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 SF
등급 : 18세 이상
상영시간 : 117분
제작년도 : 1982년
국가 : 미국
감독 : 리들리 스콧
출연 : 해리슨 포드(데커드), 룻거 하우어(로이), 숀 영(레이첼), 다릴 한나(프리스), 윌리엄 샌더슨(J.F. 세바스찬), 조 터켈, 에드워드 제임스 올모스, 브라이언 제임스, 조안나 캐시디
원작 : 필립 K. 딕
각본 : 햄톤 팬셔, 롤랜드 키비, 데이빗 웹 피플즈
제작 : 마이클 딜리
촬영 : 조던 S. 크로넨웨스
음악 : 반젤리스
미술 : 데이빗 L. 스나이더, 로렌스 G. 파울
[제작노트]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영화를 완성한 지 10년이 지난 92년에 감독판(Blade Runner Directer's Cut)을 완성할 당시 최근 10년간의 미국 도시의 모습과 미국인의 생활이 이 영화 속의 묘사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닮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인간에 대한 성찰과 문명의 미래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요약정보]
리들리 스콧이 감독한 가장 유명한 SF 컬트영화. 서기 2019년의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전직 경찰인 주인공이 탈출한 인조인간들을 추적하여 하나씩 처치한다는 줄거리이다. 어둡고 음울한 도시와 자신의 정체성을 집착하는 등장인물 등, 현대 문명사회 특유의 비관적 삽화들을 인상적으로 묘사하여 평론가들로부터 '포스트모던'텍스트로 즐겨 인용되었다. 뤽베송 감독의 '제5원소'등 향후의 SF컬트영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시놉시스]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그 모든 순간들은 이제 시간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마치 빗물 속의 눈물처럼. 죽을 때가 되었다.. - 로이 배티 서기 2019년 LA. 미래의 LA는 항상 산성비가 내리고 스모그가 짙게 깔려 있는 음울한 도시다. 최첨단의 과학기술과 그로 인한 환경오염은 도시 전체를 회색빛으로 물들여 놓았다. 높이 솟은 빌딩위의 거대한 광고화면은 미래 자본주의 최후의 승자일 수 있는 일본의 상업광고와 코카콜라 광고가 위압적으로 도시를 내려다본다.
도시의 간판과 네온싸인은 대부분 일본어로 새겨져 있으며 사람들은 젓가락으로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일식 우동을 먹는다. 거대한 건물들이 불빛을 반짝이고 자동차들이 LA 상공을 날아다닌다. 전광판에서는 또한 끊임없이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가라는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경찰들은 최첨단 장비로 통치를 유지하는 실정이며 또한 유전공학의 발달로 인조인간인 안드로이드를 제조하기에 이르는데, 타이렐사는 여러 인간의 힘과 지식을 겸비한 최고 성능의 안드로이드 리플리컨트를 만들어 우주 식민지 개척 등에 내보낸다. 그런데 이들이 우주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리플리컨트는 지구출입이 금지된다.
하지만 그들은 외견상 인간과 구별이 불가능하여 이것이 문제 발생의 원인이 된다. 안드로이드는 지구에서 사는 것이 불법으로 명시되어 있으나, 그들은 인간과 동일한 외형을 이용해 인간 행세를 하며 지구에서 살아가려 하는 것. 네명의 리플리컨트가 지구에 잠입하고 경찰은 이를 막기 위해 은퇴한 리플리컨트 사살경찰인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를 호출한다.
데커드는 리플리컨트의 리더인 로이를 비롯한 이들을 찾아 나서고 그 과정에서 타이렐사에서 일하는 레이첼이라는 아름다운 여성을 만난다. 데커드는 그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사살을 하게 되는데..
