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17일 화요일

[펌] 기업 쇠퇴의 6가지 징후

최근 Sony, GM 등 초우량 기업으로 일컬어지던 기업들이 잇달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기업의 쇠퇴에는 몇 가지 사전 징후가 있다. 과거 기업의 사례를 통해 기업이 쇠퇴하기 시작할 때 나타나는 특징을 짚어본다. 
 
최근 초일류 기업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요 벤치마킹 대상으로 손꼽히던 Sony는 지속되는 실적 악화를 버티지 못하고 동사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CEO를 구원투수로 영입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인 GM이 국제 신용 평가 기관인 S&P로부터 정크 본드급에 해당하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초우량 기업으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던 기업들이 일순간에 초라한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것을 과거에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업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통적인 몇가지 쇠락의 사전 징후를 가지고 있다. 성공하는 기업들의 성공 비결을 학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쇠퇴하는 기업이 갖고 있는 몇 가지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징후 1 : 현재의 성공에 안주한다
 
기업이 쇠퇴하는 징조 중 가장 흔한 것은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는 모습이다. Emory 대학의 잭디시 세스 교수는 우량 기업이 실패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최고경영자가 자만에 빠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경영 환경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한 채, 과거의 성공 방식이 현재와 미래에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한 때의 성공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순간, 바로 위기가 찾아온다. ABB의 CEO였던 퍼시 바네빅은 기업간의 경쟁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다. “이것은 마치 아래 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쪽 방향으로 걷는 것과 같다. 잠시라도 걸음을 멈추면 금방 뒤쳐지게 된다.”
 
Kodak사를 보자. 1990년대 초반에는 Fortune지가 선정하는 500대 기업 순위의 18위까지도 올라갔던 Kodak사는 디지털 시대가 오면서 그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위기를 겪게 됐다. 사실 Kodak사는 디지털 카메라 제품에 있어서는 시장의 선도 기업이었다. 1975년 동사가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시장에 선보였을 때 경쟁사들은 아직 시제품도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Kodak은 경쟁사들과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는 자사의 기술적 우위와 기존의 필름 사업에서 나오고 있는 수익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쟁사들은 Kodak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 카메라 디자인, 사용자 중심의 인터페이스 개발 등을 통해 고객들에게 다가갔다. 이에 놀란 Kodak사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디지털 이미지 사업’을 핵심 사업으로 선정하여 자원과 역량을 집중하면서 위기를 타개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한 것 같다. 얼마 전 발표된 올해 1분기 실적 자료에 의하면 전년도 1분기 대비 9천만 달러의 매출 감소와 더불어 1억 4천만 달러의 적자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최근에는 시장 조사 기관인 IDC (International Data Corporation)가 조만간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는 등 Kodak의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듯 하다. 
 
미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던 GM사의 부진 역시 이와 비슷하다. S&P는 GM이 SUV(Sports Utility Vehicle)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기대하고 있지만, 이미 이 시장은 정체 상태에 들어섰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GM의 경영진들이 시장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편의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또한 관련 전문가들 역시 시장의 품질과 디자인 등에서 소비자들의 변화된 요구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져 한국의 현대자동차나 일본의 Toyota, Honda, Nissan 등에 밀리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징후 2 : 부서간에 높은 장벽이 있다
 
회사가 흔들리고 있음을 알려주는 또 다른 징조는 내부 조직간에 높은 장벽이 생기는 것이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 중 하나가 바로 각 부서나 부문별로 자신들의 이해를 우선시하는 부문 이기주의이다. 그 결과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 이외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고 다른 부서의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으려는 등 부서간 협조가 어려워지면서 조직 내부에 높은 장벽이 생기게 된다. 
 
조직간의 높은 장벽은 복잡한 사업 포트폴리오나 조직 구조로 인해 더욱 심화되기도 한다. Sony사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월가의 애널리스트 사이에서는 Sony사 몰락은 최고경영진의 전략적 의사 결정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Sony 내부의 시각은 이와는 좀 다르다. 스트링거 신임 회장과 같이 Sony의 부활이라는 미션을 맡게 된 료지 추바치 신임 사장은 ‘Sony사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기술, 생산, 디자인, 마케팅 등이 문제가 아니다.
 
