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21일 화요일

구려(九黎)의 임금 치우(蚩尤)

구려(九黎)의 임금 치우(蚩尤)

동이(東夷)란 말의 유래

석가, 예수, 노자,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불세출의 대성인으로 추앙 받아온 공자(孔子). 자신의 도(道)가 중원 땅에서 이루어질 수 없음을 한탄하며 그가 한 유명한 말이 『한서漢書』에 기록되어 있다. “뗏목을 타고 바다(산동반도 동북쪽의 발해)를 건너가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 싶다(孔子悼道不行 ?浮於海 欲居九夷).” 그리고 그 주석에는 “그 나라에는 어진 교화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논어論語』에도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공자가 구이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는데 혹자가 누추한 곳이 아닙니까? 라고 묻자 군자가 그 곳에 있는데 어찌 누추하리요(孔子欲居九夷 或曰陋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라고 밝히고 있다.

일반적으로 ‘동이(東夷)’는 ‘동방(東)’의 ‘오랑캐(夷)’라는 의미로 알려져 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중·근세 고려·조선의 사대주의자들은 스스로 ‘동이(東夷)’라고 부르길 꺼려하여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했다. 오늘날에도 ‘이(夷)’가 야만족을 뜻하는 비칭(卑稱)이지만, 본래의 ‘이(夷)’는 오랑캐가 아니다.

동이(東夷)는 오랑캐가 아니다

고대 중국인들은 동서남북의 각 종족들을 멸시하고 극히 버릇없는 말[동쪽-맥(貊, 발 없는 벌레), 서쪽-강(羌, 양, 염소), 남쪽-만(蠻, 벌레), 북쪽-견(犬, 개) 『설문해자(說文解字)』]로 표현했는데, 다만 동이에 대해서는 명칭은 나쁜 글자로 쓰면서도 그 내용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표현을 넘어 더 이상이 없는 극존칭(極尊稱)과 수식어를 붙여 표현했다.
“군자국”, “어진 교화가 있는 나라”, “동방의 예의 있는 나라”, “큰 활을 잘 쏘는 나라”, “신선이 사는 나라”, “삼신산의 나라”, “큰 것을 좇는 대인(大人)의 나라”,
 “삼신산이 있는 곳”, “천자국”, “부상수(扶桑樹)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곳(暘谷)”등이 바로 그것이다.

도리어 동이겨레에 비하면 그들 문화야말로 형편없는 오랑캐문화였음을 자인(自認)하고 있는 것이다. 난륜패상의 무법천지였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는 더더욱 동이를 그리워했으리라. 선진[先秦: 진(秦) 시황이 전국(戰國)을 통일하기 이전시대]시대에는 동이야말로 천자나라였고 중화는 오랑캐였다. 다만 그들은 동이겨레가 세운 나라의 국호를 일컫기를 꺼려했고 동이겨레 전체를 통솔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밝히려하지 않았다.

‘이(夷)’라는 호칭은 지금으로 말하면 ‘양키(Yankee)’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양키’는 미국인들을 경멸하면서 쓰는 말이지만,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막강하고 문화적으로 앞서 있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나라다. 다시 말해서 ‘양키’라는 말에는 경멸과 외경의 이중적 감정이 양립하고 있는 것이다. ‘동이(東夷)’라는 말이 그와 같아서 중국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신들을 지배했던 우리 민족을 미워하면서도 문화적으로 우리 민족이 스승국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제자백가시대의 유가는 한민족을 일컬어 ‘군자의 나라’라 불렀고, 도가는‘신선이 사는 나라’라고 불렀던 것이다.

동이(東夷)는 우리 민족을 지칭한 말

조선시대 사대주의자들만 해도 선진시대(先秦時代) 동이역사가 우리 역사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대로 문화적 자부심만큼은 대단했다. 그래서 그들은 중국인들이 다른 민족들과는 다른 대우를 우리 나라에게 해주길 바랬다. 그런데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우리의 역사학자들은 이상하게도 동이역사를 우리 역사의 범주에서 제외시키고, 우리 역사를 자축(自縮)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두둔하는 논고만 열심히 쓰고 있다. 그저 그네들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우리 고대사를 한반도에다 가둬놓느냐라는 생각뿐이다.
 세계 어느 나라 역사학계도 자기 나라 역사를 깎아 내리려고 발버둥치는 경우가 없건만 유독 우리의 역사학계만은 우리의 역사를 못 지워서 안달이니 한심한 일이다.
그들 주장의 요지는 선진시대에는 동이(혹은 구이)가 중원대륙에 살던 민족이요, 고조선과는 무관한 세력이었는데 진시황이 6국을 통합하면서 동이가 몰락하자 중국 국경 밖에 있는 민족을 새로 동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진시대에 중국의 동쪽 국경 밖의 민족이 동이와 과연 무관한 것일까?
앞에서 언급한 바, 공자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는데 구이(九夷)를 중원대륙에 살던 종족들 - 견이(킛夷), 우이(于夷,  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현이(玄夷), 풍이(風夷), 양이(陽夷) - 로 규정한다면 공자가 살던 노(魯)나라와 이웃 제(齊)나라도 동이족(萊夷, 于夷)으로 가득 찼는데 육로로 걸어가도 만날 수 있는 구이를 왜 굳이 풍랑물결을 무릅쓰고 바다로 가려 했던 것일까? 바다 건너에 무엇이 있길래?

(다음 호에 계속)

글·유내윤 (kif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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