[작품해설]
<블레이드 러너>는 숱한 철학적 문제의식으로 뒤덮인 SF 영화의 걸작. 일단 인간이 만든 첨단 문명과 과학의 한계, 미래 세계의 디스토피아를 황량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 그로 인한 환경오염과 모순적인 사회 구조가 암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기억'과 정체성의 문제도 진지하게 탐색한다. 특히 '기억'의 이식이란 테마는 많은 SF 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가령, <공각기동대>)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인간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레플리칸트(복제인간)을 만든다는 창조의 영역을 앞세우며, 여전히 인간들도 해결하지 못한 불멸의 꿈을 레플리칸트의 입장에서 절묘하게 다루고 있다. 확실히 <터미네이터>와 <에이리언>류의 SF와는 구별되는 리들리 스코트의 독특한 작품.
배우로는 단연 룻거 하우어의 레플리칸트 로이 배티 연기가 가장 돋보이는데, 빗속에서 독백하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그는 처음에는 거칠고 위험해 보이지만, 자신의 연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삶의 강렬한 애착을 표현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적을 구한 뒤 용서하고 깨끗한 최후를 맞이하는 태도는 인간을 뛰어넘고 있어 너무나 인상적이다. 그의 유명한 마지막 대사는 다음과 같다.
"I've seen things you people wouldn't believe.
Attack ships on fire off the shoulder of Orion.
I watched C-beams glitter in the dark near the Tannhauser gate.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오리온 좌의 어깨 너머로 적군의 우주선이 불타는 것을 보았고,
어두운 탄하우저의 입구에서 C 광이 반짝이는 것도 보았다.
그 모든 순간들은 이제 시간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마치 빗물 속의 눈물처럼. 죽을 때가 되었다.
그리고 데커드 형사로 나온 해리슨 포드는 여자에게 뒤에서 총을 쏠 정도로 비굴하면서도 임무를 수행하는 연기가 뛰어나다.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친절한 나레이션으로 설명이 가해져 맥이 빠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 개봉판은 10년 후에 나온 감독편집판의 깔끔한 편집을 따라가지 못한다. 또한 마지막에 숀 영과 함께 북쪽으로 무사히 도망친다는 해피엔딩도 억지에 가깝다. 어쨌든 그 장면의 헬기씬은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의 첫 장면에서 썼던 필름을 차용했다고 해서 흥미롭다. 또한 데커드에게는 '유니콘'이 나온 꿈을 간파당하는 복선을 설정돼 있어서 블레이드 러너인 데커드 형사 역시 레플리칸트가 아니냐는 흥미로운 논란을 낳았는데, 아쉽게도 이 개봉판에선 그 꿈장면이 삭제돼 있다.
원작은 SF 작가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인데, 많은 부분을 감독 자신의 영감으로 채웠고, 특히 '레플리칸트'라는 명명은 새롭게 창작했다. 의도적으로 삽입된 정교한 기계와 포스트모던한 건축 세트는 유능한 시각 디자이너 시드 메드의 공이 매우 크다. 또한 그리스 출신의 반젤리스가 담당한 영화음악은 일렉트릭 테크노 음악의 음울하고 묘한 분위기로 영화의 완성도에 크게 기여한 걸작 명반으로 손꼽힌다. 82년 당시 개봉시에는 지나치게 암울한 미래에의 비전을 내세웠다는 이유로 낙관적인 무드의 SF영화 에 참패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광적인 팬들이 끊임없이 재평가를 시도했고, 급기야 지금은 이 영화를 빼놓고는 SF 영화를 이야기할 수 없는 위치에까지 왔다. 하지만 국내 비디오 출시될 때는 무분별한 장삿속 때문에 123분짜리 원작이 86분으로 단축되어 있다. 그런데 꼭 십년만인 1992년 감독의 본래 의도대로 재편집한(DIRECTOR'S CUT) 비디오가 <서기 2019년 블레이드 러너>로 새로 출시되어 이 영화의 절대적인 팬들을 열광시켰다.
* 옥에 티: 21세기의 교통수단인 스피너 Spinner가 수직 이륙할 때, 끌어올리는 와이어 선이 보인다는 것.
