 

 

 

실은 난 지금 바로 그걸 하고 있다. 지금 머물고 있는 방은 크고 널찍했으며, 안락하다. 그런데 의자나 소파는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그저 완전히 쓸모없는 잡동사니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난 손님맞이를 위해 방석을 잔뜩 마련해놓고 있는데, 꽤 쓸모 있다: 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온돌 바닥(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그 아래를 계속 지나다니는 공기 때문에 시원하다)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해주고, 필요 없을 때는 눈에 띄지 않도록 옷장에 보관할 수도 있다. 이렇게 방석을 깔면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더 친밀해지고, 덜 딱딱해진다. 의자에 앉는 것이 대게는 더 딱딱하고, 분리되며, 제 각각 흩어지는 느낌을 주는 것과는 다르다. 불필요한 것은 죄다 빼버린, 불교의 선을 떠올리게 하는 내 방의 간결함과 지금의 생활방식에 꽤 만족하게 되었다: 여기엔 공간이 있고, 더욱 수평적이며 자연스러운 존재의 방식을 즐길만한 유연함이 있다. 발 뻗고 푹 쉴 자유가 있고, 원하는 건 뭐든 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Which is, in fact, exactly what I am doing right now. The room I currently live in is large, wide-open and comfortable, but there is not a single chair or sofa in it, for they would merely be so much unnecessary clutter. I have plenty of cushions for guests, and they do the job quite well: they allow the sitter to be close to the on-dol floor (which is warm during the winter and cool during the summer, because of the air that continually passes beneath it), and can be stored out of sight in a closet when not in use. Such an arrangement also creates a closer, more casual atmosphere between people, unlike chair-based seating, which is usually more formal, separate and spread out. I have grown quite content with the stripped-down, Zen-like simplicity of my room and present lifestyle: it provides the space and flexibility to enjoy a more horizontal, natural mode of being. I have the freedom to kick back and be all that I can be.

 

 

 

마룻바닥 위주의, 자리에 앉는 생활방식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난방 기술을 그렇게 위화감 없이, 조화로운 방식으로 마룻바닥에 접목시키는 천재성을 보인 곳은 오직 한국 뿐 이었다. 다른 아시아 국가(이를 테면 일본의 코타트, 혹은 밥상 난방기 같은)의 전통 난방 방식과는 다르게, 온돌 시스템에서는 외부로 드러나는 것이 전혀 없다: 이는 오직 한국 건축물과 생활공간만이 갖는 특징이다. 한마디로 너무나 눈부시다. 오랜 기간 동안 따뜻하게 지낼 궁리를 해왔던 인류에 있어 온돌은 너무나 간단하고 실용적인 해법이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열이 올라오면 그 바로 위에 있는 것이 제일 좋은 것 아닌가? 어떤 식으로 들여다보든, 온돌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While a floor-based, sit-down lifestyle is not unique to Korea, on-ly Korea has had the genius to marry the technology of heating to it in such an intimate, harmonious way. Unlike traditional heating methods found in other Asian countries (like the Japanese kotatsu or table heater, for example), there is nothing external about the on-dol system: it is an intrinsic feature of Korean buildings and living spaces. It is so brilliant precisely because it is such a simple, practical solution to humanity's age-old quest to stay warm -- after all, if heat rises, isn't it best to be right above it? No matter how you look at it, on-dol heating truly is out of sight.

 

[펌]아리랑이 게이샤의 전통음악이라고?

 

우리나라 전통음악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음악이 바로 '아리랑'이죠??

근데 우리의 아리랑의 한 앨범에서 일본 게이샤의 전통음악으로 수록되어 있어서

외국 음반사이트에서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의 사이트는 'audiolunchbox.com'이라는 곳으로 우리나라 유료 음악사이트 같은 건가봐요..

 

9번 트랙의 '아리랑'이 보이시죠??

이건 아리랑이 아닌 다른 노래가 나오구요..

10번과 21번을 들어보시면 아리랑이라는 걸 아실수 있을꺼예요..

 

 

앨범 리뷰인데요...

여러 누리꾼들이 아리랑은 일본곡이 아닌 한국의 전통음악이라고 강조하고 있네요..

 

 

 

 

이 노래는 http://www.oldies.com/product-view/ZZB441.html/ 에서 5.97달러로 판매까지 되고 있던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네요..

