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28일 토요일

[펌] IT 관련 기사와 숫자 - 시장 규모의 산정

아래 '아이템 판매액 6천억원' 관련 기사 때문에 오늘 아침부터 한국게임산업개발원과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 그리고 다른 몇몇 분들과 메일을 주고 받았다. 개발원 측으로부터 답변도 들었고,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답변 그리고 게임 업계 관계자와 아이템 판매 관계자의 답변도 들었다.

 

결론은 따로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개발원 측도 게임 아이템 판매 시장에 대해 '추정'할 뿐이며, 그 '추정치'를 근거로 기사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물론 '추정치'가 아예 의미없는 숫자는 아니다. 실제로 게임 아이템이 거래되는 사이트의 보고 자료를 근거로 했으니 '근사치'에 가까울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그 '추정치' 혹은 '근사치'라는 것이 작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 그게 무슨 '추정치'이며 '근사치'인가? 그냥 술자리에서나 주고 받을 수 있는 숫자라고 생각한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내게 보낸 메일을 통해 "과거에도 유사한 기사가 있었다. 검색도 해 보지 않았나?"라고 항의했다. 물론 나도 그 기사를 보았다. 한국경제는 2004년 11월 "[아이템 시장 거래 1조원] 아이템 하나에 500만원"이라는 기사를 낸 적이 있다. 이 기사는 내 블로그에서도 당시에 언급된 바 있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 언급한 한국게임산업개발원 관련 내용은 "게임산업개발원에 따르면 올해 아이템 현금거래 시장 규모를 7천억원~8천억원 에 달할 전망이다."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이 기사는 아이템 거래 시장에 대해 기자가 온라인 혹은 인터뷰를 통해 취재한 기사의 합리성을 부여하기 위해 개발원의 견해를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그에게 보낸 메일 답변에 기사가 삭제되었다고 했는데 네이버 뉴스검색 오류였다)

 

그러나 내가 문제 삼았던 기사는 개발원의 발표가 중심에 있었다. 그게 중요한 것이다. 기자가 주장하듯 개발원 관계자와 통화를 해서 그 사람이 한 말로 기사를 작성했을 수 있다. 그게 문제가 아닐 수 있고 나 같은 비전문가이자 기자도 아닌 사람이 그런 취재 방식을 몰라서 헛소리하는 것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아는 저널리스트 가운데 그런 방식의 취재가 정석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도 내가 만난 기자나 편집자들은 모두 아마추어든가 멍청이였나 보다.

 

 

메일을 주고 받으며 기자가 매우 불쾌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의 기사에 문제가 있고 심지어 기사 작성을 제대로 했냐는 의구심을 제기했으니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응대 또한 적절치 않았다고 본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기자가 작성한 기사라고 다 믿고 따르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제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단지 나는 IT 업계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 기자에게 문제를 제기했을 뿐이다. 지금도 수많은 기자들이 개인들의 질문이나 항의를 접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정말 멍청이도 있겠지만 또한 정말 제대로 지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당신들이 뭘 아냐?'고 답하는 건 바뀐 세상을 잘 이해 못하는 행위가 아닌가 싶다. 기자에게 서비스 마인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바로 옆에 붙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유용한 대화가 될 수 있었음에도 결과적으로 '그게 뭐가 문제냐?' '그게 왜 문제가 아니냐?'는 식의 허망한 대화가 되어 아쉽다.

 

 

끝으로 '게임 아이템 거래 시장'에 대해 한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그 전에 이야기할 것은 나는 8년차 사업 기획자다. IT 업계에 일하며 게임 업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계의 시장(market)에 대해 연구하고 실제 자료를 수집하고 사업을 한 적도 있다.

 

해당 기사를 작성했던 기자가 내게 보낸 답신의 첫 머리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먼저 개발원의 작년 시장규모 추정치는 작년 11월 14일자 한국경제 기사 등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 기사에서는 7천억~8천억원 선이라고 나와 있는데 개발원 사람과 통화하면서 좀 보수적으로 잡는 게 좋겠다고 얘기가 돼서 제 기사에는 5천억~6천억으로 나온 것이구요."

 

'좀 보수적으로'라는 시장 규모 산정 방식이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대체 시장 규모 산정에 대해, 아니 시장(market)이라는 단어의 정의에 대해 알고 있는 건지 굉장히 궁금하다.

 

'게임 아이템 거래 시장 규모'를 산정하고 싶다면 게임 아이템이 일반 공산품이나 일방적으로 공급되는 서비스 상품과 전혀 다르다는 것부터 알아야 한다. 게임 아이템은 구입한 자가 재판매해도 감가상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즉, 리지니에서 백만원짜리 아이템을 사서 한동안 쓰다가 백만원에 다시 팔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게임 아이템도 거래가가 계속 변화하지만 감가상각이나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이템베이와 같은 곳에서 거래되는 금액만으로 '아이템 거래 시장 규모'를 추측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만약 오늘 발생한 100건의 거래 가운데 50건이 이미 구매한 아이템을 다시 판매한 것이라면 그것을 '시장규모'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시장규모' 즉 'market size'를 고려할 때는 해당 시장에서 발생하는 매출액의 전액을 의미한다. 물론 '시장의 총거래액'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이 기사는 '시장 규모'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거래액'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과연 게임 아이템 거래 시장의 규모를 냉장고나 자동차 혹은 보험이나 온라인 쇼핑몰과 같은 기준으로 산정할 수 있겠는가? 기초없이 작성된 기사와 숫자는 오류를 반복하게 만든다. 이런 지적을 기자에 대한 개발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생각한다면 그것도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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