[수상내역]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1983년 더글라스 트럼벌 리차드 유리시치 데이빗 드라이어 시각효과상 노미네이트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1983년 로렌스 g. 폴 데이빗 l. 스나이더 미술상 노미네이트
골든 글로브 시상식 1983년 반젤리스 음악상 노미네이트
‘사이버 영화의 전형을 제시한 고전 명작’
‘인조인간들의 반란을 통해 생명 공학 발달의 후유증을 고발한 작품’
공개 당시 영화 관계자들로부터 이러한 평판을 받았던 <블레이드 러너>는 마이클 키튼 주연의 <멀티 플러시티>처럼 ‘인간 복제가 빚어낸 반(反) 유토피아적 상황을 묘사한 작품’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또한 일부 문명 비평가들은 ‘과학이라는 학문이 갖고 있는 숨겨져 있는 비극을 예리하게 파헤쳤다’는 소감문을 덧붙였다. 원작은 필립 K.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羊)을 꿈꾸는가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이다.
82년 개봉 당시 <ET>와 흥행 대결을 벌였지만 다소 난해한 내용으로 인해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열혈 영화 애호가들로 부터는 격찬을 받아 ‘컬트영화 명단에 등극됐고’ 이런 성원을 등에 업고 93년에는 감독 편집판이 재공개됐다.
특히 99년에는 대학 입시 문제중 논술문 예제문으로 등장해 국내에서 다시 한번 영화가 재조명 되는 행운을 누렸다. 2019년 11월. 세계 최대 도시인 LA는 하늘 가득히 덥힌 검은 스모그와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산성비와 방사능 낙진 때문에 천사의 도시가 아닌 악귀(惡鬼)들이 거주하고 있는 저주 받은 공간 같은 모습을 풍기고 있었다.
여기에 도시 거리는 일어와 한자 간판이 즐비한 국적 불명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동시에 고딕 양식을 표방하고 있는 건물과 마천루의 피라미드는 인간성이 상실된 디스토피아를 떠올려 주고 있었다.
이어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지구는 사람이 살수 없는 황폐한 땅으로 변모했으며 사람들은 우주 행성을 향해 정처 없는 이민을 떠나고 있는 등 지구는 버림받은 인간들만이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흉물스런 존재로 남아 있었다.
이러한 때 인조인간은 우주 개척의 필요성을 절감한 인간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수단이 된다.
‘인간과 같은 모습을 가진 노예’.이들의 수명은 단 4년으로 연륜이 다하면 언제든지 새로운 모델로 대체할 수 있다.하지만 이들이 사랑이나 고뇌를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 후에 인간과의 갈등을 야기(惹起) 시키는 요인이 된다.
마침내 인조인간들은 인간에 대한 반란을 도모해 인간의 영역을 넘보는 순간 그들은 창조주를 배신하고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을려는 불한당 취급을 받게 된다.
결국 이들 인조인간들은 고향인 지구(에덴동산)로부터 영원히 추방당하는 형벌을 받게 돼 우주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는 유배자 신세로 전락한다.
만일 이들 인조인간들이 지구로 다시 귀환을 시도하다 발각되면 죽음을 뜻하는 ‘은퇴식’을 가져야 했다.
이런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레온(전투용), 로이(전투용), 조라(암살용), 프리스(전투용 및 레저용)등 4명의 남여 인조인간들은 우주선을 탈취해 승무원들을 몰살 시키고 지구로 탈출한다.
이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를 사시(社是)로 하고 있는 인조인간 제조회사 타이렐의 최신형 모델인 ‘넥서스 6’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된 안드로이드(인조인간)였다.
이들이 지구로 잠입을 하겠다는 반란을 일으킨 가장 큰 이유는 수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 4년이란 시한적인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인조인간들은 우선 자신들의 창조주이자 아버지인 타이렐을 만나 자신들의 고충을 밝히려는 작전을 꾸민다. 이러한 때 반란을 일으킨 인조인간들을 ‘은퇴’ 시키기 위해 특수 경찰인 ‘블레이드 러너’가 출동한다.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해리슨 포드)의 추격을 받고 레온과 조라는 은퇴(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로이(루트거 하우어)는 프리스와 함께 타이렐사의 유전자 설계사 세바스찬을 앞세워 타이렐을 만난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보다 우월한 지적 신체적 능력을 갖고 있지만 인조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가혹한 환경을 갖고 있는 외계 혹성으로 보내졌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겠지.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를 찾아온 거야. 오래 살게 해달라고!’라는 하소연을 털어 놓는다.
