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25일 토요일

서울의 미국스파이들

서울의 美·日·中·러 스파이전력 총점검
  • 서울의 미국 탐정회사 핑클톤 비밀사무실
  • 영어강사·러시아 쇼걸로 변신한 미·러 스파이
  • 일본 외신기자는 일본정보당국의 최선봉
  • 여의도와 신촌의 중국식당은 중국정보기관의 안가
  • 신축 정동 러시아대사관은 최첨단 정보기지

    1997년 7월 이전, 홍콩은 세계 최고의 정보 전쟁터였다. 그러나 홍콩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그 무대가 이제는 대한민국 서울로 옮겨왔다. 서울이 스파이 천국이 된 것은 이들을 꾀는 미끼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은 마지막으로 남은 분단국가다. 특히 북한은 외국의 스파이를 유인하는 가장 강력한 미끼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미·일·중·러 등 세계 초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날카롭게 맞선 곳이다. 이들이 상대국에 대한 정보를 캐기 위해 스파이를 서울로 파견한다. 3개월 뒤면 서울에서 월드컵이 열린다. 월드컵 기간중 수많은 외국인이 서울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스파이와 테러요원도 적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올해 말이면 한국의 차기 정권을 결정짓는 대통령 선거가 진행된다. 이래저래 서울은 스파이 천국이 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서울에서 활동하는 미·일·중·러 초강대국의 스파이 전력을 총점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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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j@donga.com
     
     
     
    ▲ 미국 : 기계정보에 강해

    자유기고가 겸 영어강사로 활동중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제임스 스미스’(가명)의 공식 직함은 외국어학원 영어 강사, 그는 국내 H출판사에서 한국에 관한 책을 출판한 경력도 있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그는 한국의 VIP를 인터뷰하거나 고급 영어를 가르치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그는 한국인 친구들에게는 “미국에서 사업차 한국에 왔다가 한국여자가 마음에 들어서 한 여자와 동거하며 그냥 눌러 앉았다”고 말하고 다닌다. 이렇게 둘러대지만, 그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과거가 있다.

    그는 경기도 오산에 있는 미공군정보부대 장교 출신이다. 그의 비밀직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미국의 사립탐정회사 ‘핑클턴(Pinkelton)’요원. 핑클턴은 현재 서울과 평택에 사무실을 두고 주로 미국측 고객의 주문에 따라 한국내 경제 기밀을 넘기고 있다.

    스미스씨가 근무하는 서울 양재역 외교센터 건너편의 비밀 사무실은 간판이 없다. 사무실은 밖에서 들어가는 문은 하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길쭉한 방 세 개로 나뉘어 있다. 이 방은 모두 서로 연결된다. 이 가운데 두 개는 직원 두 명이 하나씩 쓰고, 나머지 하나는 스파이장비를 보관하는 창고다. 창고에는 파라볼라 안테나가 붙어있는 원거리 도청기, 적외선 망원경, 콘크리트벽을 뚫고 내부를 볼 수 있는 자외선 투시경, 소련제 망원경 등 스파이 장비로 가득 차 있다. 스미스씨와 다른 한 명의 핑클턴 직원은 이 사무실을 공개하지 않고, 사람을 만날 때 주로 외부 호텔을 이용한다.

    180cm 키에 금발 백인인 스미스씨는 양복보다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데, 최대 강점이 여성을 후리는 재주다. 이런 강점을 이용하여 그는 서울의 특급호텔 나이트클럽이나 바, 레스토랑에서 고관대작이나 재벌가의 부인이나 딸, 며느리에게 접근하여 친분을 맺고 주요 정보를 캐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어강사 스미스씨
    미·일·중·러 가운데 서울에 정보 역량을 가장 많이 투입하고 있는 나라는 단연코 미국이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 때문이다. 북한은 핵과 생화학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나라다. 또 각종 테러와 위조지폐, 마약 등 국제 범죄와 연결된 전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한국에는 미 지상군이 주둔하고 있다.

    주한미국대사관이 한국내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단위는 대사관의 공식조직과 ORS(Office of Regional Study:지역조사과), FBIS(해외방송청취반), DIA(미국방정보본부), 501정보부대, OSI (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미공군방첩수사대) 등이다.

    이중 핵심은 ORS다. 이곳은‘CIA 한국지부’로 인원만 수십명에 이른다. ORS와 FBIS는 세종로 미대사관 내에 설치돼 있고, DIA, 501정보부대, OSI는 모두 서울 용산 미8군 영내에 있는 군사정보기관이다. 501정보부대는 주로 특수장비를 동원하여 국내의 주요 통신을 감청한다.

