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1일 화요일

인랑[人狼]


 

<< 프롤로그 >>

<공각기동대>제작팀의 또 다른 신화가 시작된다!
재패니메이션의 카리스마    
인랑(人狼) JIN-ROH

사랑을 죽여야 하는 남자...
...사랑을 속여야 하는 여자
슬픈 이들의 잔인한 동화...

사람과 인연을 맺은 짐승의 이야기는
반드시 불행한 결말로 끝나지
짐승에겐 짐승들만의 이야기가 있어..

아무리 상처를 입게 되도
짐승같이 사는 것에 평온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

그 자는 늑대 같은 놈이다...
그 자는 늑대다...
그런 이유로 그 자는 추방되었다!!

  

 

  작품해설 1

▶ 상실의 시대,,,그 숙명적 굴레

패전 후 정부의 과도한 경제정책과 반정부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이 감행되는 가운데

인간으로서 온전한 삶을 누리지 못한 채 가혹하게 희생 당하는 개인의 모습은,

60년대라는 아픈 시대에 좌파 학생운동을 이끈 전공투 세대를 연상시킨다.

일본에게 있어 2차 대전에서의 패전과 이후의 혼란한 사회상,

그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은 장르를 불문하고 수많은 작품들의 소재로

등장하며 벗어날 수 없는 숙명적 굴레로 남아있다.

하루키나 류가 전공투 세대의 후일담을 세련된 화술로 펼쳐놓는다면

오시이는 <인랑>에서 가상의 공간 속에 치밀한 플롯을 심어 놓고는 의표를 찌른다.

 

애니메이션 캡쳐 사진 > 인랑 1CD

  
작품해설 2

▶ 빨간 두건의 동화   그 충격적 메타포

인간의 감성을 거세 당하고 오직 동물적 본능만을 지닌 채,

인간살인병기라는 부조리한 존재의 이유로 생존하는 인간늑대 후세는

그 존재 이유였던 특유의 야수성으로 인해 고립 당하고 사랑하는 여인의 가슴에

총구를 겨눠야 하는 비정한 운명의 사나이다.

또한 고독한 여인 아마미아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평화로운 행복을 갈구하지만

행복이라 믿었던 사람의 손에 의해 처참히 죽어가야 한다.

후세의 케르베로스로서의 숙명은 바로 인간 세상과 격리된 채

야수의 습성만을 갖고 살아가는 빨간 두건의 동화 속 늑대의 모습이며,

믿었던 사랑에 배신 당한 채 죽어가야 하는 아마미아는 마치,

벗어내기 힘든 철갑 옷을 벽에 문질러가며 어머니를 만나기를 소원하지만

결국 야수의 사냥감이 되어버리는 여자아이의 모습과 같다.

그림형제의 동화를 원용하여 여주인공 아마미아의 나레이션으로 전달되는

빨간 두건이라는 모티브는, 이들의 안타까운 운명을 효과적으로 암시하며

충격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작품해설 3

▶ 극대화된 심리적 리얼리티가 빚어낸 처연한 세레나데

<인랑>은 시각적인 리얼리티를 추구한 오시이의 다른 작품과 달리

정교한 플롯과 사색적인 대사, 살아 숨쉬는 캐릭터들의 절제된 동작을 통해

심리적 리얼리티를 극대화하며, 실사영화가 미처 이르지 못한 리얼리즘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본연의 삶을 저당 잡히고 극한의 외로움과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속에 시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던져진 고독한 연인들.

감정의 범람을 일체 불허한 채,

일생을 통틀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아온 사랑을 속이고 죽여야 하는 아픈 영혼들의 심정을 정교하게 표현함으로써,

가혹하도록 어긋난 운명의 어두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시간있으시면 읽어보세요.


성인들만 이해할 수 있는 과거의 진혼곡

 

<< 김의찬 / 애니메이션 평론가 >>

 

일본 애니메이션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모노노케 공주> 등을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지만 후배 감독들에게 별반 관심이 없다는 인상을 준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야키는 실사, 애니메이션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는데

최근엔 10대층의 유행을 부지런히 뒤좇고 있는 듯하다.