하지만 타이렐은 ‘유전자 조합을 변경할 수는 없다. 태어날 때 이미 만들어진 것이다’라면서 이들이 요구한 수명 연장을 위한 유전자 변경을 거부한다. 그리고 ‘너는 돌아온 탕아(湯兒)다. 주어진 시간은 열심히 살아라.’는 조물주같은 명령을 내린다.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로이는 타이렐의 두 눈을 파내 죽여 버린다. 죽음을 맞는 순간 로이는 ‘공포 속에서 사는 기분이 어떤 줄 아는가?.그것은 바로 노예의 심정이지’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긴다.
또 다른 인조인간 레이첼(숀 영)은 어린 시절의 추억까지 입력되어 있어 자신을 인간으로 인식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여기에 유전자 설계사인 세바스찬은 25살 때 이미 조로해 늙어버린 방사능병 희생자다.
세바스찬은 ‘인공 장기 마켓’이 등장할 정도로 생명 공학의 위력은 대단하게 발달돼 있었지만 죽음과 노화를 막을 수는 없다는 인류의 한계성을 암시 시켜 주고 있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이외 라스트 장면에서 복제 인간(룻트거 하우어)은 자신을 처단 하려고 했던 블레이드 러너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의미 모를 웃음을 날리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이러한 결말은 블레이드 러너로 하여금 ‘인간처럼 복수를 하지 않는 복제 인간 그리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감정을 갖고 있는 복제 인간의 모습을 목격하도록 해 그가 이후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데 상당한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경험’을 갖도록 한다.
이처럼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 복제’ ‘생명 창조’라는 신의 영역까지 건드릴 정도로 발달이 된 생명 공학이 ‘식량난 해결, 불치병 치료’ 등 긍정적인 역할도 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유전자 변형으로 인한 생물계의 질서 파괴로 인한 예상치 못한 후유증’은 고스란히 인류가 숙명처럼 부담해야할 새로운 숙제라는 것을 떠올려 주고 있다.
연출자 리들리 스코트는 이 영화를 발표한 직후 미국 영화 전문지인 프리미어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위험 사회’라는 역저에서 주창했던 말을 인용해 ‘사회적 합리성 없는 과학적 합리성은 공허하고, 과학적 합리성 없는 사회적 합리성은 맹목적이다’는 철학적인 연출론을 공개했다.
Blade Runner
1. SF영화의 묘미
영화는 현실을 재현하는 수단이자 불가능한 일을 사실처럼 보여주는 눈속임이기도 하다. 특히, SF 영화는 '사실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눈속임'을 벌이기 위해 상상력에서 모든 것을 시작한다. SF는 과학기술이 궁극적으로 문명의 진보를 보장하리라는 전망, 즉 유토피아적 전망과 묵시록적 예측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 두 가지는 흔히 같은 영화에 함께 나타나기 마련이다. SF가 특수효과에 의한 '구경거리'라는 측면과 묵시록적 예측의 이러한 두 갈래 긴장은 서로 관련을 맺으며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이중성에 따라 SF는 단일 장르에 고착하지 않고 다른 장르와의 끊임없는 결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같은 SF영화 중에서 필자가 <블레이드 러너〉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두 가지의 특징에서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지만, 이 영화 역시 과학과 영화의 단순한 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SF라는 자칫 허무맹랑한 틀 안에서 철학적 접근을 할 수 있게 한 작품이었다. 앞으로 〈블레이드 러너〉가 보여주는 외재적 모습과 현대 인간 모습을 나타내는 내재적 측면을 분석해 볼 것이다. 외재적 측면에서 살펴볼 것은 영화의 줄거리와 미래의 시각화 방법,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으로 본 영화의 특징이며, 내재적 측면에서는 영화 속의 눈동자와 인간의 관계, 유니콘의 상징의미, 페미니즘 시각의 적용, 〈블레이드 러너〉가 말하고자 하는 현대 인간의 모습이 포함된다.