(펌)일본해군이 충무공에게 배워간것은? 대략충격

고고고님이 아고라서 퍼온 <이순신장군과 배용준>을 읽고 아고라 토론방베스트에서 퍼온 챔피온님의 글입니다. ^^;뿌듯!

나머지 2편의 글도 좀전에 퍼왔으니 보세효~ 으쓱~으쓱~

 

<일본인이 이순신을 묻는다면(1)>

몇달 전 일본 동경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사람입니다.
일본에서는 4년 정도 있었구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 식당, 유흥업소 서빙 등등
안해본 게 없습니다.

한번은 일식당에서 서빙을 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전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난생 처음으로
민망하고 부끄럽고 죄스럽기까지했던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겪었던 그때의 경험을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흔히 일본인들을 가리켜 족보도 전통도 없는 민족이라
말합니다. 일본이 오늘날 경제대국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그저 남의 것을 잘 베끼는 능력 때문으로 폄하해 버리기도 합니다.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이
훌륭하든 보잘 것이 없든 그것을 받들고 존중하고
계승해 나가려고 하는 자세만큼은 세계 제일의 수준이라고
봅니다.

일본의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거리들을 지나다 보면
조상으로부터 3대, 5대, 심지어는 10대에 이르기까지
가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알바를 했던 일식당 사장님(주방장) 역시 3대째 식당을
경영해오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원래는 사장의 형님이 가업을
물려받아 식당을 경영했는데 12년 전 형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게 되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가업을 잇게 되었답니다.

우리는 식당을 명퇴를 당했거나 할 것이 없을 경우
"만만한 게 음식장사"라는 생각에서 식당을 하거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죠.

저도 일본에 가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장은 명문 게이오대 출신으로 글로벌 기업 소니사의
일원으로서 남부러울 게 없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외모는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일본인의 모습(작고 왜소하며
안경을 쓰고 뻐드럭니로 인해 입이 튀어나온... 절대 그 분과
일본인을 비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님)이었죠.

저도 사장의 이력을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부터 말씀드리고자 하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 알게 됐죠.

열달 좀 안됐네요.
식당 문을 닫을 무렵이었는데 사장이 불쑥 역사에 관심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그것도 임진왜란에 대해서요.
그렇다고 했죠. 역사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전 관심 정도가
아니라 많이 안다고 자부했던 쪽이었습니다. 특히 전쟁사, 영웅전기 같은
책들을 많이 봤었고, 그래서 사장의 물음에 대해
속으로는 "일본의 역사도 아마 당신보다 내가 더 많이 알 걸"이라고
생각했었고요.

내가 역사에 관심이 있다고 하자 사장이 다짜고짜 "이순신에 대해서
잘 아느냐"고 하더군요. 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우쭐해지는 게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저는 사장이 어디서 이순신 이야기를 듣고 자세히 알고 싶어서
그러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얼마든지 대답해 줄 용의가 있었죠.
밤이 새도록 말이죠. 그래서 그의 다음 질문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질문은 뜻밖의 것이었습니다.
"이순신이 구사한 해전술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거북선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느냐, 복원은 언제 되느냐"고
하더군요.

질문을 받고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핵심 해전술?"
"거북선의 복원?"
뭐 하나 제대로 답해 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위의 두 가지 질문 외에도 바로 이어서 몇 가지가 더 있었던
것 같았는데 너무 당황했던 나머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자, 여러분이 제 입장이었다고 합시다.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답변을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또 그 답변이
정답이고 오답이고를 떠나서 아마 대부분의 분들은
저처럼 당황해 하셨을 겁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전술에 대해서야 누구라도 학익진이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합니다만, 그 전술의 원리, 그리고
그 전술이 해전장별로 어떻게 응용되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설명하실 수 있는 분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거북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저는 거북선이 2층인지 3층인지,
머리가 유황을 뿜는 굴뚝용인지
대포를 쏘는 포탑용인지
선수 하단부체 충돌용 돌기가 있는지 없는지
몰랐습니다.

저는 그날의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순신에 대해서라면 이를 갈며 증오심과 적개심을 드러내리라고
생각했던 일본인을 통해서 제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을
알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사장은 나에게서 자신이 원했던 것을 얻기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해 주더군요.

"이순신은 중세기 세계 최강의 군력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군을
꺽었다. 만약 이순신이 없었다면 일본은 그 군력으로
중국은 물론 아랍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순신의 정신과 해전술은 우리 근세 일본해군의 동력이 되었다.
생각해 보라. 임진왜란은 조선과 중국 대 일본의 싸움이 아니었다.
이순신과 일본의 전쟁이었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고 말이죠.