한편,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자랑하는 작가긴 하자만 작업속도가 무척 굼뜨다.

 

수많은 TV용 애니메이션과 비디오 애니메이션, 그리고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고 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만의 개성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인랑>은 일본보다 해외에서 먼저 소개되었고,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상찬을끌어냈다.

프랑스 <르몽드>지를 비롯한 유럽의 언론들은

<인랑>에 대해 작품을 보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오래된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힘을 지닌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러한 격찬은 결코 과하지 않다.

 

<인랑>은 오시이 마모루가 원작과 시나리오를 겸한 애니메이션.

절반은 그의 작품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인랑>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현주소를 구체적으로 가리키고 있다.

애니메이션이 실사영화의 정확도를 흉내내고,

이제는 실사의 표현영역을 넘어서는 경지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그만큼 <인랑>의 디테일은 뛰어나다.

<인랑> 캐릭터들의 얼굴엔 거의 표정이 담겨있지 않은데

만화적인 과장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다는 의미다.

 

화면 구성은 실사영화 카메라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른다.

클로우즈 업, 팬기법, 그리고 시점샷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이미 영화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었던

기법이 고스란히 애니메이션으로 분야를 옮겨 사용되고 있다.

 

사실감이라는 관점에서 <인랑>을 평가하건대,

이 작품은 실사영화가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영역까지 탐낸다.

좋은 예가 총격전 장면이다. 지하의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자행되는 총격전에서 총탄이 물살을 가르고,

상대의 몸 구석구석 파고드는 끔찍한 장면을

<인랑>은 눈 한번 감지 않고 극사실적인 기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정제된 영상과 차분하게 가라앉은 색조면에서도 이 작품은 일관성을 유지한다.

다카하타 이사오의 <추억은 방울방울>에서 볼 수 있었던

극단적 리얼리티가 <인랑>에 이르러 활짝 만개한 느낌을 남긴다.

 

외양면에서 <인랑>은 할리우드 영화 <로보캅>을 연상시킨다.

가상의 역사를 배경으로 케르베로스(오시이 마모루는 같은 제목의 실사영화를 만든 적 있다)라는

특공대가 조직되고, 이 특공대의 후세 카즈키라는 남자는 우연히 한 소녀의 죽음을 목격한다.

아마미아 케이라는 여성을 만난 후세는 그녀에게 연정을 느끼게 된다.

여자가 남자에게 어디론가 둘이 도망치자고 외친다.

아마미아 케이는 정부의 통치력을 교란하는 테러리스트인 것.

결국 애절한 연애 이야기인가? 그렇진 않다.

요약하자면, <인랑>의 주제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다.

오시이 마모루의 심오한 애니메이션 작품인 <공각기동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랑>에서 후세는 자신의 행동으로 심한 죄의식을 느끼고 아마미아 케이를 통해

일말의 구원을 발견하려고 한다.

 

하지만 후반으로 향하면서 작품은 숨겨진 비극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붉은 두건>이라는 동화가 인용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한 소녀와 굶주린 늑대간의 묻고 답하는 과정을 다룬 이 동화는 <인랑>에서 타인을 향한 믿음이

점차 배신으로 향하는, 작품의 축을 이루는 심리적 드라마를 해설한다.

엄마, 왜 눈이 커졌나요? 왜 이빨이 날카로워졌어요?라며 뇌까리는 소녀의 대사는,

작품 후반부의 무참한 살인극을 암시하는 키워드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한가지 의문이 있다. <인랑>은 소화(昭和) 30년대를 작품 배경으로 삼는다.

실제로 애니메이션을 보노라면 일본 현대사의 1960년대 후반을 연상케하는 사건들이 이어진다.

반정부투쟁과 무력진압, 그리고 테러 집단의 행각은 영락없이 1960년대,

그리고 1970년대 어둡고 음습한 일본 사회의 풍경과 일치하고 있다.

왜 이 시절을 굳이 들춰낸 것일까? 의도적인 것인가?

시나리오를 쓴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성향을 살펴보면 이해될 법하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원래 학생운동권 출신.

애니메이션업계에 발을 딛은 것도

경쟁사회로부터 도태되어 다른 곳에 갈 수 없었던 탓으로 돌리는 인물이다.