Ⅱ. 〈블레이드 러너〉의 표상
A. 2019년. 로스앤젤레스
2019년에도 어떻게 세상이 변할지 지금으로서는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미래가 필자의 눈앞에서 또 하나의 눈으로 다가왔다. 법을 어기는 복제 인간을 제거하는 특수 경찰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는 타이렐 회사에서 제조한 복제 인간 넥서스 네 명을 제거하라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들은 명령을 어기고 우주선을 탈취해 지구로 돌아왔지만, 아무도 그들이 외 지구로 돌아왔는지는 모른다. 이들 네 명은 인간과 똑같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수명이 4년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들은 어떻게 복제 인간을 구분할까? 그것은 눈동자 반응을 보면서 가능해 진다. 한편, 데커드의 검사 대상이 된 타이렐 회사의 신제품 레이첼은 자신이 복제 인간인지도 모르고 있다. 과거의 기억까지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수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복제 인간들은 자신들을 개발해 낸 타이렐을 찾지만 수명을 연장시킬 방법을 찾지 못한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레이첼과 사랑에 빠진 데커드는 조라와 프리스를 제거하고, 로이는 자신에게 쫓기다 옥상난간에 매달린 데커드를 구해줌으로써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인 모습으로 최후를 맞는다. 데커드는 집으로 돌아와 레이첼을 데리고 떠난다. 복도에서 데커드는 종이로 접은 유니콘을 발견하고 개트가 왔음을 깨닫고 승강기를 탄다. 이러한 줄거리를 가진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살펴보도록 하자.
B. 묵시록적 미래 사회
2019년의 로스앤젤레스는 온갖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잡종의 도시로 그려지고 있다. 그 곳은 조명과 세트의 미술로 '악몽'의 도시로 변해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 구회영(1997).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 세가지 것들>(도서출판 한울), 168쪽 ) 암울하게 느껴지며 그 속의 건물 사이로 흐르는 빛이 삭막하기까지 한 〈블레이드 러너〉의 도시 장면에서 건물은 모두 모형이며, 불이 켜진 창들은 모두 광섬유를 꽂아 놓은 것이라고 말한다.
C. 해체로서의 혼합
현대 영화에서는 장르의 스타일을 쉽게 감시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관객은 이야기의 흐름만 언뜻 알뿐이지, 카메라 등이 이끌어 가는 영화의 서술방법은 알아채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를 포스트 모더니즘과 관련시키면 탈 장르로서의 같은 장르영화가 분리되어진다. 공통된 특성으로 패스티쉬, 패러디, 자기반영성, 탈장르성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특징이 하나라도 보이면, 포스트 모더니스트 영화라고 불린다. 이것은 탈 장르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므로 예술 영역 전방에 걸친 논의가 아니라 한 영역에서만 국한하여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여기서는〈블레이드 러너〉에서 특히 잘 나타나는 요소들만을 알아보도록 한다. 블레이드 러너〉는 단순한 SF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SF영화 〈스타워즈〉처럼 복합 장르에 속한다. 형사 드릴러 양식, 필름 누아르적 내용이 전반적인 축을 이루며 이 영화를 이끌고 있다. 또한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면 아버지와 가족이 지니는 의미를 절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며, 인간과 복제 인간의 대립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인 만큼 휴머니즘에 대한 시각도 이 영화에서는 얼마든지 통한다. 이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화 적용은 SF영화의 전형적 특성이 해체되고 또 그것의 혼합이 이루어지는 긴밀한 관계를 뜻한다.
