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3일 목요일

“거래하려면 기술 내놔!” 베낀뒤엔 “우리가 개발”


중소기업 기술탈취, 뻔뻔한 대기업

 

“국내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의 기술에 대해 로열티를 준 사례는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니 그냥 기술을 내놓으라는 겁니다. 기술 개발할 맛이 나겠습니까?”

대기업과 기술분쟁을 겪는 중소기업들은 “중소 벤처기업에서 개발한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거래를 대가로 그냥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게 국내 대기업들의 관행”이라고 말한다. 일부 대기업들은 그렇게 확보한 기술자료를 계열사나 팔이 안으로 굽은 중소기업에 넘겨 개발을 시킨 뒤, 원래 중소기업과의 거래는 끊어버리기까지 한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어도 밉보이면 당장 거래가 끊기기 때문에 속으로만 끙끙 앓고, 겉으로 내색을 못한다”고 말한다.

 

“로열티 받는 중소기업 들어봤나요”

 

지난달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삼성 등 4대 그룹 회장들이 모여 대기업-중소기업 상생협력 대책회의를 연 데 이어 2, 3일에는 정부와 주요 그룹들이 잇달아 후속대책을 논의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 현실은 대기업-중소기업 관계를 ‘상생의 동반자’로 표현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특히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아 일어나는 ‘기술 탈취’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치지 않고는 선진국처럼 유망 중소 벤처기업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모바일콘텐츠 개발업체인 서오텔레콤의 김성수(53) 사장은 지난해부터 엘지텔레콤과 특허분쟁을 벌이고 있다. 김 사장이 이동통신망을 이용한 비상호출 처리장치에 관한 기술을 특허 출원한 것은 2001년이다. 강도를 만나거나 했을 때 이동전화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전화가 걸려 구조요청을 할 수 있는 기술이다. 김 사장은 “2003년 초 엘지텔레콤에서 아이디어가 좋다며 자료 제출를 요청했다”며 “곧 연락을 주겠다고 했는데 끝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1년 뒤인 2004년 초 깜짝 놀랐다고 한다. 광고에 나온 엘지텔레콤의 휴대폰 구조요청 서비스인 ‘알라딘’의 내용이 자신의 특허와 빼닮았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내 특허의 일부를 채택했는데, 특허 침해를 피하려 한 흔적이 역력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난해 4월 엘지를 검찰에 고소했다. 엘지도 특허심판원에 특허무효심판 청구소송을 내며 맞받아쳤다. 엘지텔레콤은 “알라딘은 우리가 독자 개발한 것”이라며 “서오텔레콤의 특허는 일본에 비슷한 것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한다.

김 사장은 올해 1월에 끝난 소송에서 자신의 특허 14개 항목 중에서 6개를 인정받아 특허를 유지했다. 엘지는 이에 불복해 특허법원에 항소했다. 김 사장은 “엘지가 뭘 원하냐고 묻길래 정당한 로열티를 달라고 했더니, 중소기업에는 준 적이 없다고 하더라”며 “대신 특허를 공동 출원해 다른 업체들에게 로열티를 받고, 자신들은 무료로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엘지텔레콤은 “상대가 중소기업이라 좋게 풀려고 했는데 거액의 대가를 요구해 할 수 없이 법으로 처리하기로 했다”고 반박했다.

 

베낀기술 협력사 넘겨 납품가 후려치고
대가 요구땐 우월적 지위 이용 ‘소송전’
말로만 “상생협력” 중기 개발의욕 꺽어

 

휴대전화기 부품업체의 고용 사장이자 개인발명가인 이한상(39)씨도 삼성전자의 부품업체인 알티전자와 특허분쟁 중이다. 이씨가 알티전자로부터 슬라이드 휴대폰의 개폐장치 개발을 의뢰받은 것은 2003년 10월이다. 이씨는 종전의 레일방식 대신 두 개의 축을 따라 움직이는 샤프트 방식의 개폐장치를 개발해,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씨가 양산체제 구축을 위해 최종 개발 내용이 담긴 설계도면과 모형을 알티전자에 넘겨준 직후 둘 사이는 갈라지기 시작했다.

알티전자에서 이씨가 요청한 기술대가에 난색을 보인 것이다. 이씨는 2004년 4월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특허출원했다. 반면, 알티전자는 2004년 6월부터 특허출원된 기술을 채택한 슬라이드 휴대폰 개폐장치를 만들어 삼성전자에 납품했다. 삼성전자도 또다른 두 중소기업에 관련 기술자료를 넘겨줘 납품을 받기 시작했다.

이씨는 “기술은 나 혼자 개발한 것”이라며 “삼성전자와 알티전자, 다른 중소기업들 모두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알티전자는 올해 1월 이씨에게 특허를 내준 것은 부당하다며 특허청에 이의신청을 냈다. 알티전자는 “기술은 공동개발했고, 기술 개발비도 일부 지급했다”며 “특허는 ‘신규성’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이씨가 특허출원 전에 우리에게 설계도면을 넘겼고, 우리는 이를 삼성전자에 줬기 때문에 요건 충족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삼성전자는 “공급처 다변화를 위해 제품 샘플과 간단한 도면을 다른 중소기업에 넘겨준 것은 맞다”고 시인하면서도 “특허분쟁과 무관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씨는 “특허를 침해해 제품을 만든 알티전자는 물론, 그 제품을 구입해 사용한 삼성전자도 공동책임”이라고 반박한다. 또 알티전자의 대주주와 경영진이 삼성 출신이고, 삼성이 기술개발을 의뢰한 점을 들어 실질책임은 삼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씨의 특허분쟁은 앞으로 에스케이와 엘지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있다. 이들이 최근 내놓은 슬라이드식 휴대폰도 자신의 특허를 무단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고 검토에 들어갔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 이익을 내는 것은 기술 탈취 같은 불공정 행위로 성과를 독식하기 때문”이라며 “대기업들이 겉으론 세계 초일류라고 하고, 재벌총수들이 상생협력을 강조하지만, 속은 다른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엘지의 한 임원은 “경영진이 1년 단위로 실적을 평가받는 대기업의 평가시스템에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중소기업과 협력관계를 맺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삼성의 한 임원은 “중소기업에게 일일이 로열티를 주면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며 “미국 퀄컴사에 지급하는 막대한 로열티 부담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영호 산자부 차관보는 “대기업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서 중소기업에 대해 기술 탈취, 납품단가 인하 같은 불공정 행위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단기적으로는 유리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경쟁력 강화를 가로막는다”고 말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최혜정 기자 jskwak@hani.co.kr

 

[출처] 한계레신문

 

대기업들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다고? 조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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