사장은 어렸을 적부터 일본 전국시대를 풍미한 영웅전기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고 하더군요(사실 일본사람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특히 전국시대 3대영웅이라고 일컬어지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는 일본인들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인물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우익과 성인남자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일본이 개국한 이후, 처음으로
섬을 벗어나 대륙으로 눈을 돌린 인물이기 때문이랍니다.
아울러 평민출신으로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점도 일본인들에게 영향을 줬겠죠.

사장은 대학시절 이순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바다의 맹장들이 왜 하나같이 맥을 추지 못하고 연거푸
패해야 했는지, 천하의 용장들이 총출동한 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군은 조선에서 철수해야 했는지....
일본 자위대는 물론 정계의 정점으로 추앙받고 있는 도고 헤이하치로는
무엇 때문에 이순신을 칭송했는지.... 말이죠.

관련 서적, 논문 같은 것도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많다고 하더군요.
일본인의 시각으로는 아무래도 연구에 한계가 있지 않겠냐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한국인은 세계적인 영웅을 배출한 민족이면서도
그 가치를 제대로 구현해 내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만약 이순신 같은 인물이 일본에서 배출되었다면
징키즈칸 못지않은 세계적인 인물로 부각되었을 거라면서....


그날 숙소에 돌아온 저는 마치 무엇에 홀린 것 마냥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죠.
그리고는 서울 형님에게 전화를 걸어 이순신 장군에 관한
책을 좀 사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형님이 보내주신 몇권의 책이 왔습니다.
소설류에서부터 해전에 대해 기술해 놓은 전문 서적류까지...
모두 읽었습니다.
그런데 공허해 지더군요.
너무 막연했고 황당했으며 거기서 거기였습니다. 또 이미 알고 있던
얘기들이었구요.

그리고 한달 전,
금년 5월에 나온 <이순신과 임진왜란>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울면서 봤습니다.
새로운 사실들, 그리고 지금껏 그 어디에서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얘기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됐습니다.
책의 머릿글을 보니 작가들은 이 책을 쓰기 위해 무려 20년이 넘게
집필에 전념해 왔다고 하더군요. 어떤 분은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 두면서 말입니다.

또 서문에는 사카모토 사장이 제게 물었던 이순신의 해전술의 원리와
거북선의 실체를 밝혀주는 글이 들어 있었습니다. 전율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고 넘겼죠. 거짓말 않고 꼬박 밤을 세워 1권의 반을
읽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까지 나는 이순신과 임진왜란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도대체 제도권 교육에서 우리가 배웠던 것은 무었이었을까요.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말로는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문화민족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교육이 문화민족의 일원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던 것일까요.
대한민국의 해군과 군사학회는 그동안 무엇을 했던 것일까요.

제가 지금까지 배웠던 교육이
12000원 짜리 단행본 1권보다도 충실하지 못했다면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이순신과 임진왜란> 1권 서문의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이것이 많은 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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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 지각변동을 가져온 충무공의 해전원리

20세기 일본 해군은 직충(直衝,ramming) 등을 오역하지 않았기에 충무공의
'거북선+학익진의 해전원리'를 제대로 해독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일본은 20세기 초 세계사의 지각변동을 가져온 청일해전과
러일해전에서 승리했고, 한반도는 일본에 합방되었으며,
청나라와 러시아는 차례로 문을 닫는다.
그 후 일본 해군의 학익진(丁자진) 해전원리를 승계한 영국 해군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해군을 분쇄했고, 2차 세계대전에서는
미국 해군이 레이테만(스리가오)에서 학익진(T자진)으로
일본의 태평양 함대를 궤멸시켰다.
미국 해군의 학익진 원리에서 맥아더의 (도쿄를 향한)
개구리 뜀뛰기 상륙작전과 란체스타 공군전술이 개발되었다.
그런데 기존의 서적에서는 세계 해군들의 학익진 연구사가
빠져 있기에 지금까지 우리의 이순신 연구는
우물안 수준에 머물러 있음이다.


 

 

<일본인이 이순신을 묻는다면(2)>

얼마 전, 「일본인이 이순신에 대해 묻는다면?」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사람입니다.

두서없이 정리되지 않은 저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신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며칠 전 댓글을 통해 말씀드린 대로
제가 왜, 무슨 이유로 보잘 것 없는 경험담을 늘어놓으며
<이순신과 임진왜란>이라는 책을 소개하게 되었는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제가 일본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왔을 때 TV에서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를 하고 있더군요. 관심을 가지고 시청했죠.