Ⅲ. 복제 인간의 인간화
A. 넌 진짜? 가짜?
블레이드 러너가 복제 인간을 진짜 인간과 구별하는 장면에서 이 영화는 시작되는데 눈에 초점을 맞춘 채 그 변화를 감시하는 테스터 '보이크 켐프'가 인상적이었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생굴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개고기 요리가 나온다면?" 인간은 이런 황당한 질문을 받으면 감정적 파동을 일으켜 안구 근육의 긴장으로 인해 테스터의 모니터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냉담한 복제 인간은 감정적 반응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구별되는 것이다. 여기서 눈동자는 인간의 특수성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이런 의미는 타이렐이 큰 안경을 껴서 눈이 커 보이는 것과 일치한다. 하지만 레이첼처럼 추억이 이식되어 있는 복제 인간은 경험에 의한 감정 반음이 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질문을 통해서만이 가짜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눈동자는 복제 인간의 기억을 저장해 가는 도구이며 세계를 인식하는 수단이다. 최후의 넥서스 로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그는 오리온 전투에도 참가했고, 탄호이저 기지에서 빛으로 물든 바다도 보았다고 한다.
앞에 것과는 달리 부정적 의미를 지니는 행위에서 눈동자의 의미를 살펴보자. 로이는 타이렐의 눈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빼낸다. 이것은 복제 인간이 자신을 만든 인간에 대한 복수와 인간 질서에 대한 저항을 느끼게 해 준다. 타이렐을 죽은 복제 인간은 인간의 질서에 도전한 복제 인간을 표상하기도 한다.
B. 날아라 유니콘
<블레이드 러너〉에서 유일하게 밝고 아름다운 이미지의 화면이 나오는데 거기서 유니콘이 등장한다. 그럼, 유니콘은 무엇을 의미할까? 유니콘은 예로부터 순결성을 상징했다. 초반에 술에 취한 데커드는 피아노를 치다가 잠이 들어 꿈을 꾸는데 이때 유니콘이 나온다. 그것은 데커드가 레이첼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그로 안하여 그녀는 (데커드에게) 인간이 되었음을 암시해 준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는 이와 다른 의미를 지닌다. 개프가 접은 종이 유니콘은 데커드를 조롱하기 위한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유니콘은 처녀만이 잡을 수 있고, 멸종한 동물이라고 한다. 개프는 레이첼 또한 수명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유니콘과 같다고 본 듯하다. 하지만 개프는 종이 유니콘을 통해 데커드에게 말하고 있다. 레이첼과 도망칠 수는 있어도 그녀가 살아남지는 못한다고 말이다. 여기서 개프의 의도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르게 인식될 수도 있을 것이다.
C. 페미니즘의 시각을 가지고
영화의 갈등 구조가 고조된 시점에서 로이는 타이렐을 찾아간다. 이때 그의 호칭에 주목해 보자.
" 더 살게 해 주세요, 아버지."
아버지의 거대한 힘에 겁먹은 아이처럼 말하는 로이의 대사에는 어색함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움이 발견된다. 아버지는 전통적 힘의 상징이며, 타이렐 역시 복제 인가들을 창조하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의 자리가 절대적이니 만큼 로이는 생명을 연장시켜 주지 못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는 행동한다. 그의 아버지, 타이렐을 죽임으로써 절대적 힘 존재의 부조리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남성의 상실로 여성의 상대적 가치가 높아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에는 여성 힘으로 묘사되는 이가 없다 하더라도 이러한 해석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또한 복제 인간들에게는 가족이 없다. 그래서 그들의 사회화 과정은 같은 출신의 그들끼리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가족의 실종 역시 가족 테두리 속에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 여성을 그 곳으로부터 탈피시키고 있다. 아버지와 가족의 의미는 전통적인 페미니스트의 1차 인격화 대상의 법주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이 복제 인간의 사회에서만 의미를 지닐까? 안타깝게도 이 물음에 대비되는 설정이 있다. 그것은 레이첼의 인간화이다. 데커드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레이첼이 동료 복제 인간을 총으로 쏘는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그녀는 지배적 남성에게 기꺼이 복종하는 수동적인 여성으로 총을 쥔 채 서 있었다. 이런 상황들이야말로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의문을 가시지 않게 해 주었다.