Sony의 복잡한 사업 구조와 조직 구조가 원활한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저해하고 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내부 부서간의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외부인들이 지적하는 전략의 실패라는 것은 내부에서 바라보기에는 사실상 실행상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거대한 회사를 지나치게 분권화해서 운영하다 보니 각 부문별로 자신들의 사업 성과에만 신경을 쓸 뿐 전사 차원의 커뮤니케이션과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동사는 유사한 제품을 여러 부서에서 동시에 출시하면서 제품 개발을 위한 자원 낭비는 물론 시장에서 제살 깍아먹기 식의 경쟁을 초래하기도 했다. 추바치 신임 사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서간 협력체제 강화를 통한 수익성 개선, 전자 사업 부문의 명령 체계 축소, 복잡한 사업 구조 개선을 위한 일부 사업 부문 분사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징후 3 : 실속 없는 전시성 관리 행태가 많다
 
기업 위기를 알리는 또 다른 전조는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 각종 시스템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이다. 최초의 대형 할인점이었던 K-Mart가 갖추고 있던 인공위성과 연계된 POS(Point On Sales) 시스템이 그 대표적인 예다. 최첨단 IT시스템이 뒷받침된 철저한 저가 전략으로 시장을 빼앗아간 Wal-Mart를 모방해서 엄청난 비용을 투자하여 시스템을 갖추긴 했지만, 재고 및 유통관리는 여전히 엉망이었고, 결국 K-Mart는 파산했다. 
 
겉으로는 그럴 듯 하지만 내실이 없는 계획이나 시스템은 업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조직을 위기에 둔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Exxon Mobil사에서 수립했던 ‘오일 누출에 대비한 환경 보전 활동 계획’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동사는 바다에서 기름이 유출될 경우에 대비한 비상 대처 방안을 수립한 적이 있다. 계획상에는 200,000 배럴의 기름이 유출된다 하더라도 즉각적인 조치에 의해 회복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실제로 동사의 유조선인 Exxon Valdez호가 알래스카 연안에서 침몰해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이 계획은 무용지물이었고 결국 커다란 환경 재앙을 초래하고 말았다. 비상시에 대비한 컨티전시 플랜(Contingency Plan)까지 준비해두는 치밀함을 보였지만, 실제로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이 계획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컨티전시 플랜이 있었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해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을 가지게 하여 오히려 안전에 대한 불감증을 유발하는 부작용까지도 가져왔던 것이다. 
 
 
징후 4 : 보신주의가 팽배한다
 
기업이 흔들리고 있음을 알리는 또 다른 징조는 ‘남들 하는 만큼만 하자… 괜히 튀어서 찍히지 말자’라는 식의 적당주의나 보신주의가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제가 발생해도 이를 나서서 책임지고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오히려 문제에 대한 책임을 서로 떠넘기려는 핑퐁 게임이 발생하거나, 문제를 적당히 묻어두려는 양상이 나타난다. 
 
분식 회계로 주주와 시장을 속여오다 결국 일순간에 파산하고 만 Enron사의 경우를 보자. Enron사의 내부 비리는 쉐론 와킨슨이라는 내부 고발자(Whistle Blower)에 의하여 알려졌다. 그런데 왓킨슨 이전에는 문제를 눈치챘던 사람이 없었을까? 회계 처리에 필요한 기본적인 매출액과 비용 등의 기초 정보를 제공했던 사업 담당자, 그리고 실제로 회계 장부를 작성했던 회계 담당자와 이를 감독했을 CFO 등 수 많은 사람들이 분식 회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알았거나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와킨슨을 제외하곤 아무도 이를 제지하려 하지 않았다. 
 
Enron과 같은 극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굳이 새로운 시도를 해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사고와 행동 역시 보신주의고 적당주의다. 기존의 업무 수행 방식에 문제가 있더라도 이를 개선하려고 하기 보다는 관례대로만 처리하려고 하거나,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아래 사람에게 괜히 일만 만든다며 핀잔을 주는 등의 행동 등이 그 예라 하겠다. 
 