다소 과장된 언급이라 하더라도 그의 작품을 설명하기엔 더 없이 좋은 지침이 되는 말이다.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엔 비판적인 메시지가 작품 저변에 깔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좋은 사례가 <패트레이버> 시리즈.

대도시를 배회하는 인간 군상의 소외감을 짙게 깔고 있는 <패트레이버> 시리즈는

비록 메카닉 로봇이 등장하긴 하지만 화끈한 액션보다

일본 현실에 대한 고발의 목소리에 무게중심이 놓인다.

 

오키우라 히로유키는 <인랑>이 그의 감독 데뷔작이다.

주로 원화와 작화 담당을 맡고 있다가 감독으로 신고식을 치르게 된 셈이다.

그에게 1960년대는 직접 경험하지 못한 시대이지만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은

오시이 마모루의 시나리오를 거의 완벽에 가까울만큼 소화해냈다. 과거의 일본을 재현해낸 것이다.

<인랑>에서 오시이 마모루는 의도적으로 시간대를 슬쩍 비틀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작품 배경은 소화 40년대까지 걸쳐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일본 사회의 모습을 가상의 시공간 속에 녹여내는 것이다.

작품에 노스탤지어의 정서가 은은하게 흐르고 있는 것도 필연적인 귀결이다.

오시이 마모루는 <인랑>에서 지나온 시절이 결코 아름답지 못했으며

아직 그에 대해 할말이 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바로 후세 카즈키와 아마미아 케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말이다.

작품에서 흘러나오는 대사들,

 

 

.

세상엔 동물이 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넌 아직 인간인가?

.

 

그는 사람인척 하는 동물이다라는 식의 대사들은 기실 <인랑>의 핵심이

가상역사를 통해 과거를 들여다보고, 인간의 이중적 본성에 대한 고찰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 접근방식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최근 한국영화 <박하사탕>이 현재로부터 출발해

시간을 거슬러 오르면서 1980년대의 시대적 아픔과 개인의 양심 문제를 고발한 바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선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성인관객을 위한, 그러니까 특정 관객을 위해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라는 의미다.

가와지리 요시야키 감독 작품처럼 잔혹하고 폭력적인 애니메이션이

흔히 성인용 애니메이션의 범주에 포함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의 <인랑> 역시

성인 애니메이션으로 분류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인랑>은 진짜 성인들만 이해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이라서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기서 남녀는 아쉬운 입맞춤 한번 정도로 애정을 표한다.

<인랑>엔 선정성과 폭력성을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들어있다.

바로 과거에 대한 통찰이다.

 

학생운동과 반정부투쟁으로 얼룩진 일본의 현대사, 그것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인랑>은

어린이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정교한 드라마로 과거를 반추하고 당시 젊은세대들이 느꼈던 시대에 대한 배신과 좌절감을 그려내고 있다.

어느 남녀의 만남과 필연적인 헤어짐을 통해서 말이다.

감독 자신의 설명을 따르면 <인랑>은 1960년대라는 시대성을 빌리고 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남자와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여자의 사랑이야기다.

 

<인랑>에서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고 믿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어쩌면 혹독한 시대 탓일 수도 있다.

혹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기엔 인간 본성이 너무나 악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랑>은 흘러가버린 아픈 시간을 기억하고, 되새김질하는 세대를 위한 진혼곡이다.

 

 

<< 수상경력 >>

마이니찌영화콩쿠르 애니메이션상 수상 (99)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비평가상 수상 (99)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부문 초청작 (99)

런던영화제 초청작 (99)

포르투갈국제영화제 최우수애니메이션상 수상, 심사위원 특별대상 수상 (99)

캐나다몬트리올판타지아 아시아영화부문 2위 (99)

부르셀국자환타지영화제 초청작 (99)

싱가폴국제영화제 초청작 (99)

앙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초청작 (99)

스톡홀름 국제영화제 초청작 (99)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초청작 (99)

부산 국제 판타스틱 애니메이션 영화제 특별상영 (99)

프랑스 로드쇼 공개 (99)

 

 

Grace [Jinroh - main thrme] Omega by 미조구치 하지메


< 출처 : 이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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