D. 아니! 자본주의의 모순까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측면이 이 영화에 나타나고 있다. 첫째로 복제 인간을 만들어 그들을 노예화하는 타이렐 회사는 인간이 인간을 만드는 최고 권력을 가진 회사로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극소수에 의해 독점되는 자본주의의 권력 사회를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타락한 도시임을 느끼게 해 주는 안개 속에는 흐느적거리는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또한, 오염된 지구로부터 다른 행성으로 이주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자본주의는 권력을 유지함으로써 근원적 인간 사회가 해체되는 공간 가운데에 영속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데커드의 인간성 상실에 관한 문제이다. 데커드는 블레이드 러너 - 복제 인간을 처치하는 특수 경찰 - 이다. 그는 약속한 넥서스를 찾아내어 무자비하게 그들을 죽인다. " 무기도 없는 상대를 죽여? 아주 잔인하군! 여자만 죽이냐?" 폐쇄된 방세서 로이의 이러한 외침은 섬뜩하게 들리며, 이것은 데커드의 인간성을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데커드는 이제 로이로부터 쫓김을 당하고 조롱 받는다. 인간의 중심으로 보이던 데커드의 처지는 우리에게 가지 확장될 수도 있다. 끝내 옥상 난간에 매달리게 된 데커드는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된다. 이때 실망스러운 것은 데커드의 눈이 인간성의 자존심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들의 손으로 만든 복제 인간의 구원의 손을 기다리는 인간으로 전락했다. 데커드는 로이에 의해 구조되지만 그가 가진 인간성은 저 아래 아득히 먼 곳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인간을 구해주는 '복제 인간'과 자신이 죽이려고 했던 복제 인간에 의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인간 사이에는 극명한 대립을 보여준다. 또한 인간 존재가치의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는 장면이었다. 영화 마지막 레이첼과 떠나는 데커드의 모습이 인간의 모습이 되어 돌아오려면 얼마나 많은 인간 스스로의 반성이 필요할 지를 생각하게 한다.
Ⅳ. 유토피아적 2019년을 꿈꾸며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블레이드 러너〉에 나타난 표상과 그 속에 담겨진 의미들은 간단한 해석으로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큰 가치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눈동자는 인간과 복제 인간의 벽을 확실히 구별지을 수 있는 매체이다. 하지만 이에는 조건이 따른다. 그것은 그들 복제 인간들에게 기억이 인식되면 안된다는 것이다. 눈동자는 인간의 가치를 투영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두 번 나오는 유니콘은 레이첼의 인간화를 나타내기도 하며 데커드의 인간적 조롱을 나타내기도 하는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바라본 이 영화는 남성의 상징과 틀이 무너짐에 따라 상대적인 여성의 성장을 기대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또 〈블레이드 러너〉에서 데커드와 로이로 대표되는 인간과 복제 인간의 대립을 통해, 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생각하게끔 한다. 더욱 인간적으로 보이는 복제 인간의 최후와 그와는 반대로 구체화된 데커드의 인간성은 우리에게까지 확장되어 인간성 상실의 조소를 보내고 있는 듯 하다.
영화〈블레이드 러너〉는 인간의 모든 도덕적 자신감을 흔들면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그 틈으로 보여주고 있다. "당신 자신이 그런 실험을 받은 적이 있나요?" 라는 레이첼의 질문을 통해 데커드가 인간인지 복제 인간인지조차 필자를 혼란스럽게 했을 만큼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에 대한 충고나 비판을 115분 동안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Ⅴ. 참고문헌
1) 구회영(1997).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가지 것들>. 도서출판 한울
2) 김병관(1997). 인간질서에 도전한 리플리컨트,<과학동아>(1997. 4월호). 동아일보사
3) 김진우(1995). <하이테크 시대의 SF영화>. 도서출판 한나래
4) 박상준(1995). 묵시록적 미래의 시각 디자인,<씨네21>(1995. 제3호). 한겨레 출판사
5) 이재경(1995). 복제 인간과 안티, <창작과 비평>(1995.여름호). 창작과 비평사 |
2008년 11월 11일 화요일
블레이드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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