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17일 화요일

[펌] 얼마나 더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가?

대한민국은 물신주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
홍세화 선생은 최근의 한 칼럼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를 이렇게 진단 했다.

 

오랜 외국생활 뒤 귀국하자마자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속에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물신주의를 힐난하는 반어법의 어조가 담긴 것으로 이해했다. 그것이 나의 순전한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들을 때였다. 실제로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이 뒤집어질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천박한 사회라 할지라도 ‘배부른 돼지’를 지향하는 사회가 아니라면 넘어선 안 되는 선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이미 그 선을 넘어 ‘소유’(당신이 사는 곳)가 ‘존재’(당신이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어 있었다. ...(후략)

(한겨레 5월 12일자 칼럼 중)

 

얼마전 고대에서 있었던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명예 철학박사 수여식에 있었던 학생들의 반대 시위에 대한 사태가 아직도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각종 신문들이 호들갑을 떨어댔지만 기실 당시의 사태가 그다지 격렬했던 것 같지는 않다. 정원식 전 총리처럼 달걀과 밀가루 세례를 받은것도 아니지 않은가.

 

학교 측에서 학생들을 징계한다는 둥 후속 기사를 그다지 눈여겨 보지 않은 것은 그냥 그러다 말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뭐 보수 언론들이야 자기네의 최대 광고주를 위한 립서비스 측면에서 호들갑을 떨어댔겠지만 어디 그런 일이야 한 두번이었나.

 

그런데, 고려대생들이 앞장서서 총학을 탄핵하겠다고 나섰다. '평화고대모임'이라는 이 단체는 2300여명의 서명을 받아 총학생회 탄핵안을 발의하고 나섰다. 이 모임의 대표 이승준씨는 "무책임한 소수에 의해 자행된 시위로 학교와 학생들, 졸업생들까지 고대인들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고 말한다.

 

이 기사를 읽으며 정도가 다를진 모르겠지만 나도 홍세화 선생이 티비 광고의 카피를 들었을 때 처럼 속이 뒤집어질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알아서 긴다"는 것도 이쯤 되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같은 취업난의 시대에 혹여나 이런 일로 향 후 고대 졸업생들이 삼성의 취업이나 진급에서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라도 들었단 말인가? 이제는 정치권력보다도 방대한 사회경제적 힘을 가진 삼성 그룹에 밉보이는것이 두려워서 인가? 비유가 좀 심할진 몰라도 '평화고대'측의 행동을 보고 나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보다 더 악랄하게 독립 운동 세력을 고문했던 조선인 고등계 형사들이 떠올랐다. "너같은 조선 놈들 때문에 우리가 일본인들에게 더 신임을 받지 못한다"는 의식을 갖고 살았던 그들처럼 말이다.

 

이제 삼성은 우리 시대의 성역이 되었다. 당대의 연예인들도 자칫 비리를 저지르거나 편법을 동원했다가는 일거에 생명이 끝나버리고 마는 우리 사회의 가장 민감한 문제인 병역문제, 원정 출산 문제에서도 삼성이 관련되었을 경우 크게 개의치 않는 사회 분위기. 마음 속으로는 질투와 비난의 마음이 차있을지라도 공론화 하지 않는 영악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노조 문제, 변칙 상속 등의 어두운 모습들은 묻어 버리고 오직 찬란한 수출 실적과 경제적 성공에 따른 찬사와 선망으로 삼성은 질주하고 있다.

 

80년대 암울했던 독재정권 시대를 밝혔던 투쟁의 산실 대학들이 이제는 그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우경화 되고 있다. 학생들은 이제 더이상 사회 개혁을 바라지 않는다. 엘리트만이 우대 받는 사회를 꿈꾸며 그 속에 편입되어 호사를 누리는 자신의 모습을 꿈꾼다. 소위 일류라는 대학을 다닌다는 이들에게서 더이상 사회적 연대의식을 찾아 볼 수 없다.

 

대학마저 진보정신과 사회의식을 잃어버린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