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12일 화요일

와인과 글라스

먹음직스러운 랍스터구이를 작고 볼품없는 플레이트에 담는다면 보기에는 물론이요, 고유의 풍미를 만끽할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와인도 마찬가지다. 같은 와인이라도 글라스의 모양과 크기에 따라 감추어진 맛의 황금분할을 찾아낼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오랜 세월 병 안에서 잠자고 있던 와인은 글라스와 만나는 그 순간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게 된다. 그만큼 와인의 매혹적인 색채와 향을 담아내는 글라스는 와인을 즐기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 일반적으로 와인잔은 달걀이나 튤립처럼 볼록한 모양의 볼(Bowl) 부분에 가늘고 긴 다리가 붙어 있는데, 다리 부분이 긴 것은 미학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손의 열기가 와인에 전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 잔을 손으로 감싸쥐게 해 체온에 의해 향이 퍼지도록 만드는 코냑 등의 브랜디잔과는 대조적이다.
최적의 와인 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포도 품종이나 산지, 와인의 종류 등에 따라 각각에 적합한 모양과 사이즈로 디자인된 글라스를 선택하는 것이 포인트. 보통 레드 와인 글라스는 화이트 와인용에 비해 크기가 큰데, 이는 레드 와인 속의 거친 타닌을 공기에 노출시켜 부드러워지게 하기 위한 것이며, 반면 입구가 좁은 것은 와인의 풍부한 향을 모아서 발산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화이트 와인용 잔이 작은 것은 주로 차게 해서 마시는 화이트 와인의 특성을 고려, 마시는 동안 온도가 올라가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샴페인잔은 와인 속에 용해되어 있는 탄산가스 기포가 잘 올라올 수 있도록 몸통 부분이 가늘고 긴 것이 특징.



좀더 까다롭게 고르자면 그 종류는 더욱 세분화된다. 이는 잔의 몸통 크기와 높이, 입구의 지름이나 경사각 등 세밀한 차이에 따라 감지되는 맛과 향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 예를 들어, 와인이 입안에 흘러들어 혀에 있는 네 곳의 미각 부위 중 어느 곳에 먼저 닿는가에 따라 느끼는 맛이 달라진다. 따라서 같은 프랑스산이라 하더라도 부르고뉴산 글라스는 풍선처럼 가운데가 볼록한 반면, 보르도산을 위한 잔은 부푼 정도가 덜하며 튤립 모양에 가깝다.
사실 와인에 정통한 전문가가 아니라면 와인의 종류에 따라 제대로 된 글라스를 매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잔이 어떤 와인의 맛을 최대로 표현해주는지 발견하고 그 차이를 느껴보는 것도 와인 마시는 또 다른 재미를 더해준다. 이제 비슷하게만 보였던 많은 글라스들과 와인을 매치하는 흥미로운 게임에 도전장을 던져보자.◈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