 
징후 5 : 인재들이 회사를 떠난다
 
변화 관리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는 Harvard 대학의 모스 캔터 교수는 몇 년 전 국내의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잘 나가는 기업과 망하는 기업의 가장 큰 차이는 이직률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회사가 망할 거 같다는 느낌이 들면 가장 먼저 우수한 인재들이 빠져 나가기 시작한다. 우수한 인재들은 지금 다니는 회사가 아니어도 불러주는 회사가 많다. 굳이 망할 것 같은 회사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그 다음에 떠나가는 인재는 회사에 애착을 가지고 망해가는 회사를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는 의지를 가지고 노력을 했지만, 그 노력을 인정 받기는커녕 괜히 튀지 말라는 식의 핀잔만 받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무조건 이직률이 낮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Enron사의 경우 미국에 벤처 붐이 일어나면서 이직률이 급속하게 올라갔던 1999년에 3%에 불과한 이직률을 보였고, 2000년에는 GE, Southwest Airlines, SAS 등과 더불어 Fortune지로부터 인재 관리에 뛰어난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내부 비리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징후 6 : 진실한 정보가 위로 전달되지 않는다
 
기업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상황에 다다르기 전까지 아무런 위기 신호가 없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의외로 경영진들은 이런 위기를 너무 늦게 발견하곤 한다. Harvard대의 마이클 로베르토 교수는 최고경영진에게 아래로부터 솔직한 의견 제시가 되지 않는 것이 심각한 문제인데, 이는 잘 나가는 일류 기업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이야기한다. 
 
Firestone사의 경우를 보자. 1996년 미국에서 자동차 전복 사고로 지역 방송국 기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이 때 지역 방송은 Ford 자동차에 장착된 Firestone 타이어의 외피가 벗겨진 것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보도했다. 이로 인해 회사의 이미지가 실추될 것을 우려한 동사는 타이어 무료 점검 등의 서비스 활동을 통해 위기를 넘겼다. 당시 이 사고는 동사의 모(母)회사에 해당되는 일본 Bridgestone사의 가이자키 사장에게도 보고가 되긴 했다. 하지만, 보고서에는 ‘타이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음’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2년 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똑 같은 전복 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 역시 본사에 보고하면 일만 복잡해진다는 사고 처리 담당자의 주장에 의해 본사에는 단순히 사막의 더운 날씨에 맞추어진 타이어로 일반 도로를 달리다 보니 타이어의 외피가 벗겨진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만 올라갔다. 이번에도 자사 제품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 결함에 대한 정보는 사라지고 만 것이다. 한 기자회견에서 가이자키 회장은 “매출이나 이익 같은 숫자는 내 귀에 즉각 들어온다. 하지만 사고나 소송 같은 악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결국 Firestone사는 사상 최대 규모인 650만개의 타이어를 리콜하면서 3억5000만 달러의 천문학적인 비용을 부담해야만 했고, 창업주 시절부터 96년 동안 이어왔던 Ford사와의 제휴 관계도 끝을 맺고 말았다. 
 
기업이 잘 나가고 있을 때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바로 주변의 부정적인 피드백이다. 이런 부정적인 피드백이야말로 개선과 변화의 단초를 제시해주는 소중한 정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정보는 흔히 구성원들의 사기가 나빠질 우려가 있다거나 기업의 이미지가 나빠질 우려가 있다는 논리에 밀려 회사 내에 공유되지 못하곤 한다. 그리고 경영진들에게는 자신의 체면이 깎일 것을 두려워하거나, 문책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 의해 현장의 생생한 정보 대신 가공되어 왜곡된 정보만이 전달되기도 한다.
 
 
삶아진 개구리의 교훈을 잊지말라
 
기업을 커다란 배에 비유한다면 기업의 쇠퇴를 알리는 조짐들은 배의 밑바닥에 난 조그만 구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멍이 작고 많지 않을 때에는 사람의 손이나 펌프 등으로 그때그때 물을 퍼내기만 하면 배는 가라앉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펌프 하나가 고장이 나면서 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혹은 배가 항로를 잘못 잡아서 자그마한 암초에라도 걸리는 순간 문제는 심각해지기 시작한다. 
 
쓰러지는 기업들은 어찌 보면 일순간에 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이런 사소해 보이는 증상들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쌓였을 때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증상들은 어느 회사에나 조금씩은 있기 마련이지만, 그 신호가 미약하기 때문에 쉽게 감지가 안 되거나, 적당히 무시하기 십상이다.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에서 아무런 느낌도 없이 있다가 죽게 되는 삶아진 개구리(Boiled Frog)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출처 : LG경제연구원ㅣ한상엽ㅣ2005.05.13ㅣ주간경제 8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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