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4일 토요일

[펌] 이미지 언어시대

이미지 언어시대

 

인류는 자신이 바라보고, 느낀 것을 표현하기 위해 이미지 언어를 활용했다. 원시인들이나 고대인들은 그림을 통해 자신을 드러냈고, 이집트나 마야의 사람들은 그림을 연속시켜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미지 언어는 세계를 바라본 인간의 풍부한 느낌을 담아낸다. 그러나 문자 언어가 패권을 장악한 이후 이미지 언어는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사라졌고, 우리는 오랜 시간동안 문자 언어만이 언어의 전부라 생각했다. 문자언어로 편지를 쓰고, 격문을 붙이고, 성명서를 만들고, 기사를 쓰고, 시를 쓰면서 무언가 부족한 몇 퍼센트쯤을 느껴야했다. 조금 더 감성적일 수 없을까? 더 빠른 속도로 타인의 마음으로 내 마음을 다가가게 할 수 없을까? 그러던 와중에 다가온 디지털 시대는 우리에게 놀라운 선물을 주었다. 디지털 카메라가 일반화되며 문자 이전에 존재하는 이미지로 기억을 저장하기 시작했고, 디지털 이미지 편집기를 통해 저장된 기억을 재배치하게 되었고 그리고 이를 활용한 네트워크 공간의 등장으로 타인과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천 년 동안 문자 언어의 권위에 숨죽여 온 이미지 언어가 마침내 제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디지털 카메라(휴대폰에도 붙어있는)로 찍은 사진을 미니홈피와 블로그에서 제공한 간단한 편집기를 활용해 그림과 그림을 이어 붙여가며 이야기를 생산해 낸다. 초기에는 거리를 걸어가다 발견한 엉뚱한 문구나 이미지들 혹은 과장되게 찍은 사진들이 재가공되어 새로운 해석으로 활용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먼저 죽은 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이미지가 동원되기도 하고, 억울함을 토로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억울한 사연에 달려있는 생전의 밝은 모습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일으킨다.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된 사진편집기를 통해 글과 그림이 자유롭게 엮이게 되어 간단한 자작만화쯤이야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풍부한 디지털 이미지를 편집해 만화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나 만화제작 사이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직접 그림을 그리기는 사람들도 늘어간다. 최근에는 안재환이 ‘루이’라는 강아지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를 미니홈피에 올려 삽시간에 인기 게시물에 등극하기도 했다.

손으로 그린 그림, 디지털 이미지, 새롭게 편집된 디지털 이미지, 동영상 순간 포착 이미지 등 수많은 이미지들이 네트워크에서 자신의 시민권을 획득하며 퍼져나가고 있다. 이미지가 전달하는 풍부한 감성의 영역은 익명의 공간인 네트워크에 인간의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적어도 온라인 공간에서 문자는 예전의 권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살아남기 위해) 이미지와 결합된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로 재탄생 중이다. 천박하게 생각되던 이미지 언어는 어느새 우리 삶에 가까이 다가와 버렸다. 요즘 젊은이들이 신문도 안 읽는다며 걱정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그야말로 시대의 대세가 되었으니 이제는 이미지 언어의 가능성을 고민할 때다.

이미지 언어는 능동적인 언어다. 말하는 이나 듣는 이 모두 적극적으로 이미지 언어의 해석에 개입해야 된다. 말하는 이의 계획된 의도를 듣는 이가 잘 해석해야만 소통이 완전해진다. 이미지 언어는 창조적 언어다. 다른 언어처럼 반복학습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해석이나 적용으로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만사마 보아’처럼 동영상의 프레임을 잡아내 완벽한 대중스타들의 이미지를 새롭게 해석해 내는 방식은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생각할 수 없었던 창조적 기술이다.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낸다. 때는 바야흐로 이미지 언어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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