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랏빛 숲에 내리는 비 -
숲에서 얼핏 사랑을 본 것 같았다.
나는 단단한 땅을 떠나, 이미 사라진 사랑의 그림자를 좇아
흔들리는 숲으로 들어섰다.
푸른 침묵이 나를 둘러싸고
이제라도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그대를 따라가지 않았어야 했다.
이 삶을 사랑에 종속시키지 않았어야 했다.
그랬다, 나는 그대에게 내어줄 것이 없었다.
은밀한 약속들, 영원의 무게로 닥쳐오는 미래,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 속에서 나는 전부를 잃었다.
믿을 수 있는가, 그대,
나는 차고 푸른 빗방울로 산산이 흩어지고
숲은 더욱 깊어진다.
한 번도 잡을 수 없었던 사랑을 숨긴 채
무섭도록 아름다워진다.
황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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