종영이 임박한 상태라 마지막 몇 회 분만 볼 수 있었습니다.
넋이 빠져나갈 정도로 훌륭한 드라마였습니다. 특히 이순신 장군 역을
맡아 열연하신 김명민님의 연기는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께서 전사하시는
장면(마치 의도된 죽음임을 암시하는 듯한)은 짧았지만 그동안
이 드라마를 애청하며 허전한 가슴을 달래던 저에게 적지 않은 실망감을
주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은
‘장군께서 갑옷을 벗으시고 함교 아래로 내려오셔서까지 위험을 자초하실
이유가 있으셨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드라마라 하더라도
매우 지나친 설정이었다는 게 노량해전 편을 본 저의 소견입니다.

창작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고, 적극 권장되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상식과 이치에 맞지 않는 창작은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제일의 해군제독,
필승의 해군 제독의 명성과는 결코 어울리지 설정이었습니다.
때문에 적어도 불멸의 이순신 노량해전 편에서 만큼은
이순신 장군은 없었다고 봅니다.


이순신 장군님의 전사 장면은 상식(장군의 인품)과 이치(병법의 이치)를
고려하지 않은 실수에서 빚어진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장군님에게 노량해전은 이기기 위해 혼신을 바쳐 출전하신
전투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드라마에서의 설정이
창작이 아닌 400년 전, 노량해전장에서 있었던 실제의 사실이었다면

임진왜란의 역사는 전혀 달라졌을 거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최고 지휘관의 죽음은 전투의 승패를 좌우합니다.
병법의 이치대로라면 전사하셨어도 전사하지 않으셨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순신 장군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십니다.
그런 분이 병법의 이치에 역행하는 일을 하셨을 리가 만무합니다.
이기기 위해 출전하셨다는 것이죠.

자칫 이야기가 논점에서 벗어날 소지가 있을 것 같아
혹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 이야기는 그때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심난한 기분에 불멸의 이순신 게시판에 올려진 다른 분들의
글을 보다가 저는 아주 감명 깊은 글 하나를 보게 되었죠.
김세명이란 분이 올린 글인데요, 이 글이 바로 저로 하여금
이곳 토론방에 글을 올리게 만들었고
저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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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자 : 2005/08/30 22:28  작성자 : 김세명 ()
제목 : 한국인의 필독도서..이순신과임진왜란

20년을 넘게 충무공에 관해서 연구한 성광수님을 위시한 회원들이 낸 총4권인데
현재 2권까지 발간이 되있읍니다.. 성광수님은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시고
이순신역사연구회를 이끄시고 계시더군요...책 내용의 깊이는 정말 최고입니다..
여태껏 나왔던 허접한 김탁환의 불멸하고는 비교가 안되게 충무공과 임진왜란에
대해서 적었더군요...보니까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연구회 사정이 무척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여러분도 구입하셔서 꼭보세요..이런 연구회가 재정난 때문에
사라진다면 그건 대한민국의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자녀에게 친구에게 선물해도 돈아깝지 않은 최고의 불멸책입니다..
-불멸의 이순신 시청자게시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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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신 님들의 소감은 어떠신가요.
전 글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울컥하더군요.
짧고 투박해 보이는 글이었지만 저는 김세명님이란 분의 글에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강한 외침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바로 책을 구입해 밤새워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으려고 읽은 것이 아니었죠. 보는 순간부터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책을 보면서 엄청난 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던 상식의 틀은 부서졌고
그 자리에 자랑스럽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지식과 체험,
그리고 새로운 임진왜란 해전사가 꿈틀대기 시작했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가 알고 싶었던 것,
사카모토(식당 사장)로부터 받은 의문부호들이
비로소 느낌표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난중일기를 통해서
징비록을 통해서
소설들을 통해서
전문서를 통해서조차 이해할 수 없었던 모든 의문들이
이 책을 통해서 거의 한꺼번에 해결되었죠.
어떻게 보면 이점이 이 책의 가장 훌륭한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속된 표현일지는 모르지만
'한 큐로 꿰뚫는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책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이 독자가 아닌 장군이 이끄시는
조선 함대의 일원이 되어 남해안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때로는 해상 숙영지에서...
때로는 격랑의 바다 위에서 기동하며....
때로는 적을 맞아 싸우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소설이나 책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현장감을 이 책은 너무도 실감나게 보여주었죠.
태산과 같은 감동이 파도를 타고 가슴으로 가슴으로 사정없이
부닥쳐옵니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진짜 파도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온 몸으로 전율을 느끼게 될 즈음 저는 불현듯
이런 자문을 하게 되었죠.
“왜 이런 책이 이제야 나왔을까?”
“지금까지 내가 배우고 알았던 것들은 뭐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저는 머리말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죠.
작가분들이 회고하듯 써놓은 두 페이지 분량의 기록에서 말입니다.
몇 대목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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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내기까지 2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은
책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필자들에게는 충무공을
닮아가기 위한 실천적 여정이자 깨달음의 장이기도 했다.
충무공을 연구하면서 크게 느낀 점이 있다면 우리의 모습
속에도 이순신과 같은 모습이 있다는 사실이다.
충무공의 말씀(언어, 글) 속에서 이러한 닮은 모습을
스스로 찾아내고 자율적으로 계발해 간다면 독자들 또한
값진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을 내는 필자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이순신과 임진왜란> 1권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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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금년 5월에 나온 책이구요.
그러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책이었죠.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알았던 지식들은 충무공의 말씀(언어, 글)이 아닌
대개가 작가나 학자분들의 시각에서 쓰여진 주관적인 기록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철저하게 이순신 장군의 기록(난중일기, 장계)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갑니다. 작가의 상상과 추론이 아닌
어디까지나 장군의 시각에서 임진왜란의 역사를 탐방하듯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이 책에서 작가들은 역사 탐방을 위한
안내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죠.