    서울에서 이루어지는 미국측 정보 활동의 기지는 용산 미8군기지다. 우선 각 정보단위의 회합 장소. 용산의 미8군기지 10번 게이트로 들어가서 왼쪽편으로 꺾으면 드래곤힐호텔이 나온다. 호텔 뒤에는 하텔하우스라는 장성전용 레스토랑이 있다. 아늑한 이 레스토랑의 별채에서는 매주 금요일, 남북한의 최고기밀이 오가는 비밀회의가 열린다. 바로 이곳이 서울에 파견된 미국의 여러 정보조직이 한주일 동안 수집한 정보를 공유하고 분석하는 자리다. 이 연석회의를 통해 미국 정보요원들은 두 가지 보고서를 만든다. 한 가지는 미국만 보는 대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캐나다대사관, 영국대사관, 호주대사관과 돌려서 보는 대외용이다.

    이 드래곤힐호텔 옆에는 군청색의 큰 파라볼라 안테나가 걸려 있다. 이 안테나 밑에는 지하벙커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북한군의 교신내용을 감청해서 녹음하고, 이를 영어로 번역한다. 이 벙커에서는 평상시에는 북한 교신 내용을 감청하지만, 한국의 통신을 감청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미국대사관 공식조직뿐이고 미국의 여러 정보조직들은 대부분 막후에서 움직인다. 그 가운데 정치과가 가장 민감한 현안을 다루는데, 현재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정치참사관 밑에 1등서기관 세명이 ▲북한·군사문제 ▲북한·정치문제 ▲한반도 외교·통일문제로 업무를 나누어 맡고 있다. 이 1등서기관 세 명 밑에 각각의 스태프들이 있다. 정치과는 보안 때문에 한국인 직원은 여직원 두 명만 쓰고 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화이트 요원(공개 정보원)과 블랙 요원(비공개 정보원)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협조자를 운영하며 인간정보(Humau Intelligence:HUMINT)를 획득하고 있다. 지난 1월 말부터 주한미국대사관은 부시 미국대통령 방한 준비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여러가지 업무가 많았지만, 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에 대한 한국민들의 여론이었다. 이는 기계정보로도 잡아내지 못한다. 미국대사관이 공식적인 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한국사회의 여론주도층을 접촉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론주도층 가운데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계층은 대학교수 집단이다. 이들을 대사관이 주최하는 파티에 초대해서 의견을 청취하는 것이다.

    미국정부가 운영하는 정보조직과의 연관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미국인의 정보 수집에는 사설 탐정회사 같은 민간라인도 동원되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외국어학원의 영어강사를 동원한 저인망식 여론 수렴과 정보 수집이 한 예이다.

    미국의 정보조직이 정보를 캐기 위해 기를 쓰고 있지만, 한국인이 갖다 바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VIP들이 미군 정보부대의 거점인 용산 미8군 기지 안으로 들어와서 정보를 흘리는 것이다. 용산의 미군부대에 차량을 타고 입장하기 위해서는 ‘데칼(Decal)’이라는 미군부대 차량출입증이 있어야 한다.

    이 차량출입증이 발행된 차량의 주인은 대부분 한국 관계나 재계의 고위 간부들이다. 이들은 중요한 인사를 만날 때, 미군부대에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종종 미8군 영내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이때 이들이 이용하는 레스토랑이 미8군 영내 골프 윈도(Golf Window) 옆에 있는 ‘촘스키 레스토랑’이다. 이 레스토랑을 자주 이용하는 한 정보 관계자는 “이 레스토랑에는 가끔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가들이 식사를 하러 온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공무원들에게 뇌물 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또 한미연합사나 국방부, 육군본부, 해군본부, 공군본부의 고급 장교들도 이곳에 출입한다. 여기서 또 고급 군사정보가 오간다. 중요한 것은 이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모두 미군에 협조하는 정보 끄나풀이라는 사실이다. 이 레스토랑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는 전부 미군에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미국 정보력의 강점은 영상정보·신호정보·측정정보를 총괄한 기계정보다. 미국은 첩보위성과 전세계적인 도감청시스템 에쉴론(echelon)을 통해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웬만한 사항들은 다 잡아내고 있다.

    한반도에서 이를 총괄하는 곳이 바로 경기도 오산의 ‘미 제7공군’ 기지에 있는 복합정보정찰지상센터다. 이곳은 오산 공군기지와 평택시에 있는 험프레이기지를 연결하며 전시 지휘·통제를 담당하는 종합센터다.

    오산 복합정보정찰지상센터는 비밀정보를 수집하고 한미 연합군 사령부가 중대한 지휘와 통제 지시를 내릴 때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이곳은 남북한에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전문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밤이건 낮이건, 궂은 날이건 갠 날이건 24시간 한반도를 감시한다. 한반도 상공에 떠 있는 U-2R 정찰기도 수집한 정보를 이 센터에 보낸다. 말하자면 한반도 전역이 오산 기지의 수집 권역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 센터에서 걸러지는 정보는 한반도 주둔 미공군과 한국 공군, 미 태평양함대가 공유한다.
    신동아 200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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