제가 처음 올렸던 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어떤 분들은 제가 식당 사장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해서
부끄러워한 것으로 아시더군요.

왜 그것도 몰라서 답변을 못했느냐는 질타와
전문적인 분야이므로 모를 수도 있다는 동정,
중요한 것은 충무공의 정신이지 그같은 물리적 결과물은
중요하지 않다는 반박의 말씀까지.....

물론 모두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제가 미처 설명 드리지
못했지만 그날 전 사장을 통해 엄청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도고의 일본 해군이 이순신 장군에게 배워간 것은
해전술(소프트웨어)이나 거북선(하드웨어)만이 아니라는 거였죠.
이순신 장군의 해전술과 거북선 속에는 장군님의 철학과 정신이
들어있다는 거예요. 따라서 도고의 일본 해군이 배워간 것은
‘소프트웨어+하드웨어+이순신의 철학/정신’이라는 겁니다.

1906년, 미국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도고를 방문했을 때
생도들이 도고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각하께서 가장 존경하는 분은 누구입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도고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16세기 조선왕국의
이순신 제독일세. 그 분의 무훈과 인품을 따를만한 제독은
아직 없네.”라고 했다는 일화는 다들 아실 겁니다. 

도고의 이 말에 대해서 어떤 분들은 일본인 특유의 겸손, 겸양의
덕목이 발휘되었을 뿐이지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하셨는데요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도고가 이렇게 발언한 때는 을사보호조약(1905년)이 있은
다음해였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을사보호조약은
아시다시피 일제가 “조선은 스스로를 방어할 힘이 없으므로
일본이 보호해준다”면서 강압적으로 맺은 조약입니다.

천하의 도고라 하더라도 그러한 미묘한 시점에서
그러한 발언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도고는 진심으로 이순신 장군의 ‘무훈과 인품’을 존경했고,
그것을 학습했을 거라는 것이죠.

전에 말씀 드렸듯이 도고는 현재 일본 자위대와 정계의 정점에
위치해 있는 군국 영웅입니다. 그러한 인물이 이순신 장군을
대놓고 칭송했구요.

사카모토 사장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순신의 정신은 오늘날 일본 속에 살아계시다”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뼈져리게
부끄러웠고, 죄스러웠고, 민망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함대에 참패한 일본-
300년 후 일본 해군의 이순신 연구-
일본의 청일/러일해전에서의 승리-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그저 역사의 아이러니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도 많은 것이 되새겨지지 않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정신력 자본, 우리의 지식자산이
남의 나라에 유출되면서 빚어진 통한의 역사인 것입니다.


학익진과 거북선은 그냥 지식으로 알아서 해결하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 속에 충무공의 혼과 정신이 있다는 겁니다.
대한민국, 5천년 문화민족의 자긍심과 역량과 민족의 혼이
응집되어 완성된 정신력 자본의 총화라는 것입니다. 

김세명님 또한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글을 올리셨겠지요.
그 글은 저를 움직였습니다. 저의 글 또한
다른 분들에게 어떤 외침과 울림으로
작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글을 올린 이유입니다.


이야기가 또 두서없이 전개되었네요.
제 글에 욕설이나 비방 모두모두 환영합니다.
공감은 아니더라고 그러한 교감만으로도
저는 큰 에너지를 얻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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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글에 대해 빚어진 오해와 의혹들에 대한 저의 이번 해명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네요. 시간이 없어서 짧게 말씀드리고 그래도
충분하지가 않다면 다음에 다시 글 올리겠습니다. 양해해 주세요.

먼저 책홍보인가?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이번 글에서 나름대로
충분히 설명드렸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많은 논쟁의 빌미가 되었던 '챔피온이 존경한건 충무공이
아니라 일본인 사장인가?'라는 의혹에 대해서 말씀드린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립니다. 부족한 저의 표현력 때문에
생긴 오해였던 것 같습니다. 카아악툇엣님을 비롯한 많은 님들께
이 짧은 답변이 먹힐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진심이라는 것을
믿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세번째, '일본군이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러한 군세로 중국은 물론 아랍까지 쳐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
챔피온의 소견인지 아니면 일본인 사장의 생각인가?'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그럴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뿐 그렇다고 확신하지는
못합니다. 그렇게 생각한 것도 일본인 사장님의 얘기를 듣고
그럴수도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 것이구요.

네번째, 이순신 장군님의 전사와 관련된 저의 소견 부분인데요...
이것은 지금 말씀드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군요. 며칠 안으로
못다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관심 많이 가져주시길...


짧지만 일단 이 정도로 저의 답변을 마무리하죠. 잠깐 짬이 나서
인터넷을 보다가 로긴 하고 글을 남깁니다.
모두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일본인이 이순신을 묻는다면(3)>

“일본인이 이순신에 대해 묻는다면?” 세 번째 글입니다.
두 번째로 올린 글을 통해서 님들이 가지고 계신 오해를 풀어드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전의 댓글들을 자세히 보니
식당 사장에 대한 오해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것 같군요.
글 한번 잘못 올렸다가 욕먹어서는 안되는 분이 욕을 먹게 된것같아
해명 차원에서 다시 글을 올립니다.

적지 않은 분들께서 일본인 사장의 의도가 자신들의 침략근성을
무마하고 본질을 흐리려는 의도가 아니냐고 생각하셨던 것 같네요.
하지만 사카모토 사장은 님들이 생각하시는 그런 파렴치한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그는 진심으로 충무공을 존경했고
그 인품에 감화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이순신 장군이 왜 세계인, 특히 동아시아 3국(한국, 일본, 중국)의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아야 할 인물인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뚜렷한 견해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기도 했죠.

다른 나라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한국인, 일본인들만은
장군의 업적과 장군으로 인해 수습된 임진왜란이라는 역사를 통해
많이 배워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이순신 장군이 아니셨다면 도쿠가와 바쿠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쿠가와 바쿠후의 문치시대(평화의 270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임진왜란을 통해서 얻은 값진 교훈의
결과물이었다. 누가 감히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을
꺾을 수 있었겠는가?”

사카모토 사장이 한 말입니다. 100년 내전의 소용돌이에서 처참하게
망가져버린 일본인들의 삶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으로 인해
또다시 짓밟혔지만 히데요시의 꺾일 줄 몰랐던 야욕이
이순신 장군이 지킨 바다에서 수장되어 버렸다고 하더군요.
그 덕택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패권을 잡을 수 있었고,
일본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평화로왔던 문치시대가
열릴 수 있었다고 말이죠.

히데요시 사후(사장은 화병으로 죽었다고 보더군요. 최고의 지략가였고
수싸움에 있어서는 거의 한번도 져본 적이 없는 히데요시 입장에서도
불세출의 명장 이순신 장군의 수를 넘어서기는커녕 읽을 수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한 마음의 응어리가 화로 전이되었다는게
일본 역사학계의 시각이라네요. 한산도해전에서 사실상
끝장이 났다고 해요. 그런데 이순신의 수를 읽지 못한 조선의 조정과

반 이순신 세력들이 작당해 장군을 감옥에 가두는 패착을 두면서

꺼져가던 히데요시의 야욕이 살짝 되살아났다고...)

히데요시 파의 다이묘들에 맞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축으로 한

반 히데요시 파의 단판승부가 펼쳐졌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세키가하라 전투(1600년)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에야스는 승리를 거두고 도쿠가와 막부를
세우게 되죠. 이순신 장군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키가하라 전투 같은 건 있지도 않았을 거라는게
사카모토 사장의 견해입니다.

사장은 이에야스를 일본의 역사 인물 중 아주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하더군요(일본 성인 남자들의 대부분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존경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카모토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번 글에서
이것 때문에 오해가 빚어진거 같아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다소 놀라웠습니다. 흔히 이에야스를 말할 때
인내, 용이주도함, 냉정함... 일본에서는 뭐 이런 덕목과 처세들을
이야기 합니다. 또 그런 것과 관련된 서적들도 아주 많구요.
그런데 사장이 이에야스를 존경하는 이유는 정말 뜻밖이었죠.

“그(이에야스)는 단순한 사무라이가 아니라 역사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히데요시의 칼이 이순신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고 거기서 큰 교훈을 얻었다. 그 결과 피의 시대가
종식될 수 있었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의 리더들은 그 역사를
진지하게 분석하기는 했지만 존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결과 여러 나라에 씻지 못할 죄를 지었고 일본에게도 파국을 가져왔다.”

사장이 울분을 토하듯 제게 한 말입니다.
이제 사장에 대한 오해는 풀리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그날 사장으로부터 들었던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해전술과 거북선에 대한 질문으로 제가 당황해했다는 얘기는 이미
말씀드렸는데요, 제가 아주아주 중요한 내용을 빠뜨린 게 있습니다.
저를 화들짝 놀라게 했던....

저는 거북선을 돌격선, 혹은 특수 임무를 수행한 다용도의 전술무기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사장은 거북선을 일컬어
인류 역사상 위험관리(방지) 시스템이 구현된
최고, 최상의 모델이라고 하더군요.

때문에 일찍이 일본과 서구의 군관계 연구소나 기업체들에서는
거북선을 리스크 매니즈먼트(Risk Management)의 표상으로 보고
많은 연구들을 해왔다고 합니다(첫번째 올린 댓글들 중에도 어떤 분께서
비슷한 말씀을 써놓으셨더군요. 그런데 그 댓글을 쓰신 분의 말씀처럼
거북선은 단지 보험회사에서만 연구되었던 게 아니라는 겁니다).

더 나아가서 일본의 경우는 이것을 많은 기업들이 기업 경영전략의
차원에서, 그리고 국가 경영의 차원에서도 연구를 해왔다고
해요(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는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장 자신도 들은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나중에라도 우리가 꼭 한번
알아봐야 할 분야인 것 같습니다).

태평양전쟁 때는 거북선이 선제 기습공격의 수단, 즉 카미카제로
응용되었답니다. 카미카제는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었던 자살특공대가
아니라는 거죠. 카미카제는 공군뿐 아니라 해군에도 있었는데
철저히 비밀에 붙여진 조직이었다고 합니다. 이름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유인(1인용) 어뢰정(그 자체가 폭탄)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것이 미군의 항공모함이나 군함으로 돌진해서 일격에 침몰시켰다고 해요.
거북선에 철저히 농락당한 왜군의 역사를 일본 군부가 미군을 상대로
그대로 써먹은 거죠. 왜군들에게 거북선이 공포의 대상이었듯이
미군들에게도 이 어뢰정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답니다(참고로
말씀드리면 진주만 공격도 이순신 장군의 정박중인 왜선단에 대한
신출기몰했던 기습 선제공격전략을 응용한 것이랍니다).

그런데 사장은 여기서 하나 중요한 지적을 하더군요.
이순신의 거북선 수병들은 똑같은 돌격대였지만 안전한 여건 속에서
싸웠던 반면, 카미카제 요원들은 그야말로 자살 특공대였다는 거예요.
일본이 이순신을 연구한다고 했지만 결국 성웅의 면모,
진정한 리더의 면모만은 모방할 수 없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순신 장군은 진정으로 위대한 영웅이라고 하더군요.
이순신 장군께서는 평소부터 필사즉생이 실천되고 체험되도록 했다는 것이죠.
그러니 그런 체험을 한 병사들은 최강의 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출전하면 죽는 것이 아닌, 반드시 이긴다는 체험....
사카모토는 이 대목에서 얼굴이 붉게 상기될 정도로 힘을 주어 말하더군요.

“이것이야 말로 정말 위대한 승리가 아닌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사가 걸린 전장에서 그같은 리더십이 발현되었던 적이 있었는가?
백전백승이 위대한 것이 아니다.
승리를 보장해준다는 그 시스템의 철학!”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한국도 역사를 존중했다면
이순신 장군을 통해서 많이 배웠을 것이고,
그랬다면 일제 식민통치같은 역사는 없었지 않았겠냐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무슨 소린지 좀 이해가 안됐는데 재차 설명을 듣고서야
깜짝 놀랐습니다. 국가 경영을 위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착시켜도
시원찮을 판에 왜 한국은 리스크 매니즈먼트의 상징인 거북선을
아직까지도 복원하지 못하고 있느냐는 거였죠.
일본의 역사에 대한 인식도 대단히 잘못되었지만 한국도 스스로를
되돌아보아야 한다면서 말입니다.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었다면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거북선의 실체에 대해서조차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판에...
저는 일본인으로부터
‘거북선=리스크 매니즈먼트’,
‘거북선=국가 경영을 위한 시스템적 응용’이라는 얘기를 들어야 했죠.

왜 제가 그런 말을 다른 나라 사람에게 들어야 합니까?
왜 한국은 역사를 존중하지 않느냐는 소리까지 곁들여서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쪽발이라고 해서
덮어놓고 욕하고 의심하기 전에 이 쪽발이의 말을 이제라도
깊이 새겨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튼 그날 전 너무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그래서 작정을 하고
형님에게 이순신에 관한 책들을 부탁했고 거의 두달동안
취침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10권 정도를 봤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눈이 시뻘겋게 충혈이 돼서 생활에 불편을
느낄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다가 귀국해서 김세명님이 쓰신 <불멸의 이순신>
게시판 글이 계기가 되어 <이순신과 임진왜란> 책을 보게 되었구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이 책에서 제가 가진 감정은 감동보다는
놀라움이 먼저였습니다. 책을 펴는데 머리글 첫 문장에
‘필자는 삼성화재해상보험 재직시 해상보험의 시각에서
거북선을 연구했다’는 대목이 나오는 거예요.
순간 기절하는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거북선 편에서는
사카모토 사장이 저에게 말한 리스크 매니즈먼트에 대한
설명이 나오더군요.


해방 후 반세기.... 그동안 무엇이 달라졌고 어떠한 진척이 있었을까요.
역사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구한말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무엇입니까?
그때는 세도정치같은게 문제였다면 지금은 무엇이 문제일까요.
제가 왜 다른 나라에 가서 이렇게 엄청난 이야기를 들어야 하며,
왜 그러한 사실을 무명의 아마추어 작가분들이 썼다는
책에서 알아야 하나요.

해마다 충무공 탄신일이 되면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똑같은 분들이 모여서
그렇게 논쟁만 하다가 끝냈죠. 그걸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합니까.
왜 충무공의 은둔설이 나오며, 왜 자살설이 나옵니까.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할 것은 뒷전인 채 왜 그런 얼토당토않는
것들에 매여서 시간을 허비합니까.

왜 원균이 충무공의 라이벌로 등장하고,
왜 거북선은 아직도 실체 규명이 안되고 있는건가요.
적으로 하여금 전의를 상실하게 하고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는
그 용맹했던 거북선은 어디 가고
목아지가 길어 슬픈 사슴의 모습으로 버젓이 전시되고 있는
우스꽝스런 거북선들은 대체 무엇입니까.

충무공학(學)은 국민의 학(學)이라고 합니다.
일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대한민국의 정신력자본이며,
위대한 지식자산이기 때문입니다.

 

 

퍼나르기 끝...

이글 퍼나른거...지금까지 제가 한일들중에서 가장 잘한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PS

다보셧습니까?

그럼 맨 밑에 <싼초>님이 답글로 달아놓은 <노량해전...>도 읽어보세효^^

오늘(11월 19일)이 바로 노량해전이 벌어졌던.... 바로 장군님이 순국하신 날이라네요.

http://bbs2.worldn.media.daum.net/griffin/do/koreawave/read?bbsId=K005&articleId=31&pageIndex=10&searchKey=&searchValue=

 

 

*PS

오랜만에 와보니 새론 답글들이 많네효^^

이것도 함 보세요. <스크린쿼터사수>님이 최근에 여기 한류방에 올리셨는데 강추합니다.

http://bbs2.worldn.media.daum.net/griffin/do/koreawave/read?bbsId=K005&articleId=358&pageIndex=2&searchKey